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2014년 새해 첫 날, 골든 인디 컬렉션에서 소개할 뮤지션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민채다.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음색이 근사한 그녀는 막 데뷔 싱글을 발표한 루키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재즈밴드로 활동을 했을 정도로 음악적 내공이 만만치 않은 아티스트다. 작년 연말, 방송 선곡에 필요한 캐럴송을 검색하다 재즈 전문레이블 에반스 소속 뮤지션 12팀이 참여한 캐럴앨범 ‘에반스 에스프레소(Evans Espresso)’에 수록된 그녀의 ‘블루 크리스마스(Blue Christmas)’의 동영상을 보았다. 차분한 분위기로 들려주는 그녀의 슬픈 캐럴송에 배어있는 멜랑콜리한 음색은 편안했고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이 정도의 감성 보컬을 구사하는 여성보컬리스트는 흔치 않다. 음색이 마음에 들어 민채가 발표한 앨범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응? 놀랍게도 지난해 11월에 막 데뷔앨범을 발표한 신인이다. 6곡이 담긴 미니 앨범 ‘하트 오브 골드(Heart of Gold)’를 CD플레이어에 걸으니 귀에 익숙한 샹송을 커버한 곡이 흘러나왔다. 쓸쓸한 분위기의 캐럴에서 경험한 나른하고 편안한 음색의 그녀가 선택한 첫 트랙의 선곡은 의외를 넘어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민주화를 갈망했던 80년대에 비장감과 피를 들끓게 만든 민중가요 ‘오월가’가 번안곡이라 생각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원곡의 멜로디를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 차용했기에 전혀 다른 노래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오월가’의 원곡은 프랑스의 개발사업 과정에서 희생된 루시엥 모리스(Lucien Morrisse)라는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서 미셀 뽈나레프(Michel Polnareff)가 1971년에 창작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샹송이다.

이 노래를 커버한 국내가수는 민채가 최초는 아니다. 1975년에 포크가수 박인희가 지구레코드 전속이후 발표한 ‘고운노래모음 1집’에 ‘사랑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직접 번안해 원곡에 충실한 편곡으로 가장 먼저 커버했다. 무자비한 개발 사업에 희생된 할머니의 추모 곡은 사랑노래로 둔갑했지만 히트하지는 못했다. 민채는 우리말로 번안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불렀다. 그녀의 버전이 흥미로운 것은 슬픈 노래지만 미디엄템포로 힘이 넘쳤던 원곡과 달리 특유의 슬픔이 배어나오는 자신의 색채로 편곡해 마치 그녀의 노래로 착각하게 만든 점에 있다. 이 노래를 커버해 첫 트랙으로 장식한 이유가 궁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저항성을 앞세우는 민중가수의 질감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보이스 색채가 분명한 보석 같은 신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등장했다. 사실 신인가수의 노래를 그것도 앨범에 수록된 6곡 전부를 지루함 없이 집중해 듣는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창작곡과 커버 곡으로 구성된 그녀의 데뷔 앨범은 다양한 장르에 얹혀 각기 다른 개성이 담겨 있지만 편안함과 슬픔이 담겨 있는 그녀의 느릿한 음색과 창법은 모든 곡을 하나로 통일 시킨다. 이는 장점일수도 단점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색채가 분명한 뮤지션이라는 사실은 인정해주고 싶다. 작년 연말인 12월 14일, 홍대 앞에 위치한 작은 공연장 ‘네스트 나다’에 갔다. 그곳에서 열린 중증 장애인 시설 ‘쉼터 요양원’ 돕기 자선콘서트 ‘인디 크리스마스, 함께’에서 “민채가 노래를 부른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

공연을 앞두고 열린 리허설이 끝난 후, 일몰에 ?기면서 그녀의 피쳐사진을 촬영했고 그녀의 노래에 담겨 있는 슬픈 정서의 원천이 궁금해 공연 직전까지 1차 인터뷰(공연 스케줄로 인해 한 차례 인터뷰를 더 할 예정)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래만을 듣고 예상한 내 짐작은 맞아 떨어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슬픈 정서로 채색된 예쁘고 달콤한 음색은 분석할 필요가 없는 타고난 신의 선물이다. 앨범 재킷을 장식한 아름다운 외모는 예쁜 여자들 특유의 까칠함이 있을 것이란 편견을 가지게 했지만 직접 만나보니 그 또한 어긋났다. 민채는 주변 사람들과 흉금 없이 잘 어울리는 수더분하고 쾌활한 성품이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보단 분명하게 드러내는 솔직한 스타일이었다.



첫 앨범의 첫 트랙을 장식한 노래를 어떻게 커버하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선 그 노래가 80년대에 뜨겁게 불리어진 민중가요인 것을 사전에 인지했는지 아님 모르고 선곡한 것인지 궁금했다. “물론이죠.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알았기에 첫 트랙으로 넣었습니다. 사실 첫 트랙은 사전에 녹음 리스트에 넣은 곡은 아니고 운명적으로 다가온 노래입니다. 데뷔 앨범 작업을 시작했을 때, 소속사인 에반스 홍세존 대표님과 제 앨범에서 기타 연주를 해 준 이동섭씨와 자장면을 먹으러 간 중국집에서 그 곡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때 대표님이 이 곡을 첫 곡으로 하면 저에게 잘 어울리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즉흥적으로 녹음을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결과물이 잘 나와 데뷔 앨범의 첫 트랙을 장식하게 되었으니 저에겐 운명적인 곡이라 생각합니다.”(민채)(part2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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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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