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록밴드 디아블로는 이 땅에서 헤비메탈 밴드로서 단맛, 쓴맛을 다 봤다. 2000년에 일본 유수의 헤비메탈 전문 레이블 ‘하울링 불’을 통해 정규 1집 ‘디자이러스 인펙션(Desirous Infection)’을 발표하고 2002년까지 판테라 내한공연 게스트, TTL 콘서트 전국투어, 서태지가 주최한 ‘ETP페스티벌’ 등 국내 굵직한 무대에 섰으며 일본 ‘비스트 피스트 록페스티벌’에서 슬레이어, 판테라, 세풀투라 등 세계적인 밴드와 함께 무대에 섰다. 호시절이었다. 이후 200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한국 메탈계가 극심한 침체기로 접어들었고, 많은 팀들이 해체했다.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가까스로 20주년을 맞이한 디아블로. 음악평론가 성우진 씨는 “디아블로는 ‘한국의 메탈리카, 메가데스’라 할 정도로 강한 존재감을 가지는 팀이다, 헤비메탈의 국가대표 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인기 종목의 메달리스트는 고달픈 법. 디아블로의 지난 20년도 쉽지만은 않았다.
재밌는 소식이 들려왔다. 디아블로의 음반과 노래를 모티브로 한 모바일게임 ‘미스터 브레이커’가 지난 10월 론칭한 것. 장애물을 넘는 간단한 게임인데 스토리가 흥미롭다. 주인공 미스터 브레이커가 바이러스에 오염된 지구인들을 헤비메탈 음악으로 치유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좀비를 처치하면서 공연장으로 질주한다는 내용. 게임 내내 디아블로의 음악이 흐른다. 보컬 장학은 목소리로도 출연했다.
디아블로의 소속사 코럴브릿지는 디아블로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직접 게임을 제작했다. ‘미스터 브레이커’란 이름은 디아블로의 대표곡 제목에서 따왔다. 차승호 코럴브릿지 대표는 “헤비메탈 음악이 공중파 노출이 너무 어렵다보니 홍보 수단을 고민하다가 직접 게임을 제작하게 됐다. 게임을 즐기면서 동시에 디아블로의 음악을 듣게 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주년에 나온 새 EP ‘더 키퍼 오브 소울즈(The Keeper of Souls)’에 수록된 노래 ‘소로우(Sorrow)’는 게임 ‘미스터 브레이커’를 소재로 한 곡이다. 가사를 쓴 장학은 “미스터 브레이커는 헤비메탈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노래 가사는 숨어 있는 헤비메탈 팬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자는 내용이 함축돼 있다”며 “아이템이 재미있어서 곡 작업이 술술 진행이 됐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록밴드를 소재로 게임을 제작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척박한 헤비메탈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모습 역시 국가대표 급 헤비메탈 밴드다운 모습이었다. 다음은 디아블로 멤버들인 추명교(드럼), 김수한(기타), 최창록(기타), 장학(보컬), 강준형(베이스)과 나눈 인터뷰.
Q. 최근 20주년 공연을 개최했다. 소감이 어떤가?
추명교: 블랙홀, 블랙신드롬 등 우리보다 오래 활동해온 선배님들이 계셔서 20주년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가 조금 부끄러웠다. 결성 20주년이 됐지만 최근 메탈을 하는 신진밴드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후배들보다는 아직도 선배님들이 더 많은 것 같다.(웃음) 사실 한국에서 헤비메탈 밴드가 중간에 활동을 쉬지 않고 20년간 꾸준히 활동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나름대로 의미가 깊은 20주년 공연이었다. 원년멤버인 수한이가 옆에 있어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일종의 책임감도 느껴지더라.
김수한: 지난달에 레코딩과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마치느라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몸은 지쳐있었지만 20주년 공연이니 만큼 즐겁게 하고 싶었다. 20주년이 밴드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가 헤비메탈 선배들과 후배들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여주는 음악을 해야지!
Q. 원년멤버는 추명교와 김수한이 남았다. 1993년 결성 당시 이야기를 해 달라.
추명교: 록 키드들이 그렇듯이 우리도 그저 록이 좋아서 합주실에서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그때 다른 팀에 있던 수한이를 눈여겨봤고, 우리 팀으로 데리고 오면서 디아블로의 진용(보컬 박정원, 기타 김수한, 베이스 김형중, 드럼 추명교)이 갖춰졌다. 수한이가 대단한 노력파였다.
