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과 합동공연을 해봤으면 좋겠다. 들국화와 빅뱅 중 누가 더 섹시한지 정확하게 비교해봤으면 좋겠다.”(최성원) “난 싫어.”(전인권) “왜 빅뱅이랑 같이 하고 싶으세요?”(기자) “빅뱅 노래는 안 들어봤는데… 걔들이 제일 유명하잖아. 내가 이런 말 하면 포털에 기사가 좀 뜨지 않겠어?”(최성원)(2012년 5월 21일 마리아 칼라스홀 기자회견 중)

작년 재결성 기자회견에서 들국화로 다시 뭉친 최성원, 전인권, 주찬권은 위 녹취록처럼 기자들에게 위트를 건넬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들국화 컴백 기자회견에 온 수십 명의 취재진 중 들국화의 공연을 실제로 본 사람은 두 명. 들국화의 존재를 모르는 기자도 있었다. 간혹 우스꽝스러운 답변이 나와 키득거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전인권이 홀리스(The Hollies)의 ‘히 애인트 헤비, 히즈 마이 브라더(He Ain’t Heavy, He’s My Brother)를 열창하자 순간 기자회견장에 정적이 흘렀다. 웬만해서 박수를 치지 않는 기자들은 전인권의 노래 짧은 토막에 박수와 탄성을 보냈다. 진심으로 말이다.

이후 들국화는 꿈같은 1년여를 보냈다. 재결성 기자회견 후 전인권이 처음 공식 무대에 선 것은 작년 6월 8일 주찬권의 솔로 6집 ‘지금 여기’ 발매 기념 콘서트였다. 건강 악화로 두문불출하던 전인권은 그간 컨디션 난조로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허나 이날 무대에서는 달랐다. ‘사랑한 후에’를 부르자 순간 객석에 정적이 흘렀고, 쩌렁쩌렁한 목청에 관객들은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듯 보였다. 선명한 고음, 매력적인 이음새, 거기에 살짝 갈라지는 목소리에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고, 후배 뮤지션들은 엄지를 올렸다.

극적으로 부활을 알린 들국화는 이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등 한국의 대표적인 록페스티벌을 포함해 약 서른 번의 공연을 가졌다. 들국화를 기다려온 기존 팬들부터, 들국화를 처음 보는 관객들이 들국화의 공연을 보며 울고 웃었다. 특히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는 주류와 인디를 막론하고 들국화를 목격한 후배 뮤지션들의 열띤 찬사가 이어졌다. 방송을 멀리했던 들국화는 MBC 토크쇼 ‘놀러와’에도 출연해 대국민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 후 들국화의 활동이 크게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계속 공연을 이어갔을 뿐이다.



콘서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슬슬 신곡 작업 이야기가 들려왔다. 들국화는 재결성 후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서 신곡 발표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왔었다. “신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동이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신곡을 하던, 옛날 곡을 하던, 외국 곡을 커버하던지 간에 감동을 주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신곡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은 다른 기획사에서 신경 쓰니 우리는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다만 1집을 뛰어넘는 노래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던 최성원이었다.

들국화가 신곡 ‘걷고, 걷고’와 ‘노래여 잠에서 깨라’를 공개한 것은 지난 4월 2일 합정동 인터파크아트센터에서 열린 콘서트에서였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라이브로 활동해온 밴드답게 신곡도 라이브로 먼저 들려준 것이다. 같은 날 조용필은 19집 ‘헬로’의 전곡을 기자들에게 미리 공개하는 미디어 리스닝 파티를 열었다. 새로움을 선사한 조용필이나 왕년의 창작력을 보여준 들국화나 둘 다 놀라움으로 기억된 하루였다.

