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속 튀는 남자] 샘 해밍턴, 바나나 라떼는 정녕 어떤 맛인가요?
[남자 속 튀는 남자] 샘 해밍턴, 바나나 라떼는 정녕 어떤 맛인가요?
샘 해밍턴을 만난 날, 유독 봄 햇살이 강하게 내려 쬈다. 지난겨울 스산했던 여의도 거리는 봄의 따스한 기운에 들뜬 표정들로 가득했다. 햇살이 좋으니 모처럼 일광욕을 해야겠다는 샘의 표정 역시도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휘감은 설렘의 기운은 햇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터뷰 도중 조심스레 다가와 음료수를 건네고 사진을 함께 찍자고 요청하는 이들이 호주 사나이 샘의 봄날을 짐작케 했다. 한 중년 여성은 “우리 아들도 군대에 있어요. 내가 완전 팬이야”라고 말했고, 중년 남성 무리들도 그를 보고는 “고생 많아요”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생활 11년차, 술자리에서 맺은 인연으로 한국어를 잘 하는 외국인을 찾는다는 한 재연 프로그램 PD의 요청에 응하면서 우연으로 시작하게 된 방송인 생활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됐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은 호주형, 샘 해밍턴의 봄날은 지난 2월 방송된 MBC <라디오 스타>(이하 라스). 당시 낸시랭, 뮤지 등과 함께 ‘희한한 사람들’ 특집과 함께 왔다. 한국 사람보다 더 유창한 입담으로 <라스> MC들을 초토화 시켰고, 아직 방송도 나가기 전 <라스> 제영재 PD는 마침 <일밤>의 새 코너 ‘진짜 사나이’를 기획 중이던 김민종 PD에게 샘의 활약상을 귀띔했다. 결국 그는 김수로, 서경석, 미르, 류수영, 손진영과 함께 2013년의 육군훈련소 연병장으로 들어섰다. 겁도 없이 덜컥.

Q. 역시 가장 묻고 싶은 것은 군 입대 후회하지 않느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인기가 굉장하다. 고생스럽겠지만 유명세가 기분 좋겠다.
샘 해밍턴 :
처음 제작진을 만났을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는 미팅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이후에 내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했다. 막연하게 어려서부터 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도 있었고, 굳이 한국 군대가 아니더라도 군대라는 조직을 남자로서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하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냈던 것 같다. 그런데 진짜 하자고 전화가 왔다. 그제야 고민이 되더라. 나 이거 괜히 한거 아닌가 하고(웃음).

Q. 군 생활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나.
샘 해밍턴 :
말도마라. 정말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훈련도 훈련이지만 힘든 것은 역시 단체생활. 외국 사람들은 단체생활 거의 안한다. 다들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그나마 내가 경험한 단체생활이라고는 보이 스카우트 정도. 그러나 그때 역시도 개인플레이는 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단체생활! 그리고 낯선 군대 언어(용어) 때문에도 힘들었다.
[남자 속 튀는 남자] 샘 해밍턴, 바나나 라떼는 정녕 어떤 맛인가요?
[남자 속 튀는 남자] 샘 해밍턴, 바나나 라떼는 정녕 어떤 맛인가요?
Q. 힘든 점이 상상 이상이었다면, 구멍병사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겠다.
샘 해밍턴 :
아휴(깊이 한숨을 내쉬더니) 전혀 예상 못했다. 사실 힘들 것이라고는 당연히 생각했지. 하지만 내가 구멍이 되리라고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돼버리니 속상하다. 정말이지 구멍은 전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을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더라. 나 역시도 내가 구멍병사처럼 여겨졌으니. 한심했다.

Q.너무 낙심마라. 그래도 같은 구멍 동반자, 손진영이 있지 않나. 아무래도 다른 멤버들 보다 두 사람 사이가 더 돈독할 것 같은데?
샘 해밍턴 :
오. 아니다. 구멍끼리 같이 있으면 결코 구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군대에서는 거리를 둬야한다. 사실 진영, 훈련소 가기 전에 나한테 와서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면 자기 할 일도 못하면서 남들한테 신경 쓰느라 구멍이 된다.

Q.그런 속사정이 있다니. 듣고 보니 납득이 된다. 강요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다들 이제는 무척 친해졌을 수밖에 없겠다.
샘 해밍턴 :
형제를 얻은 느낌이다. 군부대 밖에서도(‘진짜 사나이’ 멤버들은 한 달에 일주일을 부대에서 지낸다) 카카오톡 단체방을 열어 서로 연락하고 챙겨준다. 누구 한 명 아프다고 하면 서로 위로해주고 난리다. 군대 안에서야 당연히 그렇고, 밖에 있을 때도 늘 같이 있는 느낌이다. 너무 고생스러우니까 촬영일자가 가까워오면 너무 가기 싫고 그런데, 또 멤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되기도 한다. 6명 출연자들이 스케줄도 있고 촬영일 외에는 서로 모이기가 힘들다. 그러니 촬영일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훈련 생각하면 또 막막하고. 촬영이 끝나가는 시점에는 헤어진다는 생각에 속상하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도 너무 보고 싶고, 옆에 없는 것이 허전할 정도다.