김수한: 그렇게 내가 들어가서 다른 멤버들을 밀어내버린 것이지.(웃음) 그때까지 디아블로란 이름은 없었고, 스쿨밴드처럼 음악이 좋아서 연습하던 시절이다. 점점 합이 맞아가면서 주위에서 밴드 이름이 필요하다고 했다. 같이 밴드를 하던 형들이 차를 좋아해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에서 팀이름을 따왔다.
Q. 1993년 결성 당시 어떤 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나?
김수한: 메탈이 인기가 있던 시절이라 팀들도 많았다. 시나위를 비롯해 블랙홀, 블랙신드롬, 크라티아, 아마겟돈, 스트레인저, 미스테리, 멍키헤드 등이 있었다. 우리보다 1년 정도 먼저 결성된 크래쉬도 열심히 활동을 하던 시기다.
추명교: 창록이는 ‘크로우’를 하기 전에 데스메탈 밴드 ‘육시’에 있었다. 홍대 라이브클럽에서 메탈 밴드들이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90년대 후반에 육시와 디아블로가 연습실을 같이 쓸 정도로 친했다. 창록이는 서태지 밴드에 있을 때에도 디아블로와 한 식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자연스럽게 팀에 합류하게 됐다. 창록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김수한의 원 기타 체제로 활동했다.
강준형: 2008년에 서태지 밴드에 들어갔다. 서태지가 활동을 마치고 서태지 밴드가 흩어진 뒤 쉬던 중에 디아블로 형들의 연락을 받고 합류하게 됐다.
장학: 고등학교 때부터 디아블로 공연을 많이 봤다. 동경하던 팀이었다. 디아블로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팀에서 보컬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Q. 크로우는 뉴 메탈을 하던 팀이었다.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에 닥터코어911과 함께 홍대 신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최창록: 당시는 뉴 메탈이 한창 인기가 있던 시절이었고 닥터코어911, 크로우가 최대 수혜자들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2000년에 서태지가 ‘울트라맨이야’로 등장했다. 서태지가 나오면서 홍대 신도 더욱 불탔다. 당시 지금과 달리 어떤 라이브클럽에 가도 관객이 북적북적했다. 좋은 시절이었지.
Q. 당시 서태지 밴드는 미국의 콘, 림프 비즈킷을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를 구사했다. 공연을 실제로 봤는데 정말 멋지더라.
최창록: 당시 유행하던 록 스타일이었다. 그때 서태지 밴드 연습량이 대단했다. 짧은 시간에 합이 나와야 하니까. 밴드의 합이라는 것이 1~2년 활동해도 나오기 힘든데, 서태지 밴드는 짧은 시간에 그 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말 미친 듯이 연습했다. 두세 달 정도 연습기간을 통해 밴드의 합이 나와서 신기할 정도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서태지와 함께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부담감도 꽤 컸다.
추명교: 일본 레이블 ‘하울링 불’과 계약을 체결하고 데뷔앨범을 현지에서 녹음했다. 하울링 불에서 진행한 한국 밴드 오디션에 뽑혀서 EMI를 통해 일본에 가게 됐다. 하울링 불이 미국 지사가 있어서 한미일 3국에 우리 데뷔앨범이 발매됐다. 뿌듯했다. 한국 헤비메탈 밴드로서는 얻기 힘든 기회여서 정말 열심히 작업했다.
Q. 1집에서 ‘고래사냥’을 메탈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작년에 나온 EP ‘Dumb’에서는 80년대 인기 있던 댄스곡인 런던보이스의 ‘Harlem Desire’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인가?
추명교: ‘고래사냥’은 사실 공연에서 딱 한 번 하려고 재미로 만든 곡이다. 1999년으로 기억하는데 2만 여 명이 모인 정동진의 해맞이 공연에서 연주를 했다. 대중에게 헤비메탈이 부담스러울 수 있어서 모두 따라부를 수 있는 곡을 해보자고 한 것이다. 우리는 센 음악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요를 헤비메탈로 한다는 자체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그날 ‘고래사냥’ 무대도 얼굴을 찡그리면서 했다. 그런데 관객 반응이 어마어마하게 오는 거야. 사람들은 장르가 메탈이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이 아는 노래가 나오니 다 따라 부르더라.
