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공연 장면.

뮤지컬에 관해 전혀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귀에 익은 공연제목이 있다. 다름 아닌 ‘아가씨와 건달들’. 1950년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이 공연은 다음해에 최우수뮤지컬 부문 토니상을 수상한 이후 세기를 관통하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국내에선 1983년 첫 선을 보인 이래 무려 17번이나 리바이벌될 정도니, 국내 뮤지컬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흥미로운 건 ‘아가씨와 건달들’을 언급할 때마다 또 다른 뮤지컬이 떠오른다는 점. 바로 ‘브로드웨이 42번가’인데, 이 두 공연은 여러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시대와 무대가 동일하다. 대공황기를 시대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아가씨와 건달들’의 무대인 ‘타임스퀘어’는 ‘브로드웨이42번가’와 연결된 교차로다. 또 다른 공통요소는 동명의 영화가 제작됐고,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42번가’(1933)가 흑백영화인데 반해, ‘아가씨와 건달들’(1955)은 컬러영화라는 정도. 특히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는 현 상황에서 두 공연은 여타 뮤지컬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막대한 규모의 무대장치나 첨단 영상기술로 눈길을 끄는 여느 뮤지컬과는 달리, 추억의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관객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영화 그 이상의 매력

영화 ‘아가씨와 건달들’(1995) 포스터.

영화 ‘아가씨와 건달들’에는 말론 브란도(스카이), 진 시몬즈(사라), 프랭크 시나트라(네이슨) 등 전설의 톱스타들이 등장한다. 개봉한지 근 6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봐도 빠른 극의 진행과 군더더기가 없는 걸 감안하면, 잘 만든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다는 걸 확인한다. 한 가지 아쉽다면,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면서도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는 것. 한 예로, 프랭크 시나트라는 가수 출신이라서 상관없지만, 말론 브란도와 진 시몬즈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두 배우 모두 춤이나 노래가 주류를 이루는 뮤지컬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소위 진지한(?) 캐릭터를 지닌 장르영화에 주로 출연해서다. 상상해보라. ‘대부’에서 느릿느릿 쉰 목소리로 상대를 압도한 노회한 마피아 보스 돈 꼴레오네가 말쑥한 정장 차림의 미소 띤 젊은 도박사로 변신한 모습을. 그래서일까. 이전과는 전혀 딴 판의 색다른 연기를 보인 것까진 좋았으나, 영화 보는 내내 돈 꼴레오네의 잔상이 겹쳐졌다. 그만큼 ‘대부’의 이미지가 강했던 탓이리라.

이와는 달리 이번에 오른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은 뻔한 극 내용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기대감을 어느 정도 충족시킨 것 같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 뮤지컬의 연출가 이지나 씨의 주장처럼, “고전의 사랑스런 캐릭터들은 현대의 관객들에게도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즉, 귀공자풍 스카이 역의 김다현, 능글능글하면서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네이슨 역의 이율, 특유의 푼수끼로 객석을 ‘들었다 놨다’하는 아들레이드 역의 신영숙이 이 공연을 새롭게 빛내고 있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공연 모습.

특히 신영숙의 연기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전작 ‘레베카’를 비롯해 주로 무게있는 역할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던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앙증스런 눈웃음과 간드러지는 가성은 관객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을 정도. 이 공연의 재미와 역동성의 키(key)가 바로 신영숙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녀의 연기는 빛나고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밖에 임춘길(베니)과 김태환(나이슬리) 두 사람이 함께 펼치는 춤과 연기는 감초 역할 이상을 해주었고, 특유의 중저음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은 김용구(빅쥴)의 연기도 좋았다. 마치 가수 임재범과 김동욱의 음색이 비교되듯, 배우 김법래의 마초적인 중저음과 구별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끝으로 이 뮤지컬에서 한 가지 아쉬운 건 사라 역 이하늬의 매력이 그리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 배역이 신앙심 투철한 선교사라서 절제되고 안정된 연기를 펼쳤을 수도 있겠으나, 극 후반에 사랑에 빠진 여인으로서 좀 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기대감을 지울 수 없다.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편집자주>

글.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