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에서 이어짐) ‘가을방학’의 노래에 대한 청자들의 평가는 호불호가 엇갈린다. “달콤하고 정갈해 너무 좋다”고 호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지만, “절정부분이 없는 노래들이 모두 비슷비슷해 진부하다”는 평가도 있다. 노래에 고저가 없는 작법은 하나의 스토리 같은 정바비 특유의 송라이팅 스타일이다. 또한 계피는 소름 돋게 하는 절창의 보컬리스트라기 보단 은근하게 가사를 전달하는 섬세한 음색이 매력적인 가수다. 사실 가을방학의 노래는 상큼하고 달콤한 느낌이 전부는 아니다. 쓸쓸한 정서가 가사 속에 복병처럼 숨어있다. 가을방학의 1집이 나왔을 때, 솔직히 달콤한 화음을 구사하는 고전적인 혼성듀엣을 상상했었다. 상상은 곧 깨졌다. 모든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가 너무 좋았기에 가을방학은 계피의 은근한 목소리와 정바비의 탁월한 송라이팅이 합체된 새롭고 독특한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대중가수는 대중을 상대로 활동을 하기에 자연스럽게 개인 정보가 공개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계피의 본명이 무엇인지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계피는 자신의 개인 정보가 공개되는 걸 꺼렸다. 심지어 관객들이 자신의 공연 사진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것조차 싫어했다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성격이 내성적이라 공연할 때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지 말고 그냥 개인소장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제 말을 들어줄까 싶었지만 제가 불편해 하는 것을 알아주시니 고맙더군요. 노래를 하려면 무대에 서야 되는데 핀 조명을 받으면 눈이 부셔 저는 앞이 보이질 않고 관객에게 저만 보여 진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했어요. 그런데 날 잡아 먹으로 온 것도 아니고 제 노래가 좋아서 오신 분들인데 내가 너무 방어적이지 않나 생각하면서 거부감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무대에 올라도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계피)
계피의 본명은 임수진이다. 음악하고는 상관없는 집안의 1남 1녀 중 막내로 1983년 9월 22일에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계피는 또래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기 보다 위인전이나 동화 책보기를 좋아했던 재미없는 꼬맹이였다.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명작동화집 반복해서 봤는데 쉬크한 내용의 단편동화 ‘레몬빛깔의 강아지’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제가 바비 오빠의 가사를 좋아하는 건 뛰어난 문학성 때문입니다.”(계피) 책을 좋아했던 그녀의 어린 시절 꿈은 책을 많이 볼 수 있는 학자나 사서 같은 직업이었다. 유치원시절에 백설공주역을 맡아 동화구현을 했던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1때까지 동네 음악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너무 싫었어요. 피아노에 흥미도 없고 재미가 없어 제가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부모님이 하라하시니 그냥 했었습니다.”(계피)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창원시립어린이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 그녀는 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없다. 중학교 3학년 때 기계설계를 했던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서울 목동으로 올라왔다. 음악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 고등학교 때는 노래방에 즐겨 다녔다고 한다. “박정현, 크리스티나 아귈레라, 그리고 자우림 김윤아는 완전 제 우상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노래방에 가면 진지하게 노래합니다. 그런데 함께 간 분들이 제가 마이크를 잡으면 엄청 기대를 하는데 제 보컬 톤은 섬세한 마이크가 아닌 노래방 마이크로 출력되는 스피커로 들으시면 다들 이게 뭐야하고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웃음)”(계피) 참고로 노래방에서 계피의 점수는 80점 정도란다.
