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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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지상과 하늘(기내)에서 동시에 열리는 독특한 형식의 영화제로 출범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11년이 지난 지금,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국제단편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젊은 감독들에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자신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더 큰 영화세계를 향한 등용문으로, 공부의 현장으로 기능했다. 세계 영화인들의 친목 도모와 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은 것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가 일궈낸 성과 중 하나다. 단편영화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순항해 온 영화제의 중심에 안성기가 있다. 1,2회에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했고, 제3회부터는 집행위원장직을 맡아오고 있는 그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산증인이다. 올해로 11회. 새로운 10년을 위한 비행 중비로 분주한 안성기 집행위원장을 만나, 영화제의 어제와 오늘을 들어봤다.

Q.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역사가 위원장님 11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영화제가 개봉하는 매년 가을이 되면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실 것 같습니다.
안성기: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준비로 바빠지죠. 6일간의 짧은 영화제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우리만큼 해외게스트가 많은 영화제도 사실 없어요. 부산국제영화제를 빼고는 말이죠. 20명이 넘는 해외게스트들이 오는데, 그건 아시아나이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해요. 비행기 티켓을 협찬해 주니까요.

Q. 아, 항공료. 게스트 초청비에서 항공료만 아껴도 상당하겠네요.
안성기:
그렇죠. 보통 영화제들은 항공료 예산에서 많은 지출이 발생해요. 그런데 우리는 부상으로 왕복 항공권도 주어지고 상금도 있으니까 뭔가 푸짐한 느낌이 있죠. 그런 소문이 나다보니 이젠 해외에서도 작품 출품을 많이 해요. 외로운 영화제는 아닌 거죠.

Q. 위원장님에게 주어지는 항공혜택은 없나요?(웃음)
안성기:
하하하. 있어요. 1년에 한 번 외국에 나갈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집니다.

Q. (웃음) 영화제 주인으로서 해외 게스트들을 맞는 위원장님만의 철칙이 있다면요?
안성기:
철칙이라기보다는 영화제는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만나서 친구가 될 수 있는 좋은 장이잖아요. 그것이 결국은 우리를 알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먼 훗날 여기에서 어떤 거장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그러니까 밑밥을 잘 뿌려 놓는다고 할까요? 그것이 영화제의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Q.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등이 아시나아국제단편영화제를 통해 발굴됐습니다. 외국감독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안성기:
유명 감독이 된 친구가 있어요. 이름이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우리 프로그래머와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을 거예요. 프로그래머는 1년 내내 영화제에 집중하니까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더라고요. 저는 영화도 하고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다보니 영화제 기간에 바짝 몰두하는 편이에요.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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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개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수석 프로그래머의 역할도 하는 걸로 아는데요, 일정상 작품 선정에까지 관여하기는 힘드시겠어요.
안성기:
네. 그 정도는 못하죠. 그러니까 정경분리라고 할까요?(웃음)

Q.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님과 같은 경우군요.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님도 임기때 행정적인 측면에서의 역할에 집중하셨던 걸로 알아요.
안성기:
맞아요. 그런 식이죠. 하하.

Q. 세계 3대단편영화제로 꼽히는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독일 오버하우젠, 핀란드 템페라를 비롯해 무수히 많은 단편영화제들이 있는데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영화제로 보면 될까요?
안성기:
아시아에 있는 단편영화제 중에서 가장 큰 곳은 일본의 숏쇼츠필름페스티벌이에요. 그 다음이 우리라고 보면 됩니다. 아직 경력이 짧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죠. 그런데 우리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할까. 장편 쪽을 보면 굉장히 잘 만들고 있고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재능 있는 인재가 많기 때문에 단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실제로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좋아지기도 했고요. 영화제 초반에만 해도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정도였어요. 외국 작품과 붙여놓으면 초등학교 수준이었죠. 외국 심사위원들이 우리나라 단편에도 상을 주고 싶은데 도저히 줄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대비가 되니까.

