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예기치 않은 순간 불쑥 찾아와 인생을 뒤흔든다. 카센터 직원과 콜 기사로 ‘투 잡’을 뛰는 서른다섯의 차종우(신하균)에겐, 그런 날이 ‘적어도’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17년 전, 고등학생이란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됐을 때. 그리고 또 한 번은 방금 전, 그가 콜택시에 태운 손님이 뒷좌석에서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됐을 때. 하루아침에 미혼부가 됐던 차종우가 이번엔 살해용의자가 됐다. 가만히 있다가는 억울하게 누명을 쓸 판. 차종우는 36계 줄행랑을 친다. You better run run run run~.

관람지수 10.

100미터 달리기를 기대했는데, 마라톤 경주를 본 기분 – 6점



기대만큼 속도감이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다. 100미터 단거리 달리기를 상상했는데, 마라톤 경주를 감상한 기분이랄까? 오해는 말자. 마라톤이 지루한 종목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액션과 신파와 코미디가 동거하는 <런닝맨>은, 구조 상 ‘속도보다는 페이스 조절’이 필요한 영화라는 의미다. 무릇, 달리기에도 요령이 필요한 법이니까. 일단 차종우의 도주가 건져 올리는 액션장면들은 좋다. 쫓고 쫓기는 오락적 쾌감이 상당하고, 공간활용능력도 뛰어나 시각적인 재미를 더한다. 청계천을 지나, 종로 뒷골목을 찍고, 동작대교를 넘어, 상암월드컵경기장까지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는 차종우의 동선 속에서 서울의 풍경이 읽힌다.



문제는 액션과 다른 요소들 간의 불균형이다. 신나게 달리던 영화는 신파와 코미디를 수용하면서 급격히 페이스를 잃는다. 종우와 종우의 아들(이민호)이 만들어내는 신파는 겉돌고, 명예회복을 노리는 형사반장 상기(김상호)와 특종을 쫓는 열혈기자 선영(조은지)이 제조해내는 유머는 성공 타율이 그리 높지 못하다. 음모 뒤에 숨은 악당 캐릭터들 역시 구태의연하거나 단조로워서 그다지 위협적인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극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웃음과 감동을 녹여낸 게 아니라, 12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야 한다는 강박이 <런닝맨>의 페이스를 흐리는 인상이다.



이 중 가장 아쉬운 지점은 영화가 신파를 다루는 방법이다. (<런닝맨>의 근간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라고 강조한 감독의 말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부자지간의 관계 회복’에 힘쓰는 기색이 역력한데, 그것이 도리어 아킬레스건이 됐다. 사랑이든 부정이든 우정이든, 영화가 어떤 관계에 집중할 땐 배우간의 화학작용이 중요하다. 하지만 <런닝맨>에는 그런 시너지 효과가 의외다 싶을 정도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부정은 정서적으로 거의 힘을 못 쓰고 방치 돼 있다. 신하균은 여전히 폭발적이지만 사건의 초점이 아들과의 관계회복으로 유턴하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져 버린다. 그의 도주 장면을 조금 더 볼 수 있었으면 훨씬 신났을 것이다. 아들 역을 맡은 이민호는 데뷔년도만 놓고 보면 신하균과 동기뻘 된다. 하지만 시종일관 어깨에 잔뜩 힘주고 경직된 자세로 일관하는 그의 모습은 ‘아역과 성인’ 연기자 그 사이 어디 즈음에 갇혀 있는 듯 보인다.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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