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 보니까 ‘재즈의 초상’이 떠오르지 않아요? 이 사진 촬영 날에는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한국 재즈를 재조명하는 기획 릴레이 공연 ‘재즈 타임즈’의 기념사진에는 스물여섯 명의 신구 한국 재즈연주자가 찍혔다. 재즈비평가 김현준 씨는 이 사진을 보고 사진작가 아트 케인이 1958년 뉴욕 할렘에서 전설적인 재즈연주자 57명을 모아놓고 촬영한 사진 ‘재즈의 초상(Jazz Portrait)’을 언급했다. ‘재즈의 초상’에는 디지 길레스피, 레스터 영, 카운트 베이시, 델로니우스 몽크, 진 크루파, 찰스 밍거스, 아트 블레이키 등 그야말로 전설들이 모두 모여 있다. 박성연, 김수열, 이동기, 최선배, 정성조 이정식, 말로, 웅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연주자들이 함께 한 한국판 ‘재즈의 초상’의 무게감도 이에 못지않다.

이달 10일부터 서울과 부산 LIG아트홀에서 진행 중인 ‘재즈 타임즈’는 무려 50여 명의 재즈연주자가 출동하는 의욕적인 공연으로 기획됐다. 14일 LIG아트홀 합정 공연에는 한국재즈의 산 증인들인 테너색소포니스트 정성조,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정성조는 1970년대 초 ‘정성조와 더 메신저스’를 결성해 활동했으며, 한국재즈의 대모 박성연은 1978년부터 재즈클럽 야누스를 운영하며 수많은 재즈 연주자들에게 활동공간을 마련해줬다.


정성조 퀸텟이 첫 곡으로 ‘All The Things You Are’를 연주하자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 거장들이 함께 한 재즈 앨범 < Jazz At Massey Hall >의 연주가 떠올랐다. 부자지간인 정성조(테너색소폰)와 정중화(트롬본)는 일말의 양보 없이 즉흥연주를 주고받았다. 그 사이로 임미정(피아니스트)이 날렵하게 차고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재즈의 맛. 삼바로 편곡된 ‘It Might As Well Be Spring’에서는 정성조의 우아한 플루트 연주가 빛을 발했다. 정성조는 “재즈라고 하면 즉흥적으로 막 하는 것 같지만 오랜 합주가 중요하다”며 “임미정은 나와 함께 한 지 벌써 15년, 최은창(베이스)은 10년이 된 연주자들”이라고 소개했다.

중간에 게스트로 등장한 박성연은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It Don’t Mean a Thing(If It Ain’t Got That Swing)’을 제법 빠른 템포의 리듬으로 소화했다. 자유로운 스캣에서는 관록이 묻어났다. 박성연이 오랜 세월 불러온 ‘Antonio’s Song’이 흐르자 공연장이 희뿌연 안개로 가득 차는 듯했다. 이날 객석에는 이동기, 신관웅, 말로, 배장은, 이지영, 김정렬, 한지연, 써니킴 등 신구 재즈연주자들도 자리했다. ‘재즈 타임즈’는 이달 28일까지 계속된다. 행사장에는 한국재즈가 걸어온 시간의 흔적들을 담은 사진도 전시된다.

사진제공. LIG아트홀

글.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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