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정말 열심히 사는 배우다. 드라마, 영화, 뮤지컬까지 쉼 없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여전히 욕심이 생기나.
데뷔 20년 차다. 조금은 쉬워갈 법도 하지만, 오히려 스스로 더 채찍질이다. 영화, 드라마 그리고 뮤지컬까지 대중의 관심이 없을 때도, 관심이 쏟아질 때도 흔들림 없다. 이 정도 설명하면, 눈치 빠른 이들은 누군지 알아차릴 듯싶다. 맞다. 바로 유준상이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반듯한 이미지를 지녔다. 한 때 ‘국민 남편’이란 칭찬을 받았던 그 아닌가. 그런 그가 영화 ‘표적’에서 악역으로 나섰다. 유준상과 악역,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여서인지 독기 서린 눈빛은 물론 가차 없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영화 속 그의 모습이 더욱 강렬하게 전해진다. 이처럼 그에게 악역 자체는 그 어떤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악역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가 걱정됐다. 그렇게 유준상은 완벽한 악역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태웠다. 최근 뮤지컬을 마치고, 다소 여유를 찾은 유준상을 만나 그의 열정을 다시 한 번 직접 경험했다.
유준상 : 무대를 20년째 하고 있다. 즐겁고 재밌지만, 하면 할수록 힘들다. 나이 들수록 대사도 까먹는다. 그렇게 많이 연습하고, 무대에서 부르는데도 안 나올 때가 있다.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포기하기엔 아깝고. 그래서 매번 했던 건데도 공연하기 전에 또 해보는 거다. 스태프는 ‘혼자 다 하고 계시면 어쩌느냐’고 하는데 가사를 잊어버릴 것 같아 그러는 거다. 그런 시간이 배우로서 계속 공부하게 한다. 어떤 현장에서든, 안 좋은 상황에서든 ‘레디 액션’ 하면 곧바로 연기할 수 있게 훈련하는 거다. 그래서 무대를 놓을 수 없다.
Q. 그렇게 쉼 없이 하면 돈은 많이 벌겠다. 하하.
유준상 : 열심히 벌고 있다. 20대 때부터 가장이었는데 가장이란 단어가 쉬운 게 아니다.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고 있다. 하하. 분명한 건 열심히 버는 것만큼 함께 나눠야 한다는 거다. 남들 사주는 걸 좋아해서 내가 쓰는 돈에 90%는 다른 사람 사주는 데 쓴다. 뭐라도 같이 먹을 수 있는 게 좋다.
Q. 50세 이후 배우 유준상의 모습은 어떨지 그려봤나.
유준상 : 55세 때도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관객들이 그때쯤 되면 다른 시선으로 볼 것 같다. 그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용기 같은 걸 주고 싶다. 또 최근엔 ‘표적’ 때문에 중학생 팬들이 생겼다. 영화가 15세 관람가가 되면서 잃은 건 엔딩신이다. 원래 죽는 걸로 끝나는데 요구사항이 많았다. 근데 그 장면이 안 나와서 아쉽다. 얻은 건 15세가 되면서 중학생 팬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하하.
Q. 유준상의 이미지는 굉장히 선하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선 악역인데, 처음 제안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유준상 : 역할은 가리지 않는다. 이미지 때문에는 더더욱 그렇다. 나이답지 않게 CF를 많이 했는데 한순간 없어졌다, 하하. 그런 거 생각해서 악역 하지 말아야지, 이러면 안 된다. 악역 때문에 CF가 안 들어와도 어쩔 수 없는 거다. 단지 시나리오상에서 내가 표현할 수 있을지가 중요했다. 송 반장 캐릭터를 설명하기엔 이야기가 별로 없어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역할이 작아서가 아니다. 그런데 김성령을 한 방에 죽이는 게 있는데 그 장면이 재밌고, 신선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다고 했고,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다. 합류한 지 얼마 안 돼서 엠티를 갔는데 그곳에서 비리 형사를 하게 될 팀원을 불러놓고, ‘각본 짜는 형사’라는 거에 의견을 같이했다.
Q. 영화 포스터 크레딧을 보면, ‘그리고 유준상’이라고 돼 있다. 강렬한 인물인데 조금 서운하지 않나.
유준상 : 내가 원했던 거다. 제작사에서 그거 때문에 고민하더라. 그래서 고민하지 말고, 나 안 나와도 되니까 제일 뒤로 빼라고 했다. 앞에 이름이 들어가면 분명 뭔가 있을 거로 생각할 거다. 포스터에 얼굴 조그맣게 나와도 그렇게 하는 게 영화에 도움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에 그 순서가 뭐가 중요하겠나.
Q. ‘표적’의 원작인 프랑스 영화 ‘포인트 블랭크’는 봤나.
유준상 : 보라고 했는데 안 봤다. 보게 되면, 조금이라도 참고할 것 같았다. 아예 다른 느낌으로 하고 싶었다.