김수한: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니아가 아닌 일반인들도 충분히 헤비메탈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 이후로 리메이크에도 신경을 썼다.
Q. 1집을 낸 후 판테라 내한공연 게스트, TTL 콘서트 전국투어, 서태지가 주최한 ‘ETP 페스티벌’, 일본 ‘비스트 피스트 록페스티벌’ 등 굵직한 무대에 섰다.
추명교: 갑자기 공연이 봇물처럼 터졌다. 당시만 해도 메탈 밴드들이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태지 씨가 ‘울트라맨이야’로 컴백 후에 우리를 게스트로 자주 불렀던 것도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메탈 팬뿐 아니라 서태지 팬 분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공연장을 찾기도 했다. ‘ETP 페스티벌’에는 지누션 등 YG 패밀리도 공연했다. 재미있었다.(웃음)
Q. 20년을 오면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추명교: 판테라와의 추억이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이고 영향도 많이 받았다. 2001년 내한공연 때 오프닝을 설 때는 우리가 추앙하는 팀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것 같았다. 그날 공연을 하는데 옆을 보니 판테라 멤버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공연을 끝까지 봐주더라.
김수한: 옆에서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자 판테라 멤버들이 우리를 모두 안아주면서 “헤이 브라더! 위 아 퍼킹 세임(Hey Brother! We are fucking same)”이라고 외치더라.
추명교: 일본 ‘비스트 피스트 록페스티벌’에 갔을 때 첫날 헤드라이너가 슬레이어, 둘째날이 판테라였다. 우리가 둘째 날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에 갔는데 안쪽에서 누가 “브라더”라고 외치면서 다가오는 거야. 필립 안젤모였다. 우리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는 거다. 필립이 “나를 기억하냐? 우리가 너희를 보러 왔다”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거의 2미터를 날아서 필립의 품에 안겼던 것 같다.(웃음)
김수한: ‘비스트 피스트 록페스티벌’이 끝나고 설문조사를 했는데 우리가 최고의 신인 밴드 무대 중 1위를 했다. 우리 밑에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던 여성 뉴 메탈 밴드 키티를 비롯해 스테이틱 엑스와 같은 팀들이 있었다.
Q. 당시만 해도 록페스티벌에서 메탈 밴드들이 각광을 받았다.
추명교: 맞다. 헤비메탈이란 음악이 라이브에서 굉장한 에너지를 발산하니까. 그런데 우리가 미국에서 2집을 녹음하고 돌아왔을 때 상황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1집 때처럼 왕성한 활동을 기대했는데 그럴 수 없었지. 메탈 밴드들이 페스티벌 등 여러 무대에서 점점 소외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서 헤비메탈 밴드들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자 많은 팀들이 깨졌다. 팀을 유지를 할 수가 없으니까.
Q. 해외에서는 여전히 헤비메탈 음악이 팬 층이 확고하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그렇다.
추명교: 헤비메탈은 한국 시장이 아시아에서 가장 바닥일 것이다.
최창록: 메탈음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전무하다. 일단은 노출이 안 된다. 일본만 해도 공중파에서 메탈 밴드들의 공연을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일반인들은 메탈 밴드들의 존재를 거의 모를 정도로 말이다.
Q. 최근 등장하는 아이돌그룹의 음악, 또는 게임 배경음악으로 헤비메탈이 차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걸 보면 한국 사람들이 메탈의 질감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정작 메탈 밴드들에게는 무관심하다.
김수한: 재범이 형의 투어에 참여를 할 때 보면 메탈을 잘 모르는 40~50대 분들도 공연장에서 메탈을 연주하면 반응이 대단하다. 일단 보여주면 좋아하는데, 보여줄 기회가 없는 거지.
Q. 임재범의 공연에도 참여하고 있다.
추명교: 약 3년 전에 재범이 형이 헤비메탈 밴드들끼리의 연합체를 만들려 했다. 로커들이 너무 침체되니까 뭔가 활로를 만들어보자고 하신 거다. 그때 처음 뵙고 인사를 나누게 됐다. 존경하는 헤비메탈 뮤지션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에 나가기 전에 수요예술무대 등에 나갈 때 우리와 함께 했다. 가요 파트는 전문 세션 연주자들이 맡고 디아블로와는 시나위 시절 곡을 비롯해 메탈음악을 했다. 재범이 형이 메탈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다. 가요를 부를 때와 메탈을 할 때 눈빛이 다르다.
