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사심으로 탐닉하기]아만다 사이프리드, 그녀는 웨딩드레스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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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빅 웨딩>에서 역시 웨딩드레스 전문 배우의 진가를 보여준다. 하얀 여름꽃처럼 피어나지만, 이제 맞춤형 ‘로코’ 연기는 슬슬 지겨워진다.

스타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20대에 들어서야 아름다움을 뽐내기 시작한 여배우들은 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나 홀로 집에3>의 스칼렛 요한슨이나 <쥬만지>의 커스틴 던스트를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은 쉽게 잊히는 영화가 아니었다. 오늘날 트러블메이커로 전락한 린제이 로한이 주연을 맡아 붉은 머리를 선보였던 화제작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돋보였던 여배우는 사실 린제이가 아니라 다른 두 명이었다. 한 명은 린제이를 노골적으로 견제하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하는 ‘여왕벌’ 클럽의 리더 레이첼 맥아담스였다. 레이첼은 곧 <노트북>을 통해 멜로드라마의 아이콘이 되었다. 또 한 명은 아무 생각 없이 거울을 보며 미모에만 신경 쓰는 소녀였다. 마치 무개념 된장녀처럼 구는 이 소녀는 사실 대사도 많지 않았지만, 린제이나 레이첼보다 훨씬 아름다운 떡잎을 지니고 있었다. 놀랍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에게 시선이 쏠렸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촉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몇 년 후 <맘마 미아!>(2008)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가 바로 아만다 사이프리드다. 내겐 그녀의 존재가 발견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나 마찬가지였다.

[여배우, 사심으로 탐닉하기]아만다 사이프리드, 그녀는 웨딩드레스로 말한다
<레미제라블> <빅 웨딩> <레터스투줄리엣> 스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레드라이딩후드> <레미제라블> <빅 웨딩> <레터스투줄리엣> 스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맘마 미아!>의 소피로 만인의 첫사랑이 된 아만다는 차세대 로코퀸(로맨틱 코미디 퀸)에 등극했다. 빛나는 금발과 투명하고 맑은 피부, 지중해를 머금은 커다란 녹색 눈은 하얀 웨딩드레스와 만나자 실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열 살 때 디캐프리오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배우를 꿈꾸었던 펜실베니아의 작은 소녀가 겨우 스물두 살에 자신의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맘마 미아!>를 통해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딸이 되었지만, 이 러블리한 이미지가 결과적으로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최신작 <빅 웨딩>의 연기는 매너리즘에 가깝고 어딘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결혼을 앞둔 미시 캐릭터를 맡았지만 뉴요커의 대모 다이안 키튼이나 왕언니 캐서린 헤이글의 연기에 밀려 존재감이 하나도 없다. <레터스 투 줄리엣>(2010)에서 보여준 ‘키스걸’의 이미지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녀는 키스를 부르는 입술 소녀로 딱 정지해 버린다. <레드 라이딩 후드>(2011)에서 늑대의 위협을 받는 빨간 망토 소녀로 나왔지만, 역시 첫사랑 타령에 푹 빠져있다. 발레리를 연기한 아만다는 눈 속에서 반짝이지만, 영화가 끝나고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엄마와 할머니로 나온 버지니아 매드슨과 줄리 크리스티였다. 그녀의 투명한 미모조차 관록의 연기 앞에서는 너무 작게 느껴졌다. SF스릴러 <인 타임>에서 조금 다른 장르에 도전했지만, 그녀의 숏커트나 긴 속눈썹은 <비브르 사 비>의 안나 카리나를 떠올리게 만들 뿐이었다. 특히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호텔에서 옷 벗기 카드놀이를 하며 어설프게 섹슈얼리티를 발산하는 것은 실소를 자아낸다. 긴 하이힐을 신고 뛰는 그녀를 보면 처량하기까지 하다.

사실 그녀가 봉착한 문제점은 <레미제라블>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집착하는 ‘베이비 페이스’의 기준으로 본다면 아만다는 최고의 ‘아메리칸 뷰티’가 맞다. 세 살 위의 앤 해서웨이와 비교하면 그녀는 여전히 막 피어난 소녀처럼 보인다. 하지만 눈물을 쏟게 만드는 폭발적인 연기는 그녀의 몫이 아니라 앤의 차지다. 아만다는 순수와 청순함으로 관객들에게 안구정화의 즐거움을 약속하지만, 정작 드라마는 다른 베테랑 배우들이 떠맡는다. 이것은 여배우로서 홀로서기에 실패했다는 징조이므로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심지어 그녀는 블록버스터급의 큰 사이즈 영화에서 아직 주연을 감당할 그릇이 되질 못한다. 고만고만한 영화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지나치게 반복하면서 소모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결혼에 설레는 웨딩드레스녀나 로코의 키스걸은 이제 훅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작품을 고를 때 냉철한 안목과 선구안이 필요하다. 그나마 포르노 스타 린다 러브레이스의 생애를 그린 <러브레이스>에 출연한 것이 블랙위도우의 매력을 발산한 <클로이>(2009) 이후, 최고의 파격이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호르몬이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캐릭터에 대한 무한한 욕심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러브콜이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아만다의 연기는 이제 출발선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글.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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