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 하나의 약속’ 스틸 이미지.

“겁 먹는 자체가 이상한 일인 것 같다.” (김태윤 감독)

민감한 소재를 다룬 영화 한 편이 대중을 만난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다. 이 영화는 삼성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 씨와 가족의 실화를 담고 있다. 그리고 서울행정법원 제14부가 고 황유미씨에 대해 산재 인정 판결을 내린 실화 사건이 핵심 내용이다. 이 판결은 국내에서 처음이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판결이다.

김태윤 감독은 20일 오후 CGV왕십리에서 열린 ‘또 하나의 약속’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주변에서 캐스팅이나 투자가 되겠냐며 말리는 분들이 많았다. 역시 투자에 어려움이 있어 제작두레 방식을 택했다”며 “아주 평범하신 분들이 제작비를 모아주셨고, 고비를 넘겨가며 완성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어떤 외압은 없었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런 외압은 전혀 없었다”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안에 뭔가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평범하신 시민들도 그런 질문을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을 많이 들어 겁을 먹기도 했는데 겁을 먹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한 편을 완성하고, 개봉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김 감독은 “한 달 반 동안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영화 속 시간은 4년이 넘는다”며 “감독으로선 난감했던 순간인데 이상하게 비가 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면 비가 오고, 눈이 오길 바라면 눈이 오는 거다. 누가 지켜준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달려왔다”고 전했다.

극 중 한상구 역을 맡은 박철민은 “작은 기적들이 모여 커다란 기적을 만들어낸 것 같다”며 “여러 도움들이 모아지고 모아져서 신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주인이다’는 생각이 커서인지 행복한 현장이었다”고 표현했다. 한상구의 아들 한윤석 역의 유세형은 “제 친구가 군대 가기 전에 제작두레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제대를 했다”며 “영화가 나오기 까지 많이 기다린 것 같다”고 시간의 흐름을 비유했다.

‘또 하나의 약속’은 민감한 소재를 잔잔한 드라마로 풀어냈다. 속초의 평범한 택시운전 기사 한상구가 세상을 떠난 딸과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거대 기업과 맞서는 모습에서 큰 울림을 선사한다.

이에 박철민은 “이 영화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바보 같은 아빠가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강해지고, 단단해진다. 그런 아빠의 성장기이기도 하다”며 “역할이 매우 매력적이었고, 부담도 됐지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고 밝혔다. 또 그는 “민감한 소재지만 가족과 사랑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상구 가족은 딸의 죽음으로 큰 고통을 받지만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복원되지 않나. 그걸 통해 내 가족을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극 중 한상구와 함께 거대 기업에 맞서는 노무사 유난주 역의 김규리 역시 “이 작품은 부성애, 가족, 가족의 사랑 등 사랑이란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영화”라며 “만약 내가 이렇게 되면 우리 아버지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참여 이유를 전했다.

고 황유미씨와 같은 다수의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김 감독은 “첫 관객으로 모셔야 할 분이 황상기 아버님과 유가족이다. 지난 부산영화제에 보러 오셨는데 ‘영화 만들어줘서 고맙고, 왜 싸우고 있는지 잘 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며 “그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영화적 평가를 떠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월 6일 개봉 예정.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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