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사물 판독기’란 책 제목이 흥미롭다. 사물을 판독한다는 제목,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
주변에 널린 흔하디 흔한 것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는 무수한 사물들을 보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까.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게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쓸데 없는 생각’이라고 할 것 같다. 하지만 의미 없이 지나치는 사소한 물건에서도 ‘예술’을 발견할 수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이 계속되면, 때론 그게 곧 예술 행위가 된다는 말이다. 반이정 미술평론가가 쓴 ‘사물판독기’는 그런 점에서 참 흥미로운 책이다. 김밥, 라면, 공CD, 분홍색, 청바지 등 이런 사물들을 해석한다고? 어떻게 해석했을지가 아니라 해석한다는 자체에 의문을 품고 있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반이정 평론가를 직접 만나 그의 독특한 생각과 해석을 엿들었다.
반이정 작가 : 제목 선택은 출판사에서 했다. 씨네21에서 ‘예술 판독기’란 제목으로 5년 정도 격주 연재를 하고 있다. 예술 작품만 다루는 게 아니라 대등한 현상을 나란히 비교하고, 사회적 현상도 판독한다는 취지였다. 한겨레 신문에 연재 할 때는 ‘사물보기’였다. 사물을 일차적으로 보는 것, 일차적인 용도로만 쓰는 게 기본적인 태도인데 그거보다 조금 더 나가서 판독해보자는 의미다. 가령 분홍색이 지닌 의미가 여러 색 중 하나만이 아닐 거다. 전 세계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입고 있는 색깔이기도 하다. ‘예술 판독기’가 진행 중이어서 안 썼으면 했는데 의미가 통해서 출판사의 제목에 동의했다.
Q. 한겨레 신문 연재는 2007년에 끝난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5년 만에 ‘사물 판독기’란 책을 만나게 됐는데, 5년이란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반이정 작가 : 자건거 사고를 당했다. (웃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한 가지는 책을 보면 목차마다 긴 해석이 들어가 있다. 과한 욕심이 생겨서 그거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조금 더 많이 알거든, 그러니 길게 설명 해주마’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6개 목차를 정한 다음, 해당 주제의 해석을 쓰는 시간이 가장 많이 걸렸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전거 사고다. 두 번이나 당해서.
Q.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흥미로운데 당시 연재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
반이정 작가 : 2003년인가 2004년에 중앙일보 연재가 끝났는데 허전한 거다. 그래서 먼저 제안했다. 길거리에 놓여 있는 천을 봤을 때 ‘로드킬’이 연상되는데 그런 식으로 연상하는 버릇이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 평론가에게 요구되는 것 말고, 주변에 널린 걸로 판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기획안을 제시했는데 ‘오케이’를 해서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 주변에 있는 고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 분석대상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들이지만 모순적인 태도를 가진 것들이 있다. 그런 사물을 많이 선별했고, 그걸 정하면 내용은 쉽게 나왔다.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몇 가지 태도가 있는데 그런 틀이나 방법을 적용하면 짧은 해석이 가능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다.
Q.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가. 어떤 사물을 볼 때마다 연속된 생각들이 이어지는 건지 궁금하다.
반이정 작가 : 같은 질문을 많은 받는다. (웃음) 별명 중 하나가 ‘생각 공장 사장님’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극단적인 것까지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물론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최악의 상황, 극단적인 상황을 보통 생각하다보니 그 상황에서도 대처를 하게 된다. 조건 반사적으로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나쁜 점이라면 과도하게 걱정하는 거다. 다른 사람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또는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 없는 것까지도 생각을 한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이다.
Q. 정말 피곤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웃음)
반이정 작가 : 그걸로 큰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웃음)
Q. 총 100개의 사물인데, 이 책에 담길 100개의 사물을 선택하는 것도 일이지 않았을까 싶다.
반이정 작가 : 100개의 사물이 6개 목차로 구분 돼 있다. 그렇게 묶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추가로 9개가 들어갔는데 위상이 올라간 것들이다. 댓글, 블로그, SNS 등이다. 몇 가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정립되고, 고르는 사물의 성질이 정해지다 보니 무한수의 사물을 동일한 해석의 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그건 필자한테는 재미없는 일이다. 그래서 연재를 스스로 끝냈다.
Q. 부제가 ‘사물과 예술 사이’다. 그걸 보면서 그 사이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떤 이에게는 단순히 사물인 게, 다른 어떤 이에게는 예술이 되기도 한다.
