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국에 처음 온 것은 언제인가.파비앙이 한복을 차려입고 텐아시아 독자들에 새해 인사를 전했다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던 시절이 있었다. 비슷한 동양인일지라도 낯선 일본어나 중국어 발음이 들리면 시선을 빼앗기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지금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선을 보낸다면 그런 사람이 더 ‘이종’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여행이나 유학이 아닌, 한국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유독 ‘한국을 사랑한다’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만나게 되면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텐아시아는 한국인의 말버릇을 그대로 닮아있는 외국인 방송인 ‘셋’을 만났고, 설 명절을 맞아 맵시 좋은 한복도 입혀보았다. 한복 입은 품새가 꽤나 고풍스럽다. 통상 명절 때마다 한복을 입고 찾아오는 다른 한국인 배우들보다 어째 더 좋아하는 얼굴들이다.
파비앙은 2014년 새해에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고정 멤버로 합류를 확정했고, 설 명절 전 첫 촬영도 진행했다.
드문드문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내밀었지만, 한국에서 외국인 연기자가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은 극히 한정된 것이 사실이라 그가 처음 한국에 온 순간 품었던 꿈을 모두 펼칠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기묘한 한국사랑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모았고, 덕분에 그의 일상이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조명받기 시작했다. 된장찌개를 뚝딱 끓여 아침식사를 하고, 배즙으로 몸보신을 대신하는 파비앙의 평범한 일상을 지탱하게 해주는 꿈을 좀 더 자세하게 들어보았다.파비앙이 한복을 입고 전통팥빵을 야금야금 먹고 있다
파비앙 : 2007년 여행을 온 것이 처음이다. 한국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 오랜 기간 돈을 모아 대학 졸업 이후 바로 한국으로 향했다. 3개월 정도 머물 예정이었는데, 못 떠나겠더라. 결국 프랑스에 돌아간 지 한 달만에 다시 한국으로 와버렸다.
Q. 한국에 무엇에 그렇게 매료됐었나.
파비앙 : 신기했다. 아시아가 처음이라 그랬었을까? 재미도 있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밤새서 노는 것도 좋았고,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었다. 천국같았다.
Q. 어렸을 때 배운 태권도가 계기가 됐을 것 같다.
파비앙 : 그렇다. 태권도를 5세부터 배웠는데, 처음에는 태권도가 한국무술이라는 것조차 몰랐었지. 어린 나이라서 ‘내가 프랑스인’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을 때이니. 한국이라는 나라를 인지한 것은 7세 무렵이다. 그러다 7세 쯤 태권도장에 걸린 태극기를 인지하게 되고, ‘돌려차기’라는 태권도 영화도 접하게 되면서 조금씩 한국을 알아갔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활발히 보급되면서부터는 한국음악, 한국영화, 한국드라마 심지어는 역사책까지도 접하면서 한국문화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Q. 지금에야 한류가 워낙 광범위하게 확산돼있었지만, 당시에 ‘한국문화에 매료된 프랑스 청소년’이라니…뭔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튀어보였을 것 같은데.
파비앙 : 맞다. 친구들은 ‘미친놈’이라고도 했다. 당시만 해도 실은 일본이 더 유명한 것이 사실이었다. 다들 ‘드래곤볼’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있을 때 인데 나는 ‘아냐! 한국이 훨씬 나아’라고 말했었다. 친구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을 법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이 일본보다 더 유명해진 것 같다. 하하. 우리가 이겼어!
Q. 기질 자체도 한국인을 닮아있는 것 같다. 현재 외국인으로 가장 활발히 방송활동 중인 샘 해밍턴의 경우, 방송 등에서 전생에 한국인 스님이었다는 말도 하지 않나. 한국과의 이 기묘한 인연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파비앙 : 전생까진 모르겠지만, 분명 내 조상 중에 한국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다.
파비앙이 한복을 입고 화이팅을 외쳐보았다
Q. 그런데 태권도를 시작한 것이 어렸을 때 맞고 다녀서였다고?파비앙 : (눈을 휘둥그레 뜨며) 에잉! 절대 아니다. 몸이 약하고 키도 작긴 했지만 절대 맞고 다니진 않았다. 그런데 어렸을 때 매일 싸우고 다니기는 했다. 그래서 엄마가 태권도장에 나가게 했다. 태권도를 배우고 나서는 중학교 때부터 유명해졌다. ‘저 놈한텐 시비걸면 안돼’ 이런 이야기도 들을 정도로 유단자였으니.
