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선하디 선한 눈망울을 지닌 배우에게서 과연 악인의 분위기가 뿜어져 나올 수 있을까. 걱정은 기우였다. 17일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황금의 제국’의 장태주 역을 맡은 고수는 선과 악을 오가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신도시 개발, IMF, 글로벌 금융위기 등 1990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 경제사에서 벌어진 주요 사건을 배경으로 기업의 주인 자리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싸움을 그린 ‘황금의 제국’은 선굵은 이야기로 특히 남성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결 묵직해진 배우 고수의 존재감이 자리했다. “스스로도 큰 도전을 해낸 데 대한 만족감이 크다”는 그는 ‘황금의 제국’으로 15년 연기 인생에 의미심장한 발자국을 남겼다.

Q. 이번 작품 속 연기를 두고 어떤 이들은 “천사가 악마로 변했다”고 하더라. 스스로 평가하기엔 어땠나.
고수: 확실하게 선인지 악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보통 드라마는 선악의 기준이 또렷하지만 우리 작품은 모호한 선악의 대비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연기하면서도 무엇보다 신선하게 다가왔다.

Q. 무엇보다 남성팬들이 많이 늘었을 것 같다.
고수: 식당에 가면 CEO처럼 보이는 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며 많이들 좋아하시더라. 아마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 겪는 권력관계에 대한 치밀한 묘사나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같은 부분이 남성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많이 형성한 것 같다.


Q. “세상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겁니다”와 같은 명대사들도 방송 내내 회자됐다.

고수: 연기하면서도 ‘어떻게 이런 대사를 쓸 수 있지’란 생각에 깜짝 놀라곤 했다. 사실 그런 묵직한 대사를 짧은 시간 안에 집중해 소화하느라 살도 많이 빠질 정도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 전체가 흔들리지 않고 갔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내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Q. 극중 태주는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성진그룹에 들어가지만 결국 그들과 비슷하게 변해가고 만다. 그런 태주의 모습을 연기할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
고수: 기분이 참 묘했다. 자신이 예전에 복수심을 가졌던 대상과 비슷한 면모로 변해간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다. 정말로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면서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안타깝기도 했다.

Q. 태주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작된 싸움판에서 떠나지 못한다. 어떤 심경이었을까.
고수: ’황금의 제국’을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던 이들은 처음에 시작한 싸움의 명분을 잃었으면서도 계속 전진만을 한다.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서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덫에 걸린 게 아닐까. 그런 모습이 때론 참 슬펐다.


Q. 선악의 구도가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캐릭터라는 점도 연기하면서 쉽지 않았겠다.

고수: 감정선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 어려웠다. 착하고 순하던 인물이 여러 사건을 겪으며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누가 선악의 잣대를 이분법적으로 들이댈 수 있을까. 결국 나약한 인간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Q. 이전에는 ‘순수 청년’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 작품으로 인해 그런 모습을 많이 벗어난 것 같나.
고수: 작품 속 캐릭터와 나는 별개다.(웃음) 다만 ‘황금의 제국’은 마음 속에 꽤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Q. 차기작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고수: 전도연 선배와 함께 촬영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아마 다음 작품은 영화가 될 것 같은데 일단은 좀 쉬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BH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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