계피는 가슴 떨리게 하는 남자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소녀였다. 남자 아이돌 그룹이 멋있다고 느낀 건 중3때 잭스키스의 ‘커플’을 들었을 때가 처음이다. “성격상 연예인을 좋아한 적은 없지만 보컬 목소리가 감미롭고 카메라를 보는 눈빛이 따뜻해 잠깐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계피) 고등학교 때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목소리에 감정을 넣어야 한다는 의식도 없었고 가수가 되고 싶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2003년 연세대 인문학부에 입학해 불어불문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며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다. 록밴드 미선이의 노래를 듣고 나서야 인디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2학년 때 별 생각 없이 기타를 쳐보고 싶어 동네 음악학원에서 2~3달 배우기 시작했다. 송라이터 책은 어려워 아무거나 자신의 키에 맞춰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3학년 때 공연장에서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제작한 관악청년포크협의회 음반을 구입했다. 이 음반에는 뮤지션들의 웹사이트가 적혀 있었다. “브로콜리너마저 결성을 주도하는 윤덕원씨 이름도 음반에 있었는데 기타와 보컬을 구한다고 올려 있어 연락했습니다. 오디션 개념으로 노래파일을 보내라 해 집에서 컴퓨터 녹음기로 헤드셋 마이크로 기타를 치면서 자작곡을 불러 녹음했어요. 노래 제목도 기억나질 않지만 1분도 안 되는 엄청 짧은 노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계피)
2005년 계피가 윤덕원을 만났을 때, 막 밴드를 시작하려고 드럼 김현호와 건반 김잔디가 함께 밴드 이름을 고심하던 때였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 생각해 스스로 ‘계피’라는 예명을 지었다. 당시 보컬은 덕원이었고 계피는 기타 겸 코러스로 들어갔다. 그해 8월, mbc 대학가요제 예선에 나가 ‘꾸꾸꾸’ 불러 떨어졌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첫 공연은 친구들을 빼면 유료관객이 3명 정도에 불과했다. 2007년 첫 EP [앵콜요청금지]를 발표하자 예상치 못한 반응이 터졌다. EP발표 후 클럽 타 공연엔 사람들이 입장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밴드활동은 취미였고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는데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피드백이 와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를 좋아하는 분들의 기본 성향은 선물이나 편지도 조용히 회사로 보내는 조심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계피)
2008년 12월에 발매한 1집 ‘보편적인 노래’에 참여한 계피는 2009년 초에 대학원 진학을 이유로 밴드를 나왔다. 그녀의 탈퇴를 두고 팬들 사이에서는 이런저런 부정적인 말이 많았다. “대학원 진학보다 사실 앨범을 만들면서 진행방법에 이견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통해 풀어야했는데 서로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오해도 쌓였을 수도 있고. 지금 생각하면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믿었는데 제가 잘못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화가 났다는 상황에 물들어 객관적으로 무엇을 겪었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으니까요.”(계피) 클럽 타 공연을 마지막으로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에서 탈퇴한 계피는 카이스트 문화기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음악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남들은 잘 하는데 저는 두 개를 동시에 하면 에너지가 분산되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계피).
계피는 2009년까지 활동하면서도 한 번도 자신이 프로뮤지션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프로 보컬리스트라 자각한 것은 2012년 6월 실내악 외출 앨범을 녹음하면서부터. “ 프로의 기준은 노래를 하면서 돈을 받고 안 받고 여부일 수 있겠죠.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저는 사람들 앞에서 뭘 하는 게 싫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듣는 것이 싫었습니다. 가을방학 1집을 내고 한 신문과 인터뷰했을 때 사진기자분이 저를 보고 저렇게 끼가 없어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더군요.(웃음)”(계피) 그렇게 싫으면서 노래를 계속하는 힘이 뭘까?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피터팬 컴플랙스의 보컬 전지한 씨가 보컬의 매력은 목소리 톤이나 성량, 열정과 진심보단 세계관이나 감성 같은 ‘태도’라고 말하더군요. 저도 마음에서 나오는 창법이 대중의 호응을 얻은 것이라 생각하기에 끼가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저는 합주할 때를 빼면 혼자서는 연습한 적도 없습니다. 보컬의 감정은 정확한 음정과 기교보다는 자연스러움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연습을 한다고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예전엔 기타를 치면서 보컬을 같이하니까 맡을 걸 하기도 급급해 무대가 부담스러웠는데 요즘은 노래만 하니까 너무 편안해요. 긴장을 너무 하지 않아 문제인데 대신에 집중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템포는 끌고 가지만 제 목소리를 악기에 맞추면 더 조화로운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악기소리를 동시에 잘 들으려 합니다.”(계피)
양희은, 한영애, 이소라가 그랬듯 브로콜리너마저의 덕원, 가을방학의 정바비를 선택한 계피는 분명 송라이터를 고르는 안목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3집에서는 제가 음악적으로 얼마나 더 깊게 들어가느냐는 문제가 있어요. 더 들어갈 수 없어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솔로음반을 낼 수도 있고 정바비 오빠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가면서 기쁨도 느끼면서 드럼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좀 더 실험적인 음악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건 가을방학에서 비정규 음반으로 풀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멜로디 진행으로 가는 작곡가와 작업해볼 수 도 있겠죠.”(계피) (part3에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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