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코리아’ 스틸
1990년대를 이용한 향수팔이? 1020부터 3040까지 이은 진정한 세대공감젊음은 항상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그러나 안정적인 기반을 지닌 중장년층에게 20대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머뭇거리게 된다. 젊음이 그립기는 하지만 모든 게 불확실한 20대로 돌아가 다시 인생을 세팅하는 게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미래에 돈을 왕창 벌 수 있는 정보를 갖고 가는 게 아니면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다. 그만큼 젊음은 아름답지만 잔혹하고 즐거우면서도 고통을 수반한다.
최근 종방한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94’(극본 이우정, 연출 신연호, 이하 ‘응사’)와 MBC 수목드라마 ‘미스코리아’(극본 서숙향, 연출 권석장)를 통해 다시 조명받는 1990년대도 40대 중반인 내가 기억하기로는 젊은이들에게는 매우 힘겨운 시기였다.
내가 20대를 보낸 1990년대는 젊은이들에게 고난의 시기였다. 군부독재시대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사회 분위기가 여전히 경직돼 있었고 IMF의 관리를 받는 국가부도사태를 맞아 피눈물 흘리는 청춘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젊은이들은 PC 통신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음악을 들으며 울분을 해소하며 힘겹게 사회로 향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응답하라 1994′ 스틸
‘응사’와 ‘미스코리아’에 묘사된 것처럼 그 당시 청춘군상들의 현실은 암울했다. ‘응사’의 나정(고아라)처럼 취업문을 100번 정도 두드린 끝에 얻은 직장이 IMF 사태 때문에 망해 좌절하는 청춘이 속출했다. 나정처럼 명문대생은 대부분 결국 취직에 성공했지만 학벌이 따라주지 않는 이들은 다단계의 유혹에 빠지는 일이 허다했다.‘미스코리아’의 김형준(이선균)처럼 이상만 갖고 창업했다가 빚쟁이에 쫓기는 젊은 벤처사업가도 주위에 아주 많았다. 또한 오지영(이연희)처럼 해고위협에 시달리며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드라마에 묘사된 것처럼 당시 젊은이들은 현실이 아무리 냉정해도 젊기에 열정이 넘쳤고 누군가를 사랑했으며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현재 1990년대를 회상하는 이 드라마들은 세대를 넘나들며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시 20대를 관통한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힐링드라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앞만 바라보며 달리던 이 세대들에게 잠시 청춘을 회상하며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다.
‘응답하라1994′ 스틸
또한 당시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 젊음을 살고 있는 20대의 눈길도 사로잡고 있다. ‘88만원 세대’의 공감까지 얻으며 진정한 ‘세대 통합’을 이루고 있다. 40대 초반이 사실 원활한 대화를 나누기 힘든 20대들과 공통된 대화주제를 드디어 갖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청춘은 아무리 세대가 달라도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걸 제대로 경험하는 중이다.일부에서는 이 드라마들이 추억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한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해 영화 ‘건축학 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7’부터 불고 있는 ‘90년대 복고바람’은 당시를 아주 낭만적으로 접근한다. 현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향수어린 시선으로 다가간다. 그 때문에 아무리 힘든 현실이 그려져도 추억이기에 정겹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 젊은이들이 마주했어야 할 아픈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드라마 ‘미스코리아’ 스틸
최근 나는 이 드라마들 덕분에 20대 청년에게 “1990년대에 20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참 부럽다”는 이야기를 듣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환상을 깨기 싫었다. 내 젊음의 시절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게 싫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잘못 알았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야. 백화점이 무너져 수백명이 죽었고 다리가 무너졌으며 나라 경제가 부도사태를 맞아 국제통화기금의 관리를 받았던 말도 안되는 시대야”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응답하라 1994’는 아쉽게 지난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름다운 추억을 아주 많이 선사했기에 첫사랑이 모두 이뤄지는 말도 안되는 결말도 용서하며 유쾌하게 떠나보낼 수가 있었다. 그 아쉬움을 좀더 리얼한 ‘미스코리아’로 달래볼까 한다. 미스코리아에 당선시켜 망해가는 회사를 살린다는 설정이 황당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했던 당시의 청춘들이 기억나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내 20대를 관통했던 1990년대에 수시로 외친다. “많이 고생했다. 그러나 아름다웠다. 또한 그립다.” 나는 과연 어떤 응답을 받을까? 2014년에는 ‘응답하라 2002’로 응답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M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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