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타 PD’의 전성시대다. 본래 방송국의 프로그램 기획자로 작품 선정, 인력관리, 예산 통제 등을 담당했던 PD들의 활동 영역은 최근 들어 전에 없이 확장됐다. PD들이 프로그램의 전면에 서는 경우도 잦아졌다. 예능 PD들은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제3의 멤버’와 같이 활약을 펼치기도 한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관찰자는 관찰하는 대상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PD의 이름이 곧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질 만큼 명확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PD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독창적인 색깔을 드러내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이들에 시청자들의 열광 한다.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가 그만큼 깊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증거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소위 ‘스타 PD’라 불리는 이들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 하는 걸까.
스토리온에서 올해 3월부터 선보이고 있는 새로운 시도, 15인의 예술작가들을 선정해 경쟁하게 만든 ‘아트 스타 코리아’(이하 아스코)는 미술계 내부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노래, 춤, 모델, 디자인, 요리 등 침범하지 못할 영역이 없어 보이던 서바이벌이 결국 ‘순수예술’의 영역에까지 침투해버렸다는 것에 누군가는 낯설어하며 반발했고 누군가는 흥미로워했다.
현재 진행 중인 ‘아스코’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아직은 확고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술과 서바이벌의 줄다리기 때문이다. 섞이기 힘든 두 영역은 각자가 한 뼘 한 뼘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다가도 다시 한 발자국씩 물러나는 ‘밀당’ 중이다.
대중과 만나고 싶으나 여전히 그럴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 순수 예술과 진화를 하고 싶으나 한계가 극명한 TV라는 플랫폼의 만남으로 요약해볼 수 있는 ‘아스코’의 연출자 임우식 PD를 만나 그의 시선을 들어보았다. 용감했던 시도를 안전한 방식으로 그려나간 ‘아스코’는 그 개인에게도 어려웠으나 흥미로웠던 첫 경험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Q. 시작 전부터 논란이 많았던 프로그램이다. 6회까지 방송된 지금, 예술과 대중의 간극을 줄이겠다는 취지 등 애초에 그리려고 했던 그림들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인가.
임우식 PD: 현대 예술의 현주소를 다루고 싶었다.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특히 메인 스트림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어 하는지를 방송에 담아내고 싶었다. 또 예술의 대중화라고 했을 때, 그 말의 의미가 예술의 어떤 높은 경지를 대중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수준이라는 것이 있다면 대중을 그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의미 있다고 봤다. 대중 역시도 예술을 알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구체적으로 재미있는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우리 도전자들의 작품을 궁금해서 찾아 보려하고 또 심사위원들의 코멘트를 통해 알게 되는 부분들도 있다고 본다. 그런 부분들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Q. 반대로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임우식 PD: 촬영하면서 도전자들의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들려면 방송 상 5분에서 10분 정도의 분량이 필요했다. 하지만 방송의 전체 분량과 구성이 있어 그만큼 할애할 수가 없었다. 편집할 때 많이 아쉬웠다. 기획했을 때 계획했던 것보다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현대 예술이라는 것이, 유병서 씨가 1회에서 말했듯 대중에 죄송하지만 공부를 해야만 하는 그런 부분이 실제로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또 대중에 공부를 시키는 방송은 아니기도 하고.
Q. 이 프로그램을 둘러싼 지적 중 하나가 이미 현대 예술이라는 것이 너무나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런 상업화를 더욱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임우식 PD: ‘예술의 상업화’라고들 하는데 그 말의 의미를 모르겠다. 상업화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겠다. 어쨌든 작가들은 작품을 판매한다. 작품의 매매가 미술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술의 상업화’를 논한다? 저희와는 상관이 없다.
처음 기획할 때 많은 분들이 조언을 하길 방향을 정확하게 잘 잡고 가라고. 옥션이나 갤러리 같은 곳에서 매매가 되는 작품이 있고, 그렇지 않지만 예술성이 있는 작품이 있는데 작가들도 어느 시점이 되면 그런 면에서 방향성을 정한다고 하더라. 팔리는 예술이냐, 나를 표현하는 예술이냐다. 즉, 팔리는 예술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팔리는 예술은 데이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한 소재로 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전 세계에서 혹은 아시아에서 같은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몇 명이며 40대에서는 또 몇 명이라는 식의 데이터다. 그래서 서바이벌에서 적용할 때도 미션을 정할 때 의뢰인이 나올 수도 있는 거다. 심사 기준도 ‘당신 작품은 이미 흔해요’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도 있다. 이걸 선택해서 명확하게 가야지, 뭉뚱그려 가면 안 된다고들 했다. 우리는 상업미술 쪽으로 가지 않고 현대 예술의 예술성을 평가하고자 했고 심사위원들도 그런 분들을 모셔왔다.
그런데도 상업화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CJ라는 거대 자본이 만드는 프로그램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라는 것이 베이스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만약 같은 방송을 EBS에서 했다면 다르게 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Q. 직접 체감하기에는 이 프로그램을 향한 논란들이 방송 전과 후, 어떻게 다른가.
임우식 PD: 방송 전 (미술계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판단의 기준이 아니었고, 현대예술을 왜곡되게 전달할까봐서였다. 서바이벌이라는 시스템 속에 전달할 때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게 될지 모른다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고 느꼈다. 그런 부분의 우려는 사라진 것 같다. 또 상업방송인만큼 자극적이고 이슈가 되는 인물이 나오고 가벼운 방식으로 다룰 것이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아서 놀라는 것 같다. 실제 필드에서 활동하는 순수한 예술가들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외라고들 하더라. 방송 전보다는 확실히 우려가 줄어든 것 같다.