Q. 디아블로는 척박한 국내 메탈 신에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여러 기획 등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크래쉬, 나티, 매써드와 함께 기획공연 ‘로드페스트’도 열었다.
추명교: 헤비메탈 밴드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최근 페스티벌은 많지만, 록밴드들에 대한 처우가 말도 안 되게 박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메탈 밴드의 경우 설 무대가 많지 않아 처우가 좋지 않아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공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박하게라도 헤비메탈에 어울리는 무대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로드페스트’는 앞으로 꾸준히 할 계획이다. 올해 첫술을 떴으니 해마다 갈수록 탄탄하게 꾸릴 예정이다.
Q. 최근에는 글렘메탈을 표방한 ‘피해의식’과 같은 흥미로운 콘셉트의 헤비메탈 밴드도 나오고 있다.
추명교: 그렇게 다양한 콘셉트의 밴드들이 나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Q. 새 EP ‘더 키퍼 오브 소울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장학: 3곡이 담긴 EP이기 때문에 20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의 앨범은 아니다. 이번 앨범은 모바일게임 ‘미스터 브레이크’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타이틀곡 ‘소로우’가 게임에 삽입됐다. 과거에 나온 디아블로의 1집과 2집에 ‘미스터 브레이커’ 파트1과 파트2가 담겼는데 ‘소로우’가 파트3에 해당한다. 미스터 브레이커는 일종의 헤비메탈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게임은 헤비메탈을 듣고 감화된 악마 ‘미스터 브레이커’가 메탈 공연장의 관객들을 좀비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간다는 내용이다.
Q. 뮤지션이 게임의 배경음악을 만드는 경우는 많지만, 록밴드를 소재로 게임을 제작하는 것은 최초로 알고 있다.
차승호 대표: 헤비메탈 음악이 공중파 노출이 너무 어렵다보니 홍보 수단을 고민하다가 직접 게임을 제작하게 됐다. 멤버들이 직접 게임 디자인을 해서 게임 회사에 의뢰를 했다. 디아블로의 곡들이 게임의 BGM으로 깔린다. 게임을 즐기면서 동시에 디아블로의 음악을 듣게 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게임을 시작으로 디아블로의 음악이 알려질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재밌는 소식이 들려왔다. 디아블로의 음반과 노래를 모티브로 한 모바일게임 ‘미스터 브레이커’가 지난 10월 론칭한 것. 장애물을 넘는 간단한 게임인데 스토리가 흥미롭다. 주인공 미스터 브레이커가 바이러스에 오염된 지구인들을 헤비메탈 음악으로 치유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좀비를 처치하면서 공연장으로 질주한다는 내용. 게임 내내 디아블로의 음악이 흐른다. 보컬 장학은 목소리로도 출연했다.
디아블로의 소속사 코럴브릿지는 디아블로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직접 게임을 제작했다. ‘미스터 브레이커’란 이름은 디아블로의 대표곡 제목에서 따왔다. 차승호 코럴브릿지 대표는 “헤비메탈 음악이 공중파 노출이 너무 어렵다보니 홍보 수단을 고민하다가 직접 게임을 제작하게 됐다. 게임을 즐기면서 동시에 디아블로의 음악을 듣게 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주년에 나온 새 EP ‘더 키퍼 오브 소울즈(The Keeper of Souls)’에 수록된 노래 ‘소로우(Sorrow)’는 게임 ‘미스터 브레이커’를 소재로 한 곡이다. 가사를 쓴 장학은 “미스터 브레이커는 헤비메탈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노래 가사는 숨어 있는 헤비메탈 팬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자는 내용이 함축돼 있다”며 “아이템이 재미있어서 곡 작업이 술술 진행이 됐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록밴드를 소재로 게임을 제작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척박한 헤비메탈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모습 역시 국가대표 급 헤비메탈 밴드다운 모습이었다. 다음은 디아블로 멤버들인 추명교(드럼), 김수한(기타), 최창록(기타), 장학(보컬), 강준형(베이스)과 나눈 인터뷰.