반이정 작가 : 맞다. 작가가 자기 손으로 예술 작품을 완성시킨다는 패러다임이 오랫동안 지배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해석함에 따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은 20세기 초에 새롭게 생긴 거다. 사물은 주변에 널려있는 대상이지만, 예술의 위상에 놓고 간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안에서 예술적 감수성을 뽑아낼 수 있다.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라 예술사가 말하는 거다. 똑같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에서 몇 가지 사연을 읽어낼 줄 안다면 그 행위는 소박한 예술행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 삶에 실제적 영향을 주는 건 예술작품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물이다. 그 연장이 이 책이다.
Q. 그런데 솔직히 어떤 사물을 볼 때, 당시 상황과 콘디션 등에 따라 매번 다르게 인식하고 판별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사물 판독기’ 안에 ‘판독’을 해 놓은 여러 가지의 사물이 있지만, 그 사물들이 매번 같은 느낌은 아닐 것 같다.
반이정 작가 : 아주 크진 않다. 다만 다시 책을 내면서 넣지 못한 메시지를 넣고, CD롬 등 일부는 사물의 위상이 바뀐 게 있다. 그 부분에서 당시에 바라봤던 시선하고 다르기 때문에 실추된 위상을 쓰거나, 당대적으로 바꾼 게 있다. 해석이 있어 큰 편차는 없다. 시대상을 많이 타는 게 있다. 그런 것들은 약간 변주를 했는데 해석을 잘 못했다라고 떠오른 사물은 없었던 것 같다.
Q. 지금 주변에 있는 사물 하나를 선택해서 ‘사물 판독기’처럼 그 사물을 곧바로 ‘판독’을 한다면.
반이정 작가 : 디카(디지털 카메라). 음…. 주변에 많이 널려 있는 것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마우스는 영어로 ‘쥐’인데, 민첩성 등 쥐가 가진 속성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IT 쪽은 항상 그런 것 같다. 처음 ‘디카’를 말하면서 멈칫 했던 게 과거엔 200만 화소 디카가 120만 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2,000만 화소도 그보다 싼 게 있다. 여기서 보면 200만 화소는 실추했지만, 디카란 일반명사의 위상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Q.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은근하게 사회를 비꼰다는 거다.
반이정 작가 : 사실 사물을 그렇게 봐야한다. 예술은 예술영역으로, 정치는 정치영역으로 구분하면 안 되는 거다. 경계가 있고, 전문 분야가 있는 법이지만, 그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칼럼니스트가 미술을 할 수도 있고, 비전문 사진가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건강한 의미로, 전문 분야는 존속하되 다른 전문 분야에 도전해서 좋은 성과를 충분히 낼 수 있다.
Q. 어디선가 보니까 2013년 이전까지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축에 속했는데 지금은 거리를 두고 있다고 했더라.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반이정 작가 : 정권이 바뀌어서. (웃음). 예전에 한참 촛불집회 할 땐 뭔가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순박한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대중은 힘이 센 존재이긴 하지만, 상투성을 만드는 것도 대중이다. ‘사물 판독기’란 책과 곁들어 이야기하면, 그 대중의 상투성이 사물에 반영된다. 가령 예식장 디자인이 후졌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대게 거기서 하려고 하고, 남들 다 대학가니까 가고. 반복적으로 하는 것들에 대한 식상함 같은 것, 피로감 같은 게 이 책을 만들었다. 정치에 관심을 끊었다는 이 태도가 건강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미술평론가가 정치적 관심이 이렇게 많은 사람도 나 밖에 없을 거다. 이런 태도는 사물로도 연장될 수 있고, 사회로도 연장될 수 있다. 우선 사회로 연장된 시선은 ‘오프’를 해 놓은 상태다.
Q.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관심사라고 해도 뭔가 다를 것 같으니까.
반이정 작가 : 우리나라 미술에 흐름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강연을 하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왔다. 또 강연하려면 교재가 필요하다. 미술 잡지에 올해 3월까지 총 12회 연재되는 글이 있는데 98년부터 2009년도까지 우리나라 미술을 다룬 거다. 완전 동시대를 다룬 건데 이 시대를 다룬 미술책은 없다. 이걸 가지고 강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회가 온 셈이다. 그래서 8회로 압축해서 강연하는 걸로 얘기가 된 상황이다. 지금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거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제공.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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