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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 느와르 마초 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 컴백 싱글을 발표하며 돌아왔다. 2010년 대중적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EP 〈석연치 않은 결말〉을 달랑 내놓고 발표한 은퇴 선언은 정말로 석연치 않았다. 이들의 존재가 다시 회자된 것은 케이블 엠넷 〈슈퍼스타K4〉에서 유승우가 ‘석봉아’를 불러 포털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면서부터. 지난 4월 ‘뷰티플 민트 라이프 2013’ 무대로 은근 슬쩍 돌아온 이들은 영화 〈고령화 가족〉 엔딩에 OST로 사용된 패티 김의 ‘초우’를 리메이크했고 각종 공연을 통해 정중동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년 만에 발표한 컴백 싱글 ‘캠퍼스포크송대백과사전’에는 ‘신개정판’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2009년 10월 황신혜밴드의 리더 김형태와 함께 상상마당에서 지원한 조인트공연에 온 관객배포용으로 200장 소량 제작한 미니 앨범 〈랑데뷰〉에 수록되었던 노래이기 때문. 비공식적으로 발표했던 미완성 노래는 이번에 밴드의 편곡과 연주로 제 모습을 찾은 셈이다. 석연치 않은 은퇴와 은근 슬쩍 컴백한 사연이 궁금해 밴드의 음악적 구심점인 조까를로스와 홍대 상상마당에서 만났다. 지금보다는 〈슈퍼스타K4〉에서 ‘석봉아’가 화제가 되었을 때가 컴백시기로 더 적절했는데 왜 늦어졌는지 궁금했다. “팀은 해체되었는데 아이돌프로에서도 연락이 왔을 정도로 컴백 타이밍이었는데 밴드를 다시 결성하는데 준비시간이 필요했고 그림 전시회 준비 때문에 물리적으로 컴백이 힘들었습니다.”

그는 컴백 후 공연에서 ‘THE GRACE’이란 표현을 쓰며 ’우아하게 돌아왔다‘고 너스레를 떨어 관객들의 웃음보를 터트렸다.

“농담이죠. 은퇴 후에 ‘석봉아’가 갑자기 떠 신기하고 흐뭇했어요. 다시 나올 생각이 없었지만 컴백한다면 최대한 구리게 나오고 싶었어요. 선배 뮤지션들이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와 활동하는 구린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히트곡으로 추억을 팔아 수입원을 만드는 속물적인 가능한 멋있지 않게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팬 서비스 차원으로 싱글을 낸 것도 활동할 명분을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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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석연치 않은 은퇴를 하고 사라진 이유도 궁금했다. “갑자기 그만 둔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첫 공식 EP ‘악어떼’만 내고 활동을 끝내려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좋아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정규앨범을 내자고 하는데 수록할 곡이 모자랐어요. 기존에 있던 곡을 여기저기서 다 끌어다 겨우 앨범을 만들었는데 예명도 그렇고 공연을 너무 자극적으로 하다 보니 콘셉트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책임 질 생각 없이 음악을 시작한 건데 멤버들에 대해서도 책임져야할 시점이 되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 틀을 깨기 위해선 더 이상은 무리라 생각해 은퇴를 결심했었습니다.”

그는 화가와 뮤지션으로 병행해 활동하며 두 가지 이름을 쓴다. 화가로는 본명인 ‘조문기’를 뮤지션으로는 ‘조까를로스’라는 예명을 사용한다. 그의 그림과 음악 작품은 같은 질감이지만 표현이 자유롭고 진보적인 대중음악계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화단 활동을 병행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인 셈이다. “저는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인지라 늘 자기방어 자세를 취합니다. 사실 실컷 객기를 부리며 노래하고 나면 내가 뭘 했는가 싶어 너무 창피합니다. 예전에 지인의 부탁으로 결혼식 축가를 신나게 불렀는데 식이 끝나고 식사할 때 사람들이 저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아 너무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숨기기 위해 뮤지션으로 활동할 때는 본명이 아닌 예명을 사용하고 선글라스를 착용해 얼굴을 가리는 거죠. 뮤지션 활동은 캐릭터를 잡아 연기하는 배우 같은 측면이 강합니다.”

