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노력으로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다소 진부한 경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박서준은 꾸준히 자신을 갈고닦고 시험해온 배우다. 외꺼풀 눈을 끔뻑이며 웃음 짓는 표정만 보면 무슨 근심이 있을까 싶지만, 뜻밖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그는 자나 깨나 연기 생각뿐인 외골수였다.Q. KBS2 ‘패밀리’(2012)로 일일드라마를 경험했지만, 주말드라마는 처음이다. 50부작의 주말극을 성공적으로 마친 기분이 어떤가.
KBS2 ‘드림하이2’에 출연하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오디션에서 낙방했고,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수없이 좌절과 극복을 반복한 그에겐 나이테처럼 성장통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 만난 작품이 바로 MBC ‘금 나와라 뚝딱!’(이하 금뚝). 드라마 속 주변인 ‘방탕한 귀공자’ 박현태를 모성애를 자극하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바꿔 놓은 것도 온전히 박서준의 공이다.
“나는 이제야 출발선에 섰다”고 말하는 그의 단호한 표정에선 겸손을 넘어선 연기에 대한 갈망과 결기가 읽힌다. 배우라는 쉽지 않은 길에서 막 발걸음을 뗀 그의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배우, 그리고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뜻 모를 기대감을 품게 하는 배우 박서준을 만났다.
박서준: 뭔가 ‘금뚝’은 나를 수면 위로 올려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웃음). 이번 기회를 통해 나를 많이 알렸다. 역시 시청률을 무시할 수가 없더라.
Q. ‘금뚝’은 다른 주말드라마와는 달리 젊고 경쾌한 느낌이 있었다.
박서준: 백진희와 함께한 장면은 미니시리즈 같은 느낌도 있었다. 마치 큰 줄거리에 붙은 또 다른 이야기랄까. 내가 대선배들과 함께 연기하면서 어색하지 않았던 건 작품 자체의 느낌도 한몫했다.
Q. 백지희와의 호흡이 좋았다. ‘눈물의 세족식’을 기점으로 ‘몽현태 커플’이라는 애칭을 얻는 성과도 거뒀다(웃음).
박서준: 사실 나는 멜로 연기가 처음이었다. 그전에는 모두 짝사랑하는 역할이었다. 예전에는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멜로 연기를 하다 보니 상대방과 호흡이 맞고 조화가 이뤄져야 연기가 나오겠더라. 진희와 친해지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사이가 가까워지니까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Q. 현태의 풋풋한 모습은 어떨 때는 정말 연기인지 아닌지 가늠을 못 하겠더라. 그만큼 연기가 자연스러웠다는 이야기다.
박서준: 내가 뭔가를 일부러 설정한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그걸 그대로 봐주는 건 아니더라. 현태가 애정결핍이라는 부분은 감정적으로 가져가되, 표현하는 데 있어서 어색한 부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눈빛이나 떨림, 이런 디테일한 것들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현태가 아닌 박서준의 입장에서 보면 오글거리는 부분도 있었다(웃음). 대사 외적인 부분으로 ‘현태가 왜 이렇게 행동할까’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연기가 하고 싶었다.
Q. 특히 뭐랄까, 진희의 고백에 발을 동동 구르며 당황하는 연기에는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모두 대본에 나온 부분인가.
박서준: 대본에는 지문이 거의 없었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구현해내는 것이 연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연기하다 보니 그런 디테일한 부분에서 캐릭터가 잡히고 관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현태의 입장에 대입해서 생각했던 게 도움이 됐다.
Q. 극 중 ‘판교 엄마’ 금보라와의 ‘케미’도 돋보였다. 둘의 연기에는 실제 모자관계를 보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박서준: 선생님(박서준은 금보라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이 “너와 난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둘 다 중심에 있는 인물이 아니다 보니 결국, 우리는 ‘신 스틸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다(웃음). 선생님은 한 장면을 위해 의상스타일부터 모든 걸 꼼꼼히 챙기셨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촬영 전날에 부담을 느껴 밤을 새운 일이 많다. 현장에서 상대방의 호흡에 맞춰 연기하는 법을 배웠다.
Q. 여러모로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부잣집 막내아들의 감정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겠다.
박서준: 현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의 사춘기 때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집에서 눈치를 보면서 친엄마한테는 틱틱 대며 소리를 지르는. 그때 나의 과거의 경험과 연기를 연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작품을 끝내고 아쉬움은 없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만큼은 다 보여준 것 같다. 또 청담동과 몽현이네를 오가며 부유한 가정과 소소한 가정을 둘 다 경험할 수 있었던 것 나뿐이 없을 거다(웃음).
Q. 연기에 개인의 경험을 넣는다는 것에는 배우로서는 한계가 느껴질 법도 하다.
박서준: 감정신을 할 때 그런 걸 많이 느꼈다. 슬픈 연기는 과거의 아픈 경험을 끄집어내서 표현하는 게 아니더라. 상황에 충분히 몰입해야만 감정신을 소화할 수가 있다. 내가 주체적으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그래서 박해일이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같은 배우들을 롤모델로 꼽는 건가.
박서준: 예전에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다. ‘드림하이2’를 하면서 느낀 게 사람의 사고가 계속 변하더라. 나만의 매력이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연기자로서 나의 그릇이 어느 정도 크기일지 생각해봤다. 지금은 내 나이 때에 맞는 역할들을 맡다 보니 크게 두려움은 없지만, 내가 삼십 대가 되면 어떻게 될까. 도화지 같은 매력을 갖춘 배우가 아니라면 살아남기 힘들 거다.
Q. 어린 나이에 비해 굉장히 성숙한 것 같다. 어릴 적에 고생을 많이 한 건가(웃음).
박서준: 세상이 생각하는 대로 돌아가지는 않더라(웃음). 데뷔 전에 오디션도 보고 의상피팅까지 끝냈는데도 출연이 무산된 적이 많다. 그때가 스물네 살에서 스물다섯 살이 되는 시점인데, 일이 잘 안 풀려서 지쳤고 방황도 했다. ‘드림하이2’를 하면서 뭔가를 하는 데는 자신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덤으로 기다림을 즐기는 법도 배웠다.
Q. 배우 박서준에게는 ‘금뚝’ 이후가 진짜 시작일 듯하다. 배우라는 꿈을 이루고 난 뒤에 지금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박서준: 어릴 적에는 대학 입시만 바라보고 연기를 했었다. 그땐 확신도 없었고,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았다. ‘금뚝’ 오디션을 보면서 이형선 PD에게 “너에게는 뭔가 좋은 에너지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가 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연습했던 것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좋은 성과가 있지 않을까(웃음). 물론 나는 이제야 출발선에 섰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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