[남자의 일생] [INTERVIEW][남자 속 튀는 남자] 샘 해밍턴, 바나나 라떼는 정녕 어떤 맛인가요?
방송화면" /><진짜 사나이> 방송화면

Q. 힘든 군 생활이긴 하지만 형제 같은 멤버를 얻었다니 부럽다. 그런데 가장 부러운 건 그 바나나 라떼를 먹을 수 있다는 것. 방송을 보다가 저건 무슨 맛일까 너무 궁금했다.
샘 해밍턴 : (골똘히 고민하더니) 바나나 맛이다. 그런데 맛 이상의 힘이 있다. 내게는 일종의 힐링. 기분이 안 좋을 때 한잔 때리면 업이 된다. 내게는 너무나 큰 힘이 되는 간식이었다.

Q. 바나나 라떼 외에도 군대리아, 뽀글이가 있다. 순위를 매겨달라.
샘 해밍턴 :
1위 바나나 라떼. 2위 군대리아. 3위 뽀글이. 아, 아니다. 솔직히 순위를 가릴 수 없다. 먹는 순간이 너무 다르니까 다가오는 의미도 각자 다르다. 군대리아는 아침식사 용이다. 뽀글이는 야근용. 바나나라떼는 자판기로 갈 수 있을 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또 잔돈이 없으면 못 먹는다. 각자의 역할이 다른 음식이다.

Q. 샘의 먹방도 화제가 됐다. 혹시 먹는 CF 제안은 안 들어왔나.
샘 해밍턴 : 아직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제안이) 들어오면 좋지. CF를 찍을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

Q. 참, 백마 부대를 나올 때 정말 너무 많이 울더라.
샘 해밍턴 : 원래 눈물이 많은 남자라. 하지만 같은 부대에 그렇게 오래 같이 있다 보면 정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대 선임들은 사회에서는 우리가 챙겨줘야 하는 동생들이기도 했는데 정신없이 훈련받고 지나가다보니 그런 점에서 소홀했던 것 같았다. 미안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롤링 페이퍼도 워낙에 감동이었고.

Q. 유독 기억에 남는 일반 병사들은 누가 있나.
샘 해밍턴 : 다 기억에 남는다. 한 명 한 명. 훈련소에서 만난 독사 대장도 생각나고, 백마의 중대장과 부대장도 생각난다. 모두가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완전히 다른 환경,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서 다들 너무 많이 도와줬다. 그곳의 룰을 지켜야만 하는 상황이 고된 것이지, 일부러 못되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수들 모두가 각자의 매력이 있고 장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Q. 혹시 한국남자의 특징을 발견하지는 않았나.
샘 해밍턴 :
글쎄, 그런 생각은 못해봤다. 그런데 나보다는 다들 단체생활에 익숙해 보였다. 내가 외국인이고 또 외아들이라 더 불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배려심과 의리도 대단하다. 하지만 이게 한국남자의 특징인지 군대의 특징인지는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남자 속 튀는 남자] 샘 해밍턴, 바나나 라떼는 정녕 어떤 맛인가요?
[남자 속 튀는 남자] 샘 해밍턴, 바나나 라떼는 정녕 어떤 맛인가요?
Q.참, 아까 보니 인기가 대단하더라. 요즘은 길거리 지나다니기도 불편하겠다.
샘 해밍턴 :
그렇다. 많이 알아봐주신다. 그래서 사실 친구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다. 다들 사진 찍어달라고 사인해달라고 하니까 일일이 응해주다 보니 같이 가던 친구들이 많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땐 너무 미안해진다. 그래도 정말이지 이런 반응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Q.얼마 전에는 <무릎팍도사> 녹화도 했다. 단독 토크쇼인 만큼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샘 해밍턴 :
처음 전화가 왔을 때는 당연히 ‘진짜 사나이’ 멤버들과 함께 나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혼자 나오라더라. 와우. 거기는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만 나가는 것이지 않나. 영광이었지.

Q.과거에는 독도나 투표독려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한국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 것 같다.
샘 해밍턴 :
아무래도 오래 살았으니 한국의 여러 상황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국 대통령, 한국 법이 결국 나한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관심 안 가지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나는 단순히 한국어만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도 같이 공부했다. 워낙 오래 살아 한국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 한국 사람의 사고방식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 있는 동안만큼은 한국에 대해 늘 공부하고 싶다.

Q. 다시 호주로 돌아갈 계획은 없나?
샘 해밍턴 :
아직은 없다. 운명이라는 것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까 무조건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또 안돌아갈 것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Q.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당신이 꾸는 꿈은?
샘 해밍턴 :
기회가 닿는 한 다 해보고 싶다. 사실 어려서부터 연기를 배워서(샘 해밍턴의 어머니는 호주 유명 방송사 PD) 연기에도 관심이 많다. 그 외에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아 할 수 있는 한 다 해보고 싶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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