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오의 구기환 트레이너가 신인배우들을 지도하고 있다

어느 배우가 드라마에서 오열하는 연기를 하고나면, 다음 날 포털사이트는 ‘오열 열연’이라는 기사로 도배된다. 비슷한 사례로 여배우의 ‘출산 열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배우들은 이런 류의 연기는 오히려 쉬운 것이라고 말한다. 배우들에게 어려운 연기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연기보다는 에너지를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정확히 전달하는 류의 연기다.

배우들이 어떤 인물의 감정을 정확하게 조각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이성적인 작업에 근접해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배우가 그 인물에 완전히 몰입하여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연기란 실은 상대 배우는 물론 스태프들과의 정확한 약속 안에서 이뤄지는 작업이기에 우리 생각 이상으로 정확한 계산을 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느 배우는 “연기를 하는 순간 내 머릿 속에는 두 가지의 내가 있다. 하나는 그 인물과 동화돼있는 나, 또 하나는 이 상황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나 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에서 말한 에너지를 폭발하는 류의 연기는 그 표현방식이 오히려 단순하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연기이거나 에너지를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사소한 동작이나 표정을 통해 드러내는 방식의 연기는 고도의 계산을 요하면서 또한 그 인물이나 상황 속으로 배우가 완전히 걸어들어가야 가능한 작업인 것이다.

이런 배우들의 노력을 한층 더 이해해보고자, 또 노력하는 배우들이 보여주는 좋은 연기를 좀 더 잘 감별해내기 위해 하정우, 김성균, 주진모 등이 소속된 판타지오에서 서프라이즈 등 신인 배우를 비롯해 강한나, 윤승아, 김새론 등의 연기지도를 담당하는 구기환 연기 트레이너와 ‘배우’ 그리고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감별해보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연기를 배우지 않은 비전문인이나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 보지 않았던 이들일지라도 좋은 연기와 나쁜 연기를 구분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좋은 연기와 나쁜 연기의 차이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빨리 알아채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인이 그리는 감정에 내 감정이 동하는 순간의 힘 덕분이다. 배우의 연기를 쪼개어 분석하고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느낌으로 우리는 그것이 좋은 연기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타인의 감정을 움직이는 연기의 힘은 그러니 실로 대단하다.

전도연은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 마약운반범으로 몰린 평범한 주부를 연기했다

최근 더 없이 훌륭했던 연기를 하나 꼽아보라면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전도연을 언급할 수 있다. 그녀는 이미 영화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며 세계적으로 연기력을 입증받은 배우이기도 하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전도연은 마약사범의 누명을 쓰고 말도 통하지 않는 프랑스 감독에 1년 이상 수감돼있던 어느 여인의 비극적이면서 원통한 시간을 연기했다. 배우로서는 참으로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였을 것이다. 전도연의 역량이 최대치로 발휘된 순간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몇 몇 장면이었다. 한국에 두고 온 어린 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미안함이 뒤섞인 감정을 연기하는 전도연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한 여자의 애끓는 그리움을 우리는 그녀의 표정과 화면 속 에너지를 통해 동화되어 마치 내가 겪은 감정인 듯 느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 상황을 목격한 관객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여운을 느끼게 되며 한동안 그 순간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영화를 소화하게 된다.

그러나 전도연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는 요즘 배우들의 연기력 찬사 기사들의 단골 제목인 ‘열연’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녀의 연기는 대부분의 순간 절제돼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에너지는 고스란히 전달이 됐다. 배우들 역시 전도연의 연기에 엄청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에너지를 겉으로 드러내는 오열신 등은 오히려 배우들에게는 쉬운 연기에 속한다는 것이 대다수 배우들의 이야기다. 반면, 에너지를 속으로 삼킨 상태에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고도의 연기력을 요하는 일이다.

구기환 연기 트레이너는 “아직 경험이 적은 배우들의 경우, 본인이 어느 수준까지 표현해야하는 것인지를 가장 어려워한다”고 말한다.특히 신인의 경우, 본인이 나름대로 대본을 보고 연습을 하고 현장에 나가지만 변수가 많은 현장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잃을 때가 허다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가장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평소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구기환 트레이너는 “주연배우들을 제외하고는 본인이 알아서 연기를 해야지 연출자의 명확한 디렉션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경우 배우들이 굉장히 난감해한다. 내가 사전에 설정한 캐릭터가 먼저일까, 아니면 현장 상황에 맞춰가는 것이 더 중요할까를 놓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의 상황을 가정하고 연습을 하는 것이 몸에 익어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구기환 트레이너(왼쪽)가 서프라이즈 멤버와 연기수업을 진행 중이다

실제 구기환 트레이너가 서프라이즈 멤버들의 연기 트레이닝을 하는 장면을 견학했다. 멤버들은 일단 맨 발로 연습실을 걷는다. 어느 순간 트레이너의 구령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온 몸의 근육과 감정을 노출시켰다. 또 구기환 트레이너는 가상의 밧줄을 떠올려 두 사람 씩 짝을 지어 밀고 당기는 동작을 연습하게끔 했다. 연습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아직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서프라이즈 멤버들은 특정 인물을 연구하게 하거나 특정 대사를 달달 외우게 하는 식의 수업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과 감정에 배우를 노출시켜 순간순간에 연기로 대처하게 만드는 방식의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구기환 트레이너는 “독백 연기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이거 외워와, 연습해와’라고 하면, 그 사람은 늘 자신이 하던대로만 하게 된다. 반복연습의 틀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독백 하나를 하더라도 한참을 뛴 다음에 하면 호흡이 가파라지고 심장이 뛴 상태에서 뱉는 대사의 느낌이 그냥 독백을 할 때와는 다르다. 벽을 밀면서 그 대사를 외우는 순간도 또 다른 느낌이다. 그런 연습에 익숙해지면 촬영을 나갔을 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놀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보게 되는 어느 한 장면 속으로 자연스럽게 걸어들어가기 위해 배우는 수백, 수천가지의 상황 안에 자신을 몰아넣는 것이다.

# 구기환 트레이너는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중국 희곡학원(경극 대학교) 연수과정 및 일본 스즈키타다시 연기메소드 워크숍 등의 과정을 거쳤다.현재는 동서울대학 연기예술학과 연기 강사 및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연기 강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판타지오의 교육사업본부 실장을 맡고 있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