Q. 최근 20주년 공연을 개최했다. 소감이 어떤가?
추명교: 블랙홀, 블랙신드롬 등 우리보다 오래 활동해온 선배님들이 계셔서 20주년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가 조금 부끄러웠다. 결성 20주년이 됐지만 최근 메탈을 하는 신진밴드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후배들보다는 아직도 선배님들이 더 많은 것 같다.(웃음) 사실 한국에서 헤비메탈 밴드가 중간에 활동을 쉬지 않고 20년간 꾸준히 활동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나름대로 의미가 깊은 20주년 공연이었다. 원년멤버인 수한이가 옆에 있어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일종의 책임감도 느껴지더라.
김수한: 지난달에 레코딩과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마치느라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몸은 지쳐있었지만 20주년 공연이니 만큼 즐겁게 하고 싶었다. 20주년이 밴드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가 헤비메탈 선배들과 후배들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여주는 음악을 해야지!
Q. 원년멤버는 추명교와 김수한이 남았다. 1993년 결성 당시 이야기를 해 달라.
추명교: 록 키드들이 그렇듯이 우리도 그저 록이 좋아서 합주실에서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그때 다른 팀에 있던 수한이를 눈여겨봤고, 우리 팀으로 데리고 오면서 디아블로의 진용(보컬 박정원, 기타 김수한, 베이스 김형중, 드럼 추명교)이 갖춰졌다. 수한이가 대단한 노력파였다.
김수한: 그렇게 내가 들어가서 다른 멤버들을 밀어내버린 것이지.(웃음) 그때까지 디아블로란 이름은 없었고, 스쿨밴드처럼 음악이 좋아서 연습하던 시절이다. 점점 합이 맞아가면서 주위에서 밴드 이름이 필요하다고 했다. 같이 밴드를 하던 형들이 차를 좋아해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에서 팀이름을 따왔다.
Q. 1993년 결성 당시 어떤 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나?
김수한: 메탈이 인기가 있던 시절이라 팀들도 많았다. 시나위를 비롯해 블랙홀, 블랙신드롬, 크라티아, 아마겟돈, 스트레인저, 미스테리, 멍키헤드 등이 있었다. 우리보다 1년 정도 먼저 결성된 크래쉬도 열심히 활동을 하던 시기다.
추명교(좌), 장학
Q. 최창록, 장학, 강준형은 어떻게 디아블로에 합류하게 됐나? 최창록과 장학은 뉴메탈 밴드 ‘크로우’ 출신이다. 또 최창록과 강준형은 서태지 밴드를 거치기도 했는데? 추명교: 창록이는 ‘크로우’를 하기 전에 데스메탈 밴드 ‘육시’에 있었다. 홍대 라이브클럽에서 메탈 밴드들이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90년대 후반에 육시와 디아블로가 연습실을 같이 쓸 정도로 친했다. 창록이는 서태지 밴드에 있을 때에도 디아블로와 한 식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자연스럽게 팀에 합류하게 됐다. 창록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김수한의 원 기타 체제로 활동했다.
강준형: 2008년에 서태지 밴드에 들어갔다. 서태지가 활동을 마치고 서태지 밴드가 흩어진 뒤 쉬던 중에 디아블로 형들의 연락을 받고 합류하게 됐다.
장학: 고등학교 때부터 디아블로 공연을 많이 봤다. 동경하던 팀이었다. 디아블로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팀에서 보컬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Q. 크로우는 뉴 메탈을 하던 팀이었다.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에 닥터코어911과 함께 홍대 신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최창록: 당시는 뉴 메탈이 한창 인기가 있던 시절이었고 닥터코어911, 크로우가 최대 수혜자들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2000년에 서태지가 ‘울트라맨이야’로 등장했다. 서태지가 나오면서 홍대 신도 더욱 불탔다. 당시 지금과 달리 어떤 라이브클럽에 가도 관객이 북적북적했다. 좋은 시절이었지.
