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EBS 스페이스 공감’을 검색해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면 방송 다시 보기를 할 수 있다. 지금 접속을 하면 최근 업데이트된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의 공연까지 총 993회의 방송이 올라와 있다. 아티스트 색인 검색을 하면 어떤 연주자가 언제 누구와 함께 공연을 했는지도 알 수 있다. 가령 기타리스트 ‘박주원’을 검색하면 그의 솔로 공연 외에도 헤리티지, 조규찬, 서영도, 말로의 공연에서 연주를 하는 모습까지 모두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아티스트의 공연 현장이 이렇게 잘 정리돼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없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바지런히 걸어온 EBS의 음악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이기에 가능한 기록이다. 2011년 오랜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들국화의 원년멤버 조덕환을 만나 후배들의 음악을 들어봤냐고 물었을 때 그는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한국에 실력 있는 뮤지션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답했다.

최근 ‘스페이스 공감’을 축소 개편한 소식이 들려오면서 뮤지션들의 반발이 크다. 공연 횟수는 주 5일에서 2일로 줄고, 제작 PD는 3명에서 2명으로 감축될 예정이다. 이러한 결정이 제작진의 동의 없이 사측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SNS를 통해 뮤지션들의 반대 의견이 모아졌고, 축소 결정 기사가 뜬지 열흘도 안 돼 감축 반대 공연 일정이 잡혔다. “‘스페이스 공감’은 대한민국 음악이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라고 입을 모은 음악인들은 오는 12일과 13일 홍대 라이브클럽 벨로주에서 ‘공감을 지켜주세요’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연다.

이처럼 뮤지션들이 ‘스페이스 공감’을 위해 똘똘 뭉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004년 4월 개관한 ‘스페이스 공감’은 “그곳에 가면 진짜 음악이 있다”라는 모토 아래 한국 대중음악을 담아오는 그릇 역할을 했다. EBS 내에 있는 홀에서 주 5일 공연을 했고, 그것을 편집해 TV로 방송을 했다. 1,000회를 앞두고 있는 현재까지 약 30만 명의 관객이 이곳을 찾았다. 신중현, 김창완, 송창식, 황병기, 나윤선, 이승환 등을 비롯해 데이브 그루신, 밥 제임스, 리 릿나워, 제이슨 므라즈, 뱀파이어 위켄드 등 해외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올랐다. 지난 약 10년의 세월 동안 많은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스페이스 공감’만은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며 팬들과 뮤지션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스페이스 공감’은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 ‘한국방송대상 예능콘서트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땅의 뮤지션들 사이에서 ‘스페이스 공감’은 새 앨범을 발표하면 반드시 나가야 하는 곳이며, 신인들에게는 언젠가는 꼭 서 보고 싶은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스페이스 공감’이 이와 같은 지지를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철저하게 음악성을 기준으로 국내외 다양한 뮤지션들을 선별해 대중에게 소개해왔기 때문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아이돌 위주로 치우친지 오래됐고, 그 균형을 잡기 위해 등장한 라이브 프로그램 ‘수요예술무대’ ‘라라라’ ‘음악창고’ 등이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폐지됐다. 그러한 상황에 상업성을 담보로 하지 않은 실력파 뮤지션들이 브라운관에 설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스페이스 공감’이다.



‘스페이스 공감’은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음악의 비밀’, ‘열혈사운드의 발견’ 등 신선하면서도 의미 있는 특집들을 기획해왔다.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를 통해서는 대중음악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신중현, 한대수, 김창완(산울림), 최이철(사랑과 평화) 등 거장들의 음악을 재조명하기도 했다. ‘음악의 비밀’을 통해서는 시청자들에게 각 악기의 특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기존 음악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된 아티스트 선별을 통해 가수에 비해 조명 받을 기회가 적었던 김광석(기타리스트), 송홍섭, 함춘호, 한상원, 샘리 등 명연주자들의 단독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공연장이나 클럽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소리꾼 장사익과 재즈 기타리스트 정재열의 협연, 채수영의 블루스 연주 등을 TV 화면으로 옮겨와 대중에게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대중음악계에서 소외된 장르인 재즈, 국악, 월드뮤직 등을 소개하는 역할도 했다.

이와 함께 신인 발굴 프로젝트 ‘헬로 루키’를 통해 신인 뮤지션 발굴에 앞장서며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한음파, 오지은, 게이트 플라워즈 등 실력파 뮤지션들의 등용문이 돼왔다. 지금은 스타가 된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등이 ‘헬로루키’를 통해 먼저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즉, ‘스페이스 공감’은 훌륭한 뮤지션을 보여주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헬로루키’를 통해 음악계의 저변을 확대하는 역할까지 한 것이다. 이는 지금 이 땅의 대중음악과 소통하려는 제작진의 피나는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기획이었다.

‘스페이스 공감’이 좋은 음악을 선별해 참신한 기획으로 선보일 수 있었던 비결을 뭐였을까? 박은석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은 “‘스페이스 공감’은 기본적으로 음악의 가치 그 자체를 존중하는 측면이 크다”며 “시청률 혹은 대중적인 입맛이라는 기준에 맞춰 기획을 하고 그 틀에 뮤지션을 끼워 넣는 방식이 아니라 음악적으로 가치가 있는 기획, 음악 자체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기획을 하고 거기에 합당한 뮤지션을 찾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공중파 프로그램이 타협 없이 좋은 음악을 찾아 소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김현준 기획위원은 “‘스페이스 공감’이 ‘뚝심이 있다’, ‘제대로 됐다’는 이런 저런 칭찬을 많이 듣는데,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은 사실 발버둥에 가까웠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는 발버둥, 그리고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이었다며 “때문에 우리는 백조 같을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겉에서 볼 때는 우아하고 굉장해 보이지만 그 밑에서 우리는 매주 투쟁심을 발휘하며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이스 공감’이 당신을 감동시켰다면, 그 이유는 단지 뮤지션의 음악을 장식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2013년 한해에도 김창기, 선우정아, 무키무키만만수 등 135개의 공연이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선보여줬다. 오랜만에 컴백한 동물원 김창기는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고, 선우정아는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며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를 노래했으며 무키무키만만수는 ‘방화범’을 노래하는 사이 구장구장(악기)을 부수어 그 조각을 관객에게 나눠줬다. ‘스페이스 공감’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장면들이었다.

‘스페이스 공감’ 축소 개편이 두려운 이유는 지난 10년간 한국 대중음악과 함께 숨쉬어온 소중한 프로그램이 행여나 상처를 입을까봐서다. EBS는 공익채널답게 ‘스페이스 공감’을 관객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제작진 측은 “공연과 제작진을 축소하는 것은 예산을 감축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대로라면 뮤지션들은 설 무대가 줄어들고, 관객들은 공연을 볼 기회가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의 논리로 프로그램 축소가 진행이 되면 그 존립 여부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2월에 방송 1,000회, 4월에 개관 10주년을 맞는 ‘스페이스 공감’이 부디 안녕하길 바란다. 40주년을 넘긴 ‘장학퀴즈’만큼 오래 가길 바란다. 더 많은 뮤지션들이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길 바란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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