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판치는 요즘 상황에서 무공해 청정 드라마로 시청자들은 주말에 완벽 힐링타임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쿨함과 시크함이 대세인 시대다. 일에 있어서 감정 표현이 뜨겁고 직설적이며 열정적인 사람보다 절제할 줄 알고 은유적이며 이성적인 사람이 더 주목을 받는다.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감정 표현을 로맨틱하고 극적으로 하기보다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게 하는 게 호감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둔다.

그러나 쿨함과 시크함이 아무리 각광받아도 인간미가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요즘 같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울고 싶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쿨함과 시크함은 속마음을 속이는 ‘위선’과 지적 허영심을 표현하는 ‘허세’로 보이기 십상이다. 화 내고 싶을 때는 마음껏 소리쳐야 하고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야 한다. 화창한 봄날에는 칙칙한 무채색을 옷을 입고 나가기보다 화려한 원색 옷을 입고 나가 눈길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가끔씩 마음껏 촌스러워지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정신건강에 확실히 좋다.

요즘 안방극장에서도 약간 촌스럽지만 가슴 따뜻해지는 드라마들이 방송 중이어서 눈길을 받고 있다. SBS 주말 밤을 책임지는 9시에 방송되는 ‘기분 좋은 날’(극본 문희정, 연출 홍성창), 뒤를 이어 10시에 방송되는 ‘엔젤 아이즈’(극본 윤지련, 연출 박신우)가 바로 그 주인공. 시청률이 높거나 반응이 뜨거운 건 아니지만 막장 드라마들이 판을 치는 방송 환경에서 ‘무공해 청정 드라마’로 불리며 호평을 받고 있다.

두 드라마 모두 설정이나 연출 모두 옛날 드라마의 감성을 지닌 게 공통점. 요즘 모든 드라마들이 등장시키는 인위적인 자극이나 극한 대립, 처절한 복수는 없다. 다소 밋밋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순수한 감성에 시청자들이 힐링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요즘 내가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는 ‘엔젤 아이즈’다. 사실 방송이 시작되기 전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다. 설정이나 감성이 너무 올드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커플 동주(강하늘/이상윤)와 수완(남지현/구혜선)이 뜻하지 않게 이별했다가 12년 후 재회하면서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은 너무 뻔해보였다.

특히 시각장애자였던 수완이 눈을 뜨게 되는 과정과 그 일 이면에 숨겨진 비밀로 인해 벌어질 갈등은 대본을 읽지 않아도 앞으로의 진행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전형적이었다.

그러나 막상 방송을 보니 편견이었다. 가장 뻔한 것도 만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윤지련 작가와 박신우 감독이 빚어내는 완성도는 기대이상이었다. 특별한 기교나 설정 없이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며 정공법으로 승부해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윤지련 작가는 전작 ‘꽃보다 남자’에서 보여준 것처럼 로맨틱한 감성을 표현해내는 데는 확실히 일가견이 있다. 12년 후 다시 만난 수완이 동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서로를 오해할 때 그 감정 묘사가 너무 섬세해 극적 긴장감을 제대로 불러일으켰다. 서로를 확인한 후 수완의 약혼자 지훈(김지석)과 벌이는 삼각관계에서 파생하는 감정 대립도 지극히 애절해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다. “뭐야 뻔해”라는 말이 나오면서도 안 보면 궁금해져 시간대가 되면 TV를 켤 수밖에 없는 중독성을 갖고 있다.



주연배우들의 매력도 큰 몫을 했다. 성인을 연기하는 이상윤 구혜선뿐만 아니라 아역을 맡은 강하늘 남지현의 환상적인 케미스트리(화학작용)가 시청자들을 매혹시켰다. 1,2회를 봤을 때 아역의 연기호흡이 너무 완벽해 성인 역으로 바뀌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상윤과 구혜선은 기대 이상의 연기호흡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10일 방송에서 나온 눈물의 키스신은 로맨틱함의 극대치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기분 좋은 날’은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 좋은 가족드라마여서 더욱 매력적이다. ‘스타작가’ 문희정 작가가 집필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문작가의 전작 ‘내 인생의 스캔들’ ‘그대 웃어요’ ‘내 마음이 들리니’ 등은 요즘 드라마 흐름과 다른 무공해 드라마로 평가받으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억척 어머니의 세딸 시집 보내기 프로젝트라는 컨셉트는 다소 진부하지만 휴머니티 넘치는 문희정 작가가 쓰기에 기대감을 갖고 보고 있다.

아직 방송 3주밖에 안 돼 인물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서 다소 전형적이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지난주부터 사랑스럽고 착한 두 가족이 이웃으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귀여운 파열음이 흥미를 유발하며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또한 김미숙의 세 딸 황우슬혜 박세영 고우리 등부터 모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들이 모두 개성있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어서 더욱 기대감을 갖고 보고 있다.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스트레스 받는 일이 부지기수다. 뉴스를 봐도 신문을 봐도 우울한 소식만 들려온다. 드라마는 이런 삶에서 휴식처가 돼야 한다. 그러나 요즘 많은 드라마들을 원초적인 자극을 추구하고 인간미가 부족해 스트레스를 더 받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리 재미있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드라마를 볼 필요는 없다. ‘엔젤 아이즈’ ‘기분 좋은 날’을 보면서 향수에 젖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좋은 힐링법이 될 듯싶다.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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