Q. 당시 서태지 밴드는 미국의 콘, 림프 비즈킷을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를 구사했다. 공연을 실제로 봤는데 정말 멋지더라.
최창록: 당시 유행하던 록 스타일이었다. 그때 서태지 밴드 연습량이 대단했다. 짧은 시간에 합이 나와야 하니까. 밴드의 합이라는 것이 1~2년 활동해도 나오기 힘든데, 서태지 밴드는 짧은 시간에 그 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말 미친 듯이 연습했다. 두세 달 정도 연습기간을 통해 밴드의 합이 나와서 신기할 정도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서태지와 함께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부담감도 꽤 컸다.
김수한, 강준형, 최창록(왼쪽부터)
Q. 정규 1집 ‘디자이러스 인펙션(Desirous Infection)’은 2000년에 나왔다.추명교: 일본 레이블 ‘하울링 불’과 계약을 체결하고 데뷔앨범을 현지에서 녹음했다. 하울링 불에서 진행한 한국 밴드 오디션에 뽑혀서 EMI를 통해 일본에 가게 됐다. 하울링 불이 미국 지사가 있어서 한미일 3국에 우리 데뷔앨범이 발매됐다. 뿌듯했다. 한국 헤비메탈 밴드로서는 얻기 힘든 기회여서 정말 열심히 작업했다.
Q. 1집에서 ‘고래사냥’을 메탈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작년에 나온 EP ‘Dumb’에서는 80년대 인기 있던 댄스곡인 런던보이스의 ‘Harlem Desire’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인가?
추명교: ‘고래사냥’은 사실 공연에서 딱 한 번 하려고 재미로 만든 곡이다. 1999년으로 기억하는데 2만 여 명이 모인 정동진의 해맞이 공연에서 연주를 했다. 대중에게 헤비메탈이 부담스러울 수 있어서 모두 따라부를 수 있는 곡을 해보자고 한 것이다. 우리는 센 음악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요를 헤비메탈로 한다는 자체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그날 ‘고래사냥’ 무대도 얼굴을 찡그리면서 했다. 그런데 관객 반응이 어마어마하게 오는 거야. 사람들은 장르가 메탈이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이 아는 노래가 나오니 다 따라 부르더라.
김수한: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니아가 아닌 일반인들도 충분히 헤비메탈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 이후로 리메이크에도 신경을 썼다.
Q. 1집을 낸 후 판테라 내한공연 게스트, TTL 콘서트 전국투어, 서태지가 주최한 ‘ETP 페스티벌’, 일본 ‘비스트 피스트 록페스티벌’ 등 굵직한 무대에 섰다.
추명교: 갑자기 공연이 봇물처럼 터졌다. 당시만 해도 메탈 밴드들이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태지 씨가 ‘울트라맨이야’로 컴백 후에 우리를 게스트로 자주 불렀던 것도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메탈 팬뿐 아니라 서태지 팬 분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공연장을 찾기도 했다. ‘ETP 페스티벌’에는 지누션 등 YG 패밀리도 공연했다. 재미있었다.(웃음)
Q. 20년을 오면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추명교: 판테라와의 추억이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이고 영향도 많이 받았다. 2001년 내한공연 때 오프닝을 설 때는 우리가 추앙하는 팀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것 같았다. 그날 공연을 하는데 옆을 보니 판테라 멤버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공연을 끝까지 봐주더라.
김수한: 옆에서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자 판테라 멤버들이 우리를 모두 안아주면서 “헤이 브라더! 위 아 퍼킹 세임(Hey Brother! We are fucking same)”이라고 외치더라.
추명교: 일본 ‘비스트 피스트 록페스티벌’에 갔을 때 첫날 헤드라이너가 슬레이어, 둘째날이 판테라였다. 우리가 둘째 날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에 갔는데 안쪽에서 누가 “브라더”라고 외치면서 다가오는 거야. 필립 안젤모였다. 우리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는 거다. 필립이 “나를 기억하냐? 우리가 너희를 보러 왔다”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거의 2미터를 날아서 필립의 품에 안겼던 것 같다.(웃음)
김수한: ‘비스트 피스트 록페스티벌’이 끝나고 설문조사를 했는데 우리가 최고의 신인 밴드 무대 중 1위를 했다. 우리 밑에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던 여성 뉴 메탈 밴드 키티를 비롯해 스테이틱 엑스와 같은 팀들이 있었다.
