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기분 좋은 아쉬움이 많죠. 개인적으로 여러 인물들이 어우러지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다양한 캐릭터를 보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장장 8개월여에 걸쳐 촬영한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긴 여정을 마친 유진(32)의 얼굴에서는 피곤함보다는 발랄함이 읽힌다. 풍파 많은 결혼 생활을 접고 오뚝이처럼 일어난 여주인공 채원의 굴곡진 삶을 내려 놓은 때문인지 시원섭섭하면서도 가벼워진 표정이다.

방송 내내 시청률 1위 자리를 고수한 <백년의 유산>은 인기만큼이나 비판도 많았던 작품이다. 비상식적인 고부 관계와 출생의 비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등이 줄거리 상 주요 요소로 등장하면서 억지스러운 전개라는 평가도 이어졌었다.

그러나 유진에게는 박원숙, 전인화, 정보석 등 쟁쟁한 선배 배우들과 연기 호흡을 맞추면서 연기자로서 한 단계 발돋움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작품이다. “연기에 임하는 자세와 열정의 모습이 각기 다른 선배들을 접하면서 느끼고 얻은 경험이 큰 재산으로 남았다”는 그에게서 대장정을 마무리한 소감을 들어보았다.

Q. 8개월에 걸친 촬영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
유진: 이젠 좀 짧은 걸 해보고 싶다(웃음). 50부작 드라마 출연은 처음이었는데 사실 중반을 넘어가니 힘들기도 하고 지루한 면도 있더라. 돌아보니 긴 호흡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경험인 것 같다.

Q. 극 초반 채원이 모진 시집살이를 당하는 모습에 시어머니 역의 박원숙이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유진:
촬영할 때는 극적인 내용이 오히려 재미있고 열정을 쏟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박원숙 선생님과 계속해서 부딪칠 때 나오는 감정 변화의 폭이 커서 ‘아, 이런 맛에 연기하는구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웃음). 드라마 상에서 채원이가 머리채를 잡힌다고 실제로 그러는 건 아니니까 감정적으로 힘들진 않았다. 끝나면 박원숙 선생님이 항상 미안하다며 안아주시곤 했다.

Q. 이해할 수 없는 시어머니 밑에서 결혼생활을 했던 초반 채원이의 모습에 공감을 많이 했나
유진: 실제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웃음).

유진

Q. 지나치게 참는 여주인공 캐릭터를 보며 답답하기도 했을 것 같다.
유진: 대본을 읽다보면 ‘왜 이럴까’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감독님께 얘기를 하는 편이다. 나 스스로 설득력이 생기면 되는데 그게 안 될 때면 이해하기 위한 스스로의 작업을 한달까. 그렇게 의견 개진을 하면 대본을 고쳐주시기도 하더라.

Q. 드라마가 방송 내내 ‘막장’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유진:
내가 본 시놉시스 상으로는 그런 점이 안 보였다. 오히려 국수공장을 둘러싼 따뜻한 가족 얘기가 더 눈에 들어왔다. 초반 시집살이 내용의 경우 드라마의 발단 부분이라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부각이 되다 보니 논란이 인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그런 말도 안되는 사례가 종종 있더라.

Q. 시청률 면에서는 줄곧 1위를 고수한 작품이다.
유진: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시청률때문에 연기하는 데 영향받는 편은 아니다. 시청률은 별로였지만 더 애정가는 작품이 있기도 하고. ‘될 만한’ 드라마였는데도 편성상의 이유 등으로 기대만큼 안 나온 작품도 있는 걸 보면 운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Q. 이정진과는 첫 연기였는데 연인 역할 호흡은 잘 맞았나
유진:
사실 연인같은 장면을 찍은 게 거의 없다. 사건에 의해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이 대부분이라 데이트라고 할 만한 장면은 같이 밥 먹는 신 하나 정도였으니(웃음). 그래도 무난하게 잘 흘러갔던 것 같다.

Q. 극중에서도 다양한 사랑이 나오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가 있다면
유진:
믿음이 가장 중요한 요소 아닐까. 끝까지 사랑을 지키는 게 관건인 것 같다. 인간의 사랑은 완전하지 않다. 완전한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이고, 아가페적인 사랑과 가장 닮은 건 모성인 것 같다. 남녀의 사랑은 계속해서 서로 믿고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진

Q. 벌써 연기 생활 12년차에 접어들었는데 스스로 돌아봤을 때 연기자로서 진화하고 있는 것 같나
유진:
연기적으로 욕심도 있는데 그게 앞서면 안될 것 같다. 욕심부리거나 자만하면 꼭 안 좋은 결과가 따라오더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나는 내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1년에 많아야 2,3개 작품을 할 수 있는데 내가 앞으로 30대에 몇 작품이나 더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하나 하나가 정말 소중한 기회인 것 같다. 어릴 때는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다.

Q. 여전히 걸그룹 출신의 ‘원조 요정’이라는 이미지도 남아 있다.
유진:
소위 말하는 ‘요정 이미지’를 지키려고 노력해 본 적은 없다. 연기하는 데 그런 이미지를 고수하려 한다는 거 자체가 웃기지 않나(웃음). 오히려 애엄마, 미혼모 등 다양하게 역할을 맡으면서 연기에는 리얼리티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드라마 촬영할 때 메이크업을 하고 자는 장면도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 시간상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찍긴 하지만.

Q. 캐릭터로서 욕심나는 역할이 있나
유진:
개성 강한 역할에 많이 끌린다. 엄청 까칠하거나, 무뚝뚝하거나, 혹은 팜므 파탈이라거나, 무난함을 넘어서 자신만의 느낌이 확실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브리짓 같은 역할도 해 보고 싶다. 영화는 출연했던 대부분의 작품이 흥행이 안 돼서 아쉬운 맘이 늘 있는데 좋은 작품이 주어진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Q. 꼭 같이 일해보고 싶은 연출자가 작가가 있다면
유진: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을 연출하셨던 최윤정 PD님과 한번 꼭 일해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감성과 닮아 있고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출을 하시는 것 같다.

글,편집. 장서윤 기자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GG엔터테인먼트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