4월에 열린 열흘간의 단독공연에는 정태춘, 박은옥, 이중산, 김장훈, 정진운(2AM), 게이트 플라워즈 등 선후배 뮤지션들을 비롯해 소설가 공지영, 박민규, 배우 오광록 등이 다녀갔다. 원래 5월 새 앨범 발매를 목표로 했지만 치일피일 발매일이 미루어졌다. 이윽고 새 앨범 ‘들국화’와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때에 별안간 주찬권의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가요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 앨범 ‘들국화’가 12월 6일 발매됐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1위에 오른 들국화 1집은 1985년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조덕환 4인 체제로 만들어졌고, 최구희, 주찬권이 연주자로 참여했다. 이듬해에는 나온 2집은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주찬권, 최구희, 손진태를 정식멤버로 해서 만들어졌다. 2집까지 발표한 들국화가 와해된 이후 전인권은 허성욱과 ‘1979~1987 추억 들국화’를 내놨다. 이 앨범에는 최성원과 주찬권이 세션으로 참여했으며, 최성원은 여분의 들국화 곡을 옴니버스 앨범 ‘우리 음악 전시회 Ⅱ’에 실었다. 이후 전인권은 들국화 재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1995년에 새로운 연주자들과 들국화 3집을 발표하기도 했고, 최성원은 나름의 창작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원년멤버가 다시 뭉쳐 들국화란 이름을 공식적으로 내걸고 새 앨범을 내놓는 것은 무려 27년 만이었다. 주찬권이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기도 했다.

들국화의 신곡이 나온다고 했을 때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매일 그대와’, ‘제발’과 같은 곡들을 뛰어넘는 들국화의 새로운 노래가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이 노래들은 음악 팬들에게 단순히 고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단지 앞선 세대의 가요이기 때문에 기록하고 찬양해야 하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가슴으로 마주할 수 있는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운 오랜 기간의 검증을 거치며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평가받는 곡들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들국화는 새 앨범에 담긴 다섯 개의 신곡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 ‘재채기’, ‘하나둘씩 떨어져’, ‘들국화로 필래’로 다시 한 번 큰 감동을 선사했다. 우리는 또 하나의 길이길이 사랑받을 ‘들국화 클래식’을 얻은 것이다.



앨범 공개와 함께 들국화는 주찬권의 별세로 신보와 관련된 어떠한 활동도 없을 거라 밝혔다. 최근에는 해체 이야기까지 나왔다. 들국화컴퍼니 측은 “전인권과 최성원이 해체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다만 두 분 모두 주찬권 없이 들국화를 지속하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는 심경을 간접적으로 내비쳐 해체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들국화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주찬권의 부재 외에도 전인권과 최성원의 음악적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도 해체 논의가 진행된 배경 중 하나다. 들국화 해체를 막고 싶은 것이 팬들과 우리의 마음이지만, 동료를 잃은 두 분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전했다.

재결성을 기점으로 지난 1년간은 들국화에게 의미 있는 한해로 기록될 것이다. 전인권의 부활 후 최성원, 주찬권과 극적으로 재회한 뒤 여러 공연 현장을 통해 들국화를 처음 보는 수많은 젊은 팬들을 울렸고, 새롭게 명곡을 만들어냈다. 들국화의 신곡이 음원차트 1등을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절망한 적도 있지, 그냥 포기하고 싶었었던, 길이 안 보일 때도, 기적은 우릴 기다렸어’(들국화로 필래)라고 노래했다. 지난 1년간 그들의 행보는 뜨거웠으며, 거장으로써 박수를 받을만했다.

흔히 들국화 1집을 비틀즈와 비교하곤 한다. 하지만 들국화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주도한 비틀즈와는 다른 모양새라 할 수 있다. 폴 매카트니(최성원)와 믹 재거(전인권)가 한 팀에 있었다고 할까? 거기에 로큰롤의 리듬감과 서정성을 겸비한 건반연주자 허성욱, 불꽃같이 뜨거운 드러머 주찬권, 그리고 최성원 못지않은 창작력을 보여준 조덕환이 있었다. 허성욱과 주찬권은 세상을 떠났고, 전인권과 최성원은 활동이 불투명한 가운데 조덕환은 새 앨범을 준비 중이다. 들국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들국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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