Q. 격차가 큰 이유가 뭘까요? 단편은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상상력을 제한하는 우리 교육의 문제일까요?
안성기:
단편이라는 게 하나의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장편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요. 외국에는 단편만 하는 감독들도 많아요. 모든 걸 단편으로 승부 지으려는 사람도 많고요. 그런데 우리는 졸업 작품이나 과제의 하나로 단편을 생각하는 경향이 많죠. 그러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어요. 제작비의 문제도 있었죠. 외국은 기름지거든요. 좋은 장면을 위해 제작비를 아낌없이 투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해 우리는 그 영세함이 말도 못했어요. 사실 자기 돈을 가지고 영화를 한다는 게 한계가 있거든요. 아무리 단편이라고 하지만 그게 정신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것들이 최근에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추세에요. 일단 단편영화를 지원하는 곳이 많이 늘었어요. 제가 10년 전부터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는데, 거기에도 단편지원 프로젝트가 있어요. 1년에 10작품을 선정해서 500만원 씩 지원하는 거죠. ‘세이프’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병곤 감독도 재단에서 후원을 받아 영화를 만든 경우에요. 그런 식으로 단편영화에 지원하는 곳이 늘어나다보니, 예전보다는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Q. 2회 때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이 대상을 차지한 후 한동안 대상은 모두 외국 작품이 차지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 국내작품이 대상을 받았는데요, 한국단편의 수준이 높아진 방증이라고 봐도 될까요?
안성기: 그런데 아쉽게도 올해에는 국제경쟁에 진출한 한국영화가 단 한편도 없어요. 올해 국제경쟁의 경우 프리미어 작품(최초 공개 작품)으로 자격을 제한했어요. 출품된 작품들을 살펴보니 국제 단편들과 겨루기엔 조금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프리미어 여부에 제한을 두는 규정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러지 말고 놔두자. 좋은 프리미어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죠. 없다고 해서 규정을 바꾸면 우리 영화가 한 단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다음 해를 기대하고 있어요.

Q. 위윈장님은 단편영화 출연한 경험이 있으시죠?
안성기:
지난해 개막작이었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님의 ‘JURY’에 출연했었죠. 2년 전에는 영화제 트레일러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요.

Q. 최근 ‘톱스타’를 내놓은 박중훈 감독도 그렇고 김동호 위원장님도 그렇고 가까운 지인들이 연출에 도전하고 있는데요, 비슷한 계획은 없으신가요?
안성기:
현재로서는 없어요. 지금은 ‘연기나 잘 해야지’하는 마음뿐이에요. 왜냐하면 연기라는 것이 계속 머물러 있는 게 아니거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과 시각이 바뀌는데, 그에 따라 연기도 함께 움직이죠. 연기는 늘 새로워요. 똑같아 보이지만 똑같은 일이 전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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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젊은 시절, 굉장히 남자다운 캐릭터를 많이 맡으셨던 걸로 알아요. 성적 매력이 출중한 배역도 하셨고요. 위원장님이 지금 이 시대에 데뷔하셨다면 어떤 연기를 보여줬을지 궁금하네요.
안성기:
시대마다 요구되어지는 연기가 있어요. 70년대 유신치하에서는 예술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검열이니 뭐니 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죠. 초가집이 나와도 안 되고, 못 사는 게 나와도 안 되고. 현실적인 얘기가 제한됐기 때문에 당시에는 사랑을 다룬 영화들이 많았어요. 그에 걸맞게 배우들도 굉장히 근사했죠. 호감 형들이 각광받는 시대였어요. 그러다가 80년대 들어 시대의 금기를 건드리는 문제작들이 나타나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품은 연기가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그게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기쁜 우리 젊은 날’의 내성적인 영민이나 ‘고래사냥’의 거지왕초 민우, ‘바람불어 좋은 날’의 말더듬이 중국집 배달부 덕배처럼 사회 밑바닥에서 몸부림치거나 듣고도 못 듣는 척 살아가는 역할을 주로 연기했죠. 만약 70년대 분위기가 80년대까지 지속 됐다면 저는 배우로서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사회 저변의 인물들이 80년대에 부각되면서 그게 저와 잘 맞아 떨어진 거죠.

Q. 오늘날의 대중과 과거의 대중이 배우 안성기에게 품고 있는 이미지는 사뭇 다르겠군요.
안성기:
많이 다르죠. 지금은 제가 제도권의 이미지이지만 80년에는 사회성이 짙은 인물을 주로 맡았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어느 한 순간 확 변한 건 아니고요. 살면서 자연스럽게 흘러온 거죠.

