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의 한 장면.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도시. 암흑 속 절망에 빠진 사람들.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가 그리운 군상들 사이로 누군가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루이즈 봉파(Luiz Bonfa 1922~2001)의 노래 ‘삼볼레로(Sambolero)’가 흐른다. 낙엽을 밟듯 버석버석 튕겨지는 기타연주에 맞춰 허밍으로 들려오는 오묘한 멜로디. 바보처럼, 혹은 천사처럼 노래하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이내 방안을 감싼다. 할 말 조차 잃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씻김굿을 받은 망자처럼 눈물을 흘리며 잠시나마 안식을 되찾는다. 이처럼 아노미 속에서 잠시나마 평화의 순간이 연출되는 장면이 억지스럽지 않은 것은 바로 ‘삼볼레로’라는 노래의 힘이다.

세월호 침몰로 인해 모든 음악프로그램이 정지했다. 3사 가요 순위프로그램을 비롯해 ‘가요무대’ ‘콘서트 7080’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한철의 올댓뮤직’ ‘스페이스 공감’까지. 이외에 음악페스티벌, 콘서트들도 취소되는 분위기다.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 이 분위기에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듣느냐”는 것이다. 맞다. 대한민국이 슬픔에 잠긴 이 시점에서 무슨 노래란 말인가? 한편으로 이럴 때 음악이 우리에게 위안이 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음악은 흥(興)으로써 역할도 하지만, 힘든 이들을 위로하는 것도 음악이니 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 흐르는 루이즈 봉파의 노래처럼 말이다.

대중음악 기자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음악을 소개해야 세월호 침몰로 인한 슬픔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루이즈 봉파의 ‘삼볼레로’같은 음악 말이다. 헌데 긴 시간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도 그 어떤 음악도 떠오르지 않았다. 최근에 나온 신보들을 모니터하는 가운데에도 음악이 귀에 들어올지언정 가슴으로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두통이 심해졌다. 답답함과 무력감 때문이었다. 지금 진도 현장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 수 없는 답답함,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겹쳐졌다. 음악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음악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위안의 대안이 음악이 되기엔 아직 조금은 이른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지금은 마음의 위안보다는 현실적인 사고의 처리가 우선시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겪고 있는 분노와 절망, 그리고 슬픔의 시간을 어서 빨리 이겨낼 그날을 기다리며…” “9·11때 쉬지 않고 이어지던 미국방송의 추모공연이 문득 떠오른다. 세월호 구조작업이 끝날 때까지 뮤지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쉬지 않고 이어지는 추모음악공연을 하면 어떨까? 그런데 미디어들이 다들 지시 받은 대로 오보하느라 바쁘신 것 같다.” “음악은 분명 위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른 감이 있다. 왜냐면 현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사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의견들이 모아졌다.

뉴스를 살폈다. 사고가 발생한지 엿새가 지난 현재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21일 세월함 3층과 4층 객실에서 23구의 시신을 추가 수습해 이날 오후 11시 현재 사망자는 87명, 실종자는 21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21일 세월호 항해사 3명과 기관장에 대해 유기치사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외에 도저히 TV로만 보고 있을 수 없어 자원봉사를 하러 간 사람들의 미담도 들려왔다. 또한 위기 속에서 승객들을 구한 영웅들의 이야기,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음모론을 추적하는 기사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던 중 JTBC ‘뉴스 9’에서 손석희 앵커가 세월호에서 근무했던 항해사와 인터뷰를 통해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와의 교신에서 채널 선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화물 결박을 하지 않아 배가 기운 것, 이 모든 것이 관행과 같이 진행됐다는 충격적인 내용들을 보도했다. 이는 침몰함 배에 타지 않은 항해사의 의견이지만 수사과정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런 내용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사건의 원인규명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원인규명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아닌가?

아직도 팽목항은 분노하고 있다. 분노를 그치기 위해서는 위안보다 진실 규명이 우선시돼야 하는 시점이다. 시간이 더 지난 뒤 진실이 눈을 뜨고 분노가 걷혔을 때 비로소 부둥켜안고 같이 울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어떤 음악이 우리들과 함께 울어줄 수 있을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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