Q. 비리 형사들은 여러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느낌으로 보여주기 위해 뭘 준비했나.
유준상 : 이 악역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극에 녹아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각본 짜는 형사’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성령 누나 죽이고, 진구를 죽이는데 촬영은 진구 죽이는 게 먼저였다. 아무래도 같은 경찰인 성령 누나를 죽였으니까 뭔가 초조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송 반장은 죄책감이 없으니까 누굴 죽였다는 걸 아예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진구를 때리기 시작했는데 엄청나게 때렸다. 진구가 나중엔 정말 무서웠다고 할 정도로. 감독님은 오케이, 제작자 등 주위에선 너무 튀지 않느냐고 했다. 결국, 감독님이 옳았다. 최근 일련의 사건이 터진 다음 송 반장처럼 죄책감 없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다. ‘표적’을 보신 분들이 이 사회와 맞닥뜨리는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면서 통쾌하다고 느끼는 거 아닐까. 송 반장 같은 사람 맞아야지, 없어야지 하는 그런 느낌이다. 현실로 나와서는 다행스럽게 사인해달라고 하고, 잘해주신다. 현실로 이어지면 힘들다. 하하.
Q. 국민 남편 이미지도 있고, 홍상수 감독 영화에선 지질한 남자 역할도 했다. 또 상업영화, 작은 영화 가리지 않고 출연한다.
유준상 : 나는 배우다. 그리고 배우는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재밌는 이야기면, 관객들은 얼마나 재밌을까를 생각한다. 또 상업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가 무대에선 괜찮을 수 있고, 상업영화에서 볼 수 없는 걸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볼 수 있다. 이광국 감독의 ‘꿈보다 해몽’, 전규환 감독의 ‘화가’ 등 아직 개봉되지 않은 영하 두 편을 찍었다. 재밌겠다 싶어서 시간 내서 했고, 찍으면서도 정말 재밌었다. 그 중 ‘화가’는 하드코어 액션이다. 배에 ‘왕’ 자도 만들고, 문신도 그렸다. 상반신 노출도 있다. ‘표적’과 달리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역할이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타는 거 때문에 오토바이 면허증도 취득했다. ‘전설의 주먹’ 때보다 몸을 더 잘 만들었다. 이처럼 상업영화에선 볼 수 없는 영화들은 소수 몇 분만 보더라도 ‘유준상이 출연해서 의미 있는 영화였네’라고 하면 된 거다. 물론 회사에선 싫어한다. 그런데 이야기의 전달자라 어쩔 수 없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데 안 하는 것도 아쉽다.
Q. 그럼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해보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유준상 : 일찌감치 접었다. 강우석, 홍상수 등 감독님들 보면 연출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영역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다만, 음악을 하는 건 연기를 잘하려고 하는 거다. 음악을 만들면, 젊은 감성들이 계속 생긴다. 나보다 20살 어린 이준화라는 친구와 올가을에 연주 앨범을 낸다. 북유럽 돌면서 음악 여행도 계획 중이다.
Q. 아내인 홍은희 씨는 썩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떤 반응인가.
유준상 : 곧잘 만드니까 이해해주고, 진짜 음악을 좋아한다고 받아준다. 동네 분들도 이해하고. 그러려니 한다. 아이들도 그렇고. 하하.
Q. 유준상에게 있어 가장 위기의 순간은 언제인가.
유준상 : 일기장에 이런 걸 적어 놨다. 배우는 스스로 극복하는 일련의 과정, 수련의 과정이라고 적은 기억이 있다. 어떨 때는 무대에 나가기 전, 이렇게 어려운 걸 왜 하고 있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 막상 문이 열리면 갑자기 아무 생각 안 날 때가 있다.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잭 더 리퍼’ 할 때 그런 경우였다. 노래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 안 났다. 그래서 오늘도 틀리면 그만해야지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 대본을 전날부터 얼마나 외우고 또 외웠는지 모른다. 그랬는데 정말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또 한순간을 극복한 거다. 이런 반복이다. 이렇게 극복하는 과정이 없으면 배우를 그만해야 할 것 같다. 시련이 있으니까 배우를 하는 거다. 경지에 이르렀네 하면 그만둬야 한다. 다행히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가사 틀리면 ‘어쩔 수 없지. 담에 안 틀리면 되지’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Q. 정말 노력해도 극복이 안 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유준상 : 정말 안 되면, 그래도 몇 번 기회를 주지 않을까. 그리고 나중에 정 안 되면 그땐 프롬프트 아니면 공연하지 않겠다고 해야겠다. 하하. 대사가 다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한순간이 기억 안 나는 거니까.
Q. 무대에선 그렇다 치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카메라 앞에서는 어떤가.
유준상 : 영화나 드라마는 분석이란 과정도 있고, 또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다 같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거다. 거기서는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반면 무대는 혼자서 해야 하는 거다. 그런 고통을 이겨내면 이겨낼수록 드라마, 영화에서 더 단단해지는 거다. 아마 70살 때 인터뷰를 해도 ‘어제 대사 하다 또 틀렸어요’ 이럴 거다. 여전히 극복 중이다.
Q. 데뷔 20년이 넘었는데 스스로 그 시간을 돌이켜 본다면.
유준상 : 참 열심히 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을 때도 열심히 했고, 관심을 가져줄 때도 휘둘리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생각했다. 요즘도 공연하기 직전 1막부터 2막까지 혼자 다 돌아보는데 그 시간이 너무 즐겁다. 물론 옛날에는 더 잘하려고 연습했고, 지금은 가사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 연습은 똑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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