Q. 참, 요즘 한국에서는 ‘프랑스식 육아법’이 유행하고 있다. 굉장히 엄격한 훈육법이라고 들었다.
파비앙 : 나도 프랑스식 교육법을 좋아한다. 하지만 엄하게 하는 부모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모도 있다. 모두가 엄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 같은 경우, 엄격한 편은 아니었다.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편이었다. 하지만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을 다 하지 못할 때 명확한 벌을 내렸다. 나의 경우에는 모두 태권도와 연결돼있었다. 예를 들어, 숙제를 안하거나 공부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별다른 잔소리를 하시지 않지만 만약 성적이 떨어졌다고 하면 ‘너, 태권도 못가. 대회도 못나가’라고 하는 식이었지.
Q. 태권도에 푹 빠져있었지만, 연기를 전공했다. 어떻게 한국에서 배우 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을까. 프랑스가 오히려 환경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파비앙 : 연기 역시도 어렸을 때부터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일찍부터 시작했다. 그렇지만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만해도 ’여기서 배우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지 못했다. 한국말도 못했으니까. 2008년에 모델로 활동하면서 홍콩이나 일본, 태국도 돌아다녀보았는데 결국은 한국에 눌러앉게 됐다. 못 떠나겠더라. 프랑스 환경이 더 좋다는 것은 모르겠고 훨씬 규모가 크긴 하지만, 이제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한국에서 배우로 성공하고 싶다.
파비앙이 한복을 입고 큰 절을 올렸다
Q. 외국어로 연기하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다.파비앙 : ‘제중원’이라는 사극에 출연하고 나의 부족한 점을 깨달았다. 한국말을 배운 지 2년도 채 안돼 한글도 잘 몰랐고, 한 줄 읽으려면 10분넘게 걸렸다. 모르는 단어도 절반이나 됐다. 그래도 끝까지 혼자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
Q. 이후에는 연극판에서도 생활을 하지않았나.
파비앙 : 2년 정도 극단생활을 했는데 연기면에서 도움이 정말 많이 됐다. 신생극단이었지만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아카데미에도 다녔었다. 하지만 너무 비싸 오래는 다니지 못했다.
Q. 한국 연기와 프랑스 연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파비앙 : 완전 다르다. 한국은 좀 오버하는 식. 웃을 때도 울 때도 늘 강하게 표현한다. 프랑스는 그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래서 사실 처음부터 배워야했다.
Q.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파비앙 : 사기도 몇 번 당했다. 드라마를 찍었는데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프로덕션부터 매니지먼트까지 여러 사람들이 단계별로 걸쳐있어 누가 출연료를 가져갔는지도 모호해진 상황이었다. 그 때가 2010년이다. 거의 1년 동안 우울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3년 정도 열심히 쌓아온 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Q. 부모님은 당신이 한국에서 꽤 유명한 스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파비앙 : 완전 할리우드 스타인 것으로 알고 계신다. 인식의 차이 때문이기도 한데, 프랑스에서는 TV에 나오면 무조건 연예인이니까. 이제 진짜 연예인이 되어서 만족시켜드려야할텐데(웃음).
Q. 그래도 ‘나혼자 산다’ 때문에 이제 제법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파비앙 : 맞다.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목욕탕에 가는 것이 무서워졌다. 혹시나 몰카 당할까봐. 방송 이후로 지난 주 처음 가봤는데 다들 쳐다보더라. 부끄러웠다.
파비앙은 한국에서 배우로 꼭 성공할 것이라는 다짐을 들려주었다
Q. 혼자 살면 외로운 순간도 올텐데, 더구나 타국에서의 삶이다보니.파비앙 : 가끔 있다. 집이 생각날 때도 있고 특히나 명절에 가장 외롭다. 그리고 일이 3일 연속 없어도 외롭다. 스케줄이 없으면 ‘오늘은 뭐하나’ 싶다.
Q. 이번 설 계획은?
파비앙 : 아는 한국친구 집에 가서 떡국을 먹을 것이다. 과거에는 네팔에서 온 형과 여러 외국인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다 친한 한국친구 집에 가서 한국식 명절을 보내기도 했따. 올해는 그 친구 집에 가서 세뱃돈도 받을 것이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파비앙 : 개인적으로 황정민, 이병헌, 한혜진 그리고 이순재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그들처럼 색깔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매력있는 연기자 말이다. 꼭 연기로 승부를 보고 싶다. 요즘 매년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데 내가 한국영화로 칸 레드카펫을 밟는다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하하.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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