KBS2 ‘골든 크로스’ 방송 화면 캡처

정말 제목 따라가는 걸까. KBS2 수목드라마 ‘골든 크로스’는 ‘주가 상승 신호’를 뜻하는 제목대로 매회 시청률 상승을 거듭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한 자릿수로 시작한 ‘골든 크로스’는 어느덧 10%대를 돌파,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탈환했다. 복수를 소재로 다뤄 다소 분위기가 무겁고 식상하다는 지적도 극 후반부에 이르며 자취를 감췄다. ‘골든 크로스’의 그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매혹하는 것일까. 어느덧 종방까지 2회만을 남겨둔 ‘골드 크로스’를 낱낱이 파헤쳐 봤다.

대중문화의 힘을 새삼 실감하게 된 순간이다. ‘골든 크로스’는 음모에 휘말려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복수극을 줄기로 한국 사회 문제를 대담하고 섬세한 터치로 엮어내며 주목받고 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통렬했던 ‘골든 크로스’ 속 현실 비판, 어떤 게 있었을까.

KBS2 ‘골든 크로스’ 방송 화면 캡처

# 스폰서 접대 문화

본래 ‘전파매체의 광고주’를 뜻하던 ‘스폰서’라는 단어는 오늘날에 이르러 변질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골든 크로스’는 모두가 쉬쉬하는 변질된 ‘스폰서 접대 문화’를 전면에 꺼내 놓으며 서막을 열었다.

극 중 강도윤(김강우)의 여동생 강하윤(서민지)은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정체불명의 연예소속사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데뷔를 구실로 성 상납을 강요받는다. 경제기획부 금융정책국장으로 재직 중인 서동하(정보석)는 조찬모임을 핑계로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자신의 딸과 비슷한 또래의 하윤을 겁탈한다. 이후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이 사건의 이면에는 서동하의 약점을 잡아 폭리를 취하려는 마이클 장(엄기준)과 소위 ‘상위 0.001%의 비밀 클럽’ 골든 크로스의 대표 홍사라(한은정)가 연계돼 있음이 드러난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이클 장의 물신화된 모습과 부정한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서동하의 모습은 대한민국 고위 관료들의 부패한 직업의식을 꼬집는다. 또 우발적으로 하윤을 살해한 서동하에 의해 도윤의 아버지 강주완(이대연)까지 죽게 됨으로써, 절대 권력을 지닌 이들의 횡포가 얼마나 한 개인의 삶을 붕괴할 수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KBS2 ‘골든 크로스’ 방송 화면 캡처

# M&A와 헤지펀드

‘골든 크로스’ 속 등장인물들의 이해관계의 중심에는 한민은행이 있다. 마이클 장은 한민은행을 헐값에 매입해 재매각 과정을 통해 폭리를 취하려 하고, 여기에 숟가락을 얹은 서동하와 그의 장인이자 국내 최대 로펌 신명의 고문 김재갑(이호재)는 가문의 위신과 자신들의 이익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마이클 장과 신경전을 벌인다.

문제는 한민은행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의 접근 방식이다. 원래 M&A(외부경영자원 활용의 한 방법으로 기업의 인수와 합병)는 기업 회생과 이윤 추구라는 양측의 요구가 일치할 때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식이지만, 여기에 사실상 ‘기업사냥꾼’이라 불리는 헤지펀드(단기이익을 목적으로 국제시장에 투자하는 개인모집 투자신탁)가 개입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이클 장은 한민은행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서동하와 한민은행장 권세일(정원중)을 종용해 은행의 BIS 비율(BIS가 정한 은행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임의로 조정하라고 명령한다. BIS 비율 하락을 통해 은행 가치를 떨어뜨리겠다는 것. 이후 한민은행은 팍스 코리아에 인수되고 마이클 장은 “기업 말고 개인 대출에 집중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직원들은 “본래 은행의 의무가 개인 예금을 모아 기업에 대출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묻지만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은행이 수익 창출의 대상으로 전락한 모습은 수 년 전 국민을 분노에 휩싸이게 했던 모 외국기업의 국내 은행 인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KBS2 ‘골든 크로스’ 방송 화면 캡처

# 부당해고와 구조조정

한민은행을 집어삼키기 위해 마이클 장, 서동하 등의 세력은 강주완을 압박해 BIS 조작을 강요한다. 앞서 IMF 당시 자신이 일하던 중소은행이 도산 위기에 처하자 홀로 정부에 맞서며 온갖 고초를 겪었던 주완은 단번에 불의(不義)한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수년간 피땀을 쏟은 가게를 인수할 수 있도록 돈을 빌려오라는 아내 오금실(정애리)과 “아버지의 정의 타령에 신물이 난다”는 아들 도윤에 등쌀에 떠밀려 결국 은행장 권세일이 전한 3억을 받아들고야 만다.

진짜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잠시 돈에 현혹돼 3억을 받아들었지만, BIS 비율 조작에 뭔가 미심쩍은 배후가 있음을 직감한 주완은 다시 돈을 돌려준다. 하지만 권세일은 이를 빌미로 별다른 이유 없이 주완에게 해고통보를 한다. 직원이 회사의 부당한 지시를 따라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해고 절차를 거치지 않고 주완을 해고한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갑의 횡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도윤은 아버지 해고의 부당함을 따지러 한민은행 상무 주민호(이승형)를 찾아간다. 하지만 주민호는 “회사 공금 3억에 손을 댔다”며 주완에게 공금횡령죄를 뒤집어씌운다. 이에 도윤은 “한민은행 단체 협약집에는 해고는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야만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며 “해고는 상무님이 선처할 일이 아니라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이뤄져야 하는 일이다”고 울부짖는다.

KBS2 ‘골든 크로스’ 방송 화면 캡처

# 어용노조

한민은행의 어용노조(사용자에 대해 자주성을 갖지 못하고 그의 좋을 대로 하는 노동조합의 총칭)도 ‘골든 크로스’가 비판을 가하는 대상 중 하나다. 아버지 주완이 사측으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받았다는 정황을 포착한 도윤은 노조위원장 구용수를 찾아가지만, 구용수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이미 은행장 권세일과 손을 잡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본래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힘을 써야 할 노조가 사측과 손을 잡자 자주성을 잃어버렸다. 끝없는 물욕과 권력욕에 찌든 노조위원장 구용수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준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KBS2 ‘골든 크로스’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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