Q. 시대를 잘 타고 났다고 생각하시나요?
안성기:
그렇게 생각해요. 시대를 잘못 만난, 너무 훌륭한 분들도 많잖아요. 저는 운 좋게 시대와 잘 맞아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Q. 영화계 행사는 물론 각종 경조사를 잘 챙기시는 걸로 알아요. 거절 못하기로 유명하신데, 진짜 거절에 취약하신가요?
안성기:
제안 들어오는 것이 영화이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면 정말 거절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내가 굳이 안 해도 되겠구나 싶은 일은 저도 거절을 합니다. 한번 거절을 하면 그걸로 딱 끝이고요. 문제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웃음) 또 여유 시간을 빼놓고 일정을 잡는 게 아니라, 모든 시간을 다 내놓고 움직이기 때문에 변변한 여행도 못 가죠. 여행을 가고 싶어도 뭔가가 다 걸리는 거예요. 거기에 경조사까지 들어오면 빡빡해지는 거고요. 그래서 촬영할 때가 가장 편해요. 촬영할 때는 거절을 해도 용서가 되잖아요.(웃음)

Q. 반대로 타인이 거절 못하게 만드는 능력도 탁월하신 것 같아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나 ‘굿 다운로더 캠페인’에 참여하는 인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안성기:
제가 제안을 하면요? 하하. 많이들 와서 도와주죠. 이번 영화제 특별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이정재 씨도 “같이 해 줘~” 하니까 “네. 선배님!” 하면서 바로 응해 줬어요. ‘굿 다운로더 캠페인’의 경우가 특히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박중훈 씨와 내가 공동위원장을 하니까 더 신경 써 주는 게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Q. 10년 넘게 영화제를 꾸려오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요?
안성기:
이 영화제의 특징은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거예요. 3회 개막식을 종로 코아극장에서 했는데, 뒤풀이 장소가 마땅히 없는 거예요. 그래서 뒷골목 포장마차 두 개를 급조해서 외국 게스트들을 모셔놓고 대접했죠. 그런데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다음 회부터는 우리가 아예 포장마차를 차려서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금호아시나아그룹 바로 옆 공간에 영화제 기간 동안 포장마차를 설치해 둬요. 누구나 와서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을요. 그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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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약주는 잘 하시나요?
안성기:
요즘은 조금 즐기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안 했고, 못 했고.

Q. 왜 뒤늦게야 술을…
안성기:
예전에는 운전을 직접 하고 다녀서 술을 잘 안 마셨어요. 금방 취하는 스타일이라 멀리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매니저들과 함께 다니면서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는데 주량이 늘더라고요. 요즘은 취기가 살짝 올라오는 느낌이 좋아요.(웃음) 왜 예전 할아버지들이 식사 때 반주하면서 “캬~ 좋다” 이러잖아요. 그 느낌을 이제 알겠는 거죠. 그런 저를 보고 박중훈 씨가 그래요. “이제 이해가 되시죠? 다음 날 괴로워도 또 마시고 싶은 마음 아시겠죠?”(웃음)

Q. 많은 배우들이 위원장님을 롤모델로 삼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위원장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의 애티튜드는 어떤 건가요?
안성기:
타인을 배려하는 거죠. 그 속에는 모든 게 포함돼 있는 것 같아요.

Q. 그럼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안성기:
포용! 역사적으로 여성은 뭔가 수세의 입장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넓게 열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Q. 요즘은 조금 변한 것 같아요. 오히려 남자에게 필요한 게 포용이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배려해야 하는 상황이 많더라고요.(웃음)
안성기:
잘은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하하.

Q. 어떤 사람이 인도하느냐에 따라 영화제의 성격도 성장의 크기도 많이 달라지는데요, 그런 면에서 일견 뿌듯한 느낌이 크실 것 같습니다. 지난 11년간 순항해 왔으니까요.
안성기:
뭐랄까. 이젠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어요. 그런데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님이 13,14년 재임하다가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듯이, 저도 언젠가는 이 자리를 후배들에게 넘겨줘야죠. 그런 게 필요해요. 안정감도 좋지만 영화제가 도약하려면 과감하게 테이크오프 하는 것이 필요하거든요.

Q. 위원장님 안 계신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쉽게 떠오르지 않네요.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없었던 김동호 위원장님이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하셨을 때의 충격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성기:
그런 건 잠시에요. 세상은 어떻게든 적응을 하게 돼 있고, 새로 온 사람도 금방 그 역할을 잘 수행하게 됩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건 절대 없어요. 누가 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영화제의 아버지’로 불리신다고 들었어요. 먼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안성기
: 그런 건 없어요. 지금은 그냥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오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영화를 통해 동시대와 호흡하며 살면 좋겠다!’ 제가 원하는 건 그거 하나에요.

글,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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