Q. 당시만 해도 록페스티벌에서 메탈 밴드들이 각광을 받았다.
추명교: 맞다. 헤비메탈이란 음악이 라이브에서 굉장한 에너지를 발산하니까. 그런데 우리가 미국에서 2집을 녹음하고 돌아왔을 때 상황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1집 때처럼 왕성한 활동을 기대했는데 그럴 수 없었지. 메탈 밴드들이 페스티벌 등 여러 무대에서 점점 소외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서 헤비메탈 밴드들이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자 많은 팀들이 깨졌다. 팀을 유지를 할 수가 없으니까.
Q. 해외에서는 여전히 헤비메탈 음악이 팬 층이 확고하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그렇다.
추명교: 헤비메탈은 한국 시장이 아시아에서 가장 바닥일 것이다.
최창록: 메탈음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전무하다. 일단은 노출이 안 된다. 일본만 해도 공중파에서 메탈 밴드들의 공연을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일반인들은 메탈 밴드들의 존재를 거의 모를 정도로 말이다.
Q. 최근 등장하는 아이돌그룹의 음악, 또는 게임 배경음악으로 헤비메탈이 차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걸 보면 한국 사람들이 메탈의 질감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정작 메탈 밴드들에게는 무관심하다.
김수한: 재범이 형의 투어에 참여를 할 때 보면 메탈을 잘 모르는 40~50대 분들도 공연장에서 메탈을 연주하면 반응이 대단하다. 일단 보여주면 좋아하는데, 보여줄 기회가 없는 거지.
Q. 임재범의 공연에도 참여하고 있다.
추명교: 약 3년 전에 재범이 형이 헤비메탈 밴드들끼리의 연합체를 만들려 했다. 로커들이 너무 침체되니까 뭔가 활로를 만들어보자고 하신 거다. 그때 처음 뵙고 인사를 나누게 됐다. 존경하는 헤비메탈 뮤지션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에 나가기 전에 수요예술무대 등에 나갈 때 우리와 함께 했다. 가요 파트는 전문 세션 연주자들이 맡고 디아블로와는 시나위 시절 곡을 비롯해 메탈음악을 했다. 재범이 형이 메탈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다. 가요를 부를 때와 메탈을 할 때 눈빛이 다르다.
Q. 디아블로는 척박한 국내 메탈 신에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여러 기획 등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크래쉬, 나티, 매써드와 함께 기획공연 ‘로드페스트’도 열었다.
추명교: 헤비메탈 밴드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최근 페스티벌은 많지만, 록밴드들에 대한 처우가 말도 안 되게 박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메탈 밴드의 경우 설 무대가 많지 않아 처우가 좋지 않아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공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박하게라도 헤비메탈에 어울리는 무대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로드페스트’는 앞으로 꾸준히 할 계획이다. 올해 첫술을 떴으니 해마다 갈수록 탄탄하게 꾸릴 예정이다.
Q. 최근에는 글렘메탈을 표방한 ‘피해의식’과 같은 흥미로운 콘셉트의 헤비메탈 밴드도 나오고 있다.
추명교: 그렇게 다양한 콘셉트의 밴드들이 나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Q. 새 EP ‘더 키퍼 오브 소울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장학: 3곡이 담긴 EP이기 때문에 20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의 앨범은 아니다. 이번 앨범은 모바일게임 ‘미스터 브레이크’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타이틀곡 ‘소로우’가 게임에 삽입됐다. 과거에 나온 디아블로의 1집과 2집에 ‘미스터 브레이커’ 파트1과 파트2가 담겼는데 ‘소로우’가 파트3에 해당한다. 미스터 브레이커는 일종의 헤비메탈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게임은 헤비메탈을 듣고 감화된 악마 ‘미스터 브레이커’가 메탈 공연장의 관객들을 좀비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간다는 내용이다.
Q. 뮤지션이 게임의 배경음악을 만드는 경우는 많지만, 록밴드를 소재로 게임을 제작하는 것은 최초로 알고 있다.
차승호 대표: 헤비메탈 음악이 공중파 노출이 너무 어렵다보니 홍보 수단을 고민하다가 직접 게임을 제작하게 됐다. 멤버들이 직접 게임 디자인을 해서 게임 회사에 의뢰를 했다. 디아블로의 곡들이 게임의 BGM으로 깔린다. 게임을 즐기면서 동시에 디아블로의 음악을 듣게 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게임을 시작으로 디아블로의 음악이 알려질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