Q.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다른 서바이벌에 비해 편집이 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캐릭터를 극대화시킨다거나 그런 편집이 없었으니까.
임우식 PD: 악마의 편집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런 것을 할 장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 촬영도 그렇게 되지 않더라.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해보았지만, 시기, 질투, 갈등, 견제 이런 요소가 있어야만 극대화시켜 방송에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아트스타 코리아’ 도전자들은 초반까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와 같은 분위기가 더 컸다.
Q. 다른 서바이벌과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도전자들이 미션 수행에 있어 서바이벌이라는 틀에 매몰돼 경쟁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도와주는 모습이 신선하게 와 닿기도 했고.
임우식 PD: 다른 서바이벌은 개인으로 참가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도전자들은 이미 프로그램 자체가 미술계에서 논란이 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여기에 참여한다는 것이 자신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고 감수하고 들어왔다. ‘너 명성 추구하잖아’라는 것이 딱지처럼 낙인처럼 찍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감수하고 들어왔다. 따라서 프로그램이 잘 안 됐을 경우에, 그 결과가 오롯이 자기한테 온다는 것을 느끼고 왔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잘 되는 것보다 프로그램이 일단 잘돼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전시를 한다고 하면 자신의 전시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도 훌륭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먼저 있더라. 그런데 다른 서바이벌은 ‘이 패션쇼가 좋은 패션쇼가 되어야 돼’라거나 ‘우리 화보가 다 잘 찍혀야 돼’라는 의식은 없지 않나.
Q. 우승을 해야 한다는 집착도 없어 보였다. 탈락을 해도 탈락 자체에 힘들어한다기 보다 여기서의 즐거웠던 작업이 끝난다는 것이 아쉽다고들 말하고. 그만큼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즐긴다는 것이 다른 서바이벌의 도전자들과 차이였다.
임우식 PD: 예로 ‘슈스케’에서 1등은 큰 의미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 서바이벌은 우승한다고 해서 ‘예술계에서 유명한, 혹은 인정받는 작가가 되느냐’ 한다면 그렇지 않다. 우리가 우승할 때 내건 혜택이 이들에게 절박한 것이 아니다. 받으면 좋은 것이긴 하지만, 상금 1억 원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다.
도전자 중 료니의 경우, 작업을 너무 하고 싶은데 작업할 여건이 안 되는 친구였다. 그런데 여기 들어오면 마음껏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 떨어지는 것이 싫다고 하더라. 신제현 씨도 아무 생각하지 않고 작업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좋다고 했고. 차지량 씨의 경우에도 1회 때는 탈락을 요청했지만 2~4회에서는 열정적으로 임했고 더 있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작가들이 작품과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는 통로가 없었고 그걸 원해서 들어온 이들이었다. 그런 부분이 더 절박했는데, 탈락을 하면 그럴 수 있는 창구가 없으니 아쉬워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아직 내가 만족할 만한 작품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탈락해야한다는 점에서 아쉬워했다. 나도 만족하고 대중에 보였을 때도 자랑스러운 작품이 아직 없는데 나가야한다는 점이 아쉽게 다가온 것이다.
Q. 흥미로운 도전자들이 많았고, 더 흥미로운 점은 도전자들끼리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다른 서바이벌에서는 조금 튀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견제하지 않나. 그런데 여기서는 아버지의 정액으로 작업을 한 구혜영 씨나 탈락을 요청하는 퍼포먼스를 한 차지량 씨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골 때리네!’라고 하면서도 ‘재미있네!’였다.
임우식 PD: 예술의 정의가 없는 시대다. 누구도 예술의 정의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예술이 무엇이다’라는 논의 자체도 사라졌다. 그만큼 예술의 기준이 없다. 그래서 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됐다.
Q. 그런데 ‘굳이 서바이벌이어야 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차용한 포맷이라고 했는데 다른 형태로 스토리텔링을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었다. 서바이벌만이 답은 아니니까.
임우식 PD: 서바이벌이 아닐 경우, 시청자들이 목적 없이 보게 된다. ‘예술을 알고 싶다’는 지적 허영만으로 봐야한다. 그런데 서바이벌로 가게 되면 꼭 그런 게 아니어도 볼 수 있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장점이 있기에 서바이벌을 택했다. ‘꼭 그래야만 하느냐’라고 묻는다면 다른 대안이 있긴 하겠지만, 방송을 하는 사람이고 공익방송이 아니기에 재미있는 방송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크니까. 그것을 추구하는 면에서는 서바이벌이 가장 낫지 않을까 판단을 했던 것이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바이벌의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을 택하지는 않았고.
임우식 PD: 서바이벌이 재미있는 서바이벌이 되기 위한 공식은 분명히 있고, 대중의 관심이 이미 있는 ‘슈스케’와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어떤 서바이벌은 시간제약이 가장 큰 구성이 되기도 한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경우 완성이 명확하게 있어 시간의 제약이 훌륭한 구성이 된다. 그런데 예술장르는 이런 모든 면에서 핸디캡이 있었다. 서바이벌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구성이 불가능했을 때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야하는 것이냐에 대한 고민들이 생겼고, 사실은 그런 점을 정확하게 찾고 가지 못했다.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은 미션 자체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미션으로 주는 경우에는 해결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도 지나치게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비슷한 장르의 외국 프로그램 ‘워크 오브 아트’의 경우에는 이마트의 재료만으로 만들라거나 15분 만에 만들라거나 하는 미션을 던진다. 우리가 이런 것을 피한 이유는 또 프로그램의 재미도 중요하지만 현대미술의 현주소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Q. PD 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즌2 계획은.
임우식 PD: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었다. 시즌2는 열려있다. 그렇지만 결정은 늘 회사가 한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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