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들추기
KBS2 드라마 ‘프로포즈’(1997) 특별출연으로 데뷔한 원빈. 큰 개와 함께 혼자 사는 미소년, 현우 역으로 나온 그는 등장부터 스타탄생을 예감케 했다. 이 짧은 등장만으로도 세간을 사로잡은 신비의 미소년은 청춘드라마 ‘레디고’(1997)와 드라마 ‘광끼’(1999)로 부지런히 행보를 이어간다. 곱상한 외모 속에 자리잡은 사연있는 눈동자 때문일까. 그 시절 그가 맡은 역할은 주로 반항아였다.

하지만 원빈에게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드라마 ‘꼭지’(2000)에서는 세상이 그에게 덧씌운 이미지를 벗으려 분투, 나름의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인다. 집안에서 늘 말썽만 일으키는 문제의 인물, 명태를 연기한 그는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카락을 잘랐으며, 여심을 자극하는 멋있는 캐릭터에서 벗어나 흰 팬티만 입고 세수하는 수더분한 흔한 남자로 분했다.(물론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유난히 도드라지긴 했지만)

그리고 그해 마침내 ‘가을동화’(2000)를 만난다. 한국멜로사에 남을 “얼마면 되니?”라는 명대사는 그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원빈은 아시아를 흔드는 폭발적인 스타덤에 탑승하게 된다. 이어 원빈은 스크린으로도 진출한다. 영화 ‘킬러들의 수다’(2001)에서는 능청스러우면서도 순진한 캐릭터로 여심을 흔들었고, 장동건과의 블록버스터 ‘태극기 휘날리며’(2004)로는 눈물을 머금은 눈망울로 천만 관객을 끌어들인다.

영화판에서도 스타성을 입증한 그는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의 자신을 변주하고자 분투했다. 특히 ‘우리형’(2004) 이후 꽤 오랜만에 복귀한 영화 ‘마더’(2009)를 통해, 그가 품은 배우로서의 꿈은 대중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거리가 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린다. 이후 그는 얼마 걸리지 않아 ‘아저씨’(2010)를 만난다. 느와르 영화 ‘아저씨’는 그에게 꿈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강원도 정선 출신의 원빈. 고등학교 시절, 그는 최민수 주연의 느와르 영화 ‘테러리스트’를 보고 밤잠을 설치며 배우의 꿈을 키웠었다.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은 ‘아저씨’의 차태식을 만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전성기의 조각
춘천 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자동차 정비일을 하던 한 남자가 아시아를 흔드는 배우가 되었다. ‘슈퍼스타K’에서나 펼쳐지는 이 기적과도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 원빈. 그렇지만 미의 신을 떠올리게 하는 정확한 아름다움이 덧씌워진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수순이었다. 패션 디자이너 고(故) 앙드레 김의 눈에 띄어 패션모델로 무대에 섰고, 얼마 가지 않아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원빈은 등장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매료시킨다. 그러니 그의 전성기는 ‘프로포즈’에 특별출연하던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대 최고의 스타 김희선 마저도 그 시절 원빈을 보고 “어쩌면 저렇게 생긴 남자아이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니, 대중은 두 말할 것 없으리.

너무도 완벽한 미의 남신 등장에 세상이 들썩였다. 한 분야라도 월등히 뛰어나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연기력으로 검증받기 전 청춘드라마 주연으로 발돋움한다. 그래도 원빈은 안주하지 않고, 애초에 그의 발목을 붙잡았던 연기력 논란을 벗으려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선배 배우 장동건과도 엇비슷한 행보였다. 장동건이 미남스타의 껍데기를 벗기 위해 필모그래피를 넓히려 분투했던 것처럼, 원빈 역시 드라마 ‘꼭지’를 선택하는 것으로 배우로서의 고집을 알렸다. 그렇지만 역시 대중이 기억하는 그의 최고점은 스타로 소비된 드라마 ‘가을동화’였다. 이 드라마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그는 원조 한류스타로 멈추지 않을 질주를 시작한다.

이후 스크린으로 활동영역을 넓힌 원빈은 ‘킬러들의 수다’와 대작 블록버스터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흥행까지 잡는데, 그의 마음 속 갈증을 조금이라도 풀게 해주었던 작품은 아무래도 ‘마더’였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도 이 작품을 터닝포인트라고 밝혔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 김혜자와 모자지간으로 나온 ‘마더’를 통해 그 이전 상업적 색깔이 짙었던 작품들과는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되지 않았을까. ‘우리 형’ 이후 4년여 만에 차기작을 선택했던 것과 달리, ‘마더’ 이후 원빈은 그리 긴 시간을 들이지 않아 차기작 ‘아저씨’를 선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때 보호본능을 자극했던, 또 훨씬 이전에는 다소 어설픈 반항아로 그려졌던 그는 ‘아저씨’라는 단어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무게감의 액션배우로 나타나 대중에 자신을 설득시켰다. 그렇지만, 원빈은 그 이후 무려 3년 넘게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이창동 감독 아래, 설경구, 장쯔이 등과 손을 잡고 새 영화 작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아직 확정된 차기작은 없는 상태다.

귀환을 꿈꾸다
데뷔 20년이 가까워진 원빈, 그의 필모그래피는 다 합해보아야 10편 남짓. 다작하는 배우는 아니다. ‘우리 형’ 이후 ‘마더’로 걸음을 옮기기까지의 시간도 4년이 넘게 걸렸다. “마음이 가는 작품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신중함과 신비함이 동시에 읽힌다. 그의 마음을 다시 동하게 하는 작품은 무엇일까. 20대 후반 어서 빨리 서른이 넘어 진짜 남자의 얼굴을 갖고 싶다고 말하던 미소년은 어느새 한국나이로 서른여덟이 되어버렸다. 남자로서 만개할 30대를 허망하게 흘려보낸 원빈은 그를 그토록 사랑했던 대중에게 기회를 앗아가버렸다. 한 때 세상을 흔들었던 미남스타. 그럼에도 만족하는 법 없이 갈증을 풀기 위해 분투했던 배우. 우리는 언제쯤 그에게 다시 설득당할 수 있는 것일까.

스타소환 오매불망, 배용준
스타소환 오매불망, 송윤아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편집. 최예진 인턴기자 2ofus@tenasia.co.kr
사진제공. 비오템 옴므(메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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