조까를로스의 독특한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한국의 타란티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온갖 잡종 하위문화를 끌어다가 특유의 키치적 유머로 풀어내는 그의 음악은 B급의 전형이었기 때문. 노랫말 속에 묘사된 냉혹한 사회 현실에 좌절한 힘없는 자들의 생생한 모습은 소름을 돋게 했다. 그의 음악은 웃기고 자극적인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과연 이런 노래들이 방송에서 수용될 수 있을까 우려스러웠다. “석봉아는 사실 불쏘클이 아닌 펑크밴드나 빅밴드를 활동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입니다. 그래서 정규 앨범에서 빼고 싶었지만 방송에 나갈 타이틀곡이 없다고 생각해 넣었습니다. 또 방송에서 어느 정도까지 나갈 수 있는지 수위를 시험해보고 싶었죠. ‘석봉아’ 자체는 음담패설이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전래 설화나 사극을 소재로 한 것도 표현수위가 좀 잔인하고 야해도 사회적 관용도가 넓다는 점을 이용한 거죠. 정말로 ‘젓 동냥’, ‘수청’ 이런 표현이 다 무사통과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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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속 화자들이 토해내는 거친 푸념들이 코믹한 마초 비주얼과 ‘야매 라틴 멜로디’를 통해 사회적 부조리를 통찰하는 예술적 경지로 견인시킨 조까를로스의 음악적 재능은 천재적이다. “만약 제가 진지하고 심각한 모습으로 활동했다면 사람들은 제 노래들이 불편했을 겁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가벼워 보이는 캐릭터의 사람들이 노래하면 ‘저것도 웃기려는 거구나’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겉포장은 웃기고 야사시하지만 그의 노래들은 사회풍자 메시지가 강력한 신파 드라마다. 시가를 질끈 문 마초 비주얼을 강조했던 그는 담배를 전혀 피지 않는다. 좋아하지도 않는 군대 문화에서 파생된 마초나 신파를 콘셉트로 삼은 이유는 부조리에 대한 일종의 저항적 장치다. ‘까라면 까야하는’ 갑을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대우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자체를 그는 마초적이고 한국적이라 생각했던 것. “이런 게 구리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모르고 단순히 즐기는 것도 좋지만 웃겨주는 게 실은 비아냥거림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조까를로스는 공개된 개인정보가 빈약한 뮤지션이다. 뮤지션으로는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기보단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려는 의도로 정보공개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저는 정체가 좀 애매한 것이 좋습니다. 저에 대해 사람들이 나이가 많을 거라고 섣불리 상상하는 게 즐거워요. 활동 초기엔 혼란을 주기위해 45살이라 뻥을 친 적도 있습니다(웃음). 즉흥적인 퍼포먼스로 불특정 다수에게 배설하는 게 재미있고 순간의 피드백을 위해 더욱 자극적 콘셉트로 갔습니다.” 이제 제한적이나마 그의 숨겨진 정체를 밝혀내보자.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난 그는 변성기 전인 초등학생 때 조용필과 주현미 노래를 좋아했던 아버지가 늘 모창을 시켰다. 어린 시절부터 나가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 보다 혼자 공책에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 그는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당시 일본 최신 만화자료를 정리한 ‘로봇대백과사전’에 소개된 만화들의 시놉시스를 보고 전체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 제 상상과 내용이 달랐지만 그 덕에 무한 상상력을 키웠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까지 그때의 공상들을 작품에 써 먹고 있는 거죠. 저는 느닷없이 지구가 멸망해 버리는 말도 안 되는 공상과학의 억지스런 설정이 너무 귀엽습니다. 초등학교 때 야하게 변신하는 요술공주 밍키를 보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고 바벨3세 같은 폭력이 난무하는 일본만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학원물을 보았는데 여자들이 벌거벗고 나와서 완전히 상상력의 봉인이 해체되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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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만화만 그렸던 얌전한 아이는 4차원적으로 변해갔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얼굴을 보며 진지하게 수업을 들었지만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수업내용을 이해 못하고 듣기만 하면서 실은 다른 공상에 빠져 있었던 산만한 아이였기 때문. 2살 터울의 친형 방은 그가 진보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환상적 공간이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형이 즐겨듣던 비틀즈, 스키드 로우, 건즈엔로즈 같은 록 음악을 처음 듣고 록밴드에 대한 로망을 품었다. 안양예고에 들어간 그는 장기자랑대회에서 어릴 적에 갈고 닦았던 모창 실력으로 현인의 ‘신라의 달밤’을 불러 친구들을 웃겼다. 중앙대 서양학과에 진학해서는 통기타 동아리 ‘팜스’에 들어갔다. 목적이 따로 있었던 선배들은 남학생들에겐 기타 코드 몇 개만 말해주고 방치하고 여학생들만 챙겼다. 기타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포크송대백과사전 노래책만 뒤적거렸던 그는 군대에서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다.

그 역시 복학 후 선배들처럼 신입생 후배 여학생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기타를 치며 팝송을 멋들어지게 부르고 싶었지만 힘들었다. “저는 가사를 잘 외우지 못해요. 그래서 2000년대 초반에 곡을 직접 써보자는 마음에 첫 창작곡 ‘시실리아’를 만들었습니다. 기타를 친다는 걸 과시하고 싶어 학과 인터넷 사이트에 노래를 올렸는데 ‘너무 웃긴다.’는 격한 반응에 먹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수습할 생각으로 즉흥적으로 밴드 이름을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으로 지었습니다.” 그는 활동초기에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큐 영화 ‘브에나비스타쇼설클럽을 염두에 두고 지은 밴드 이름이냐’는 질문을 부정했었다. “저희가 먼저 지었다고 억지를 부렸죠. 쏘세지는 쇼셜에서 딴 것이 맞습니다. 워낙 밴드 이름이 독특해 자꾸 질문을 받은지라 우주를 구성하는 3원소, 연금술의 주재료인 불나방과 스타, 쏘세지의 조합, DNA의 근원을 이루는 기본 요소라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했습니다(웃음).”(part2에서 계속)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프로필
1기 안토니오 조까를로스(보컬, 기타), 몬테소리 G. 카르먼(퍼커션), 칸초칸초 웅(베이스)
2기 조까를로스, 몬테소리, 김간지(멜로디언), 후르츠 김(멜로디언)
3기 조까를로스, 몬테소리, 김간지, 후르츠 김, 유미(드럼), 까르푸황(베이스)
4기 조까를로스, 유미, 김간지, 까르푸황

2005년 3인조 밴드 결성
2008년 조까를로스 솔로 프로젝트 ‘학자금 대출’
2010년 1집 ‘고질적 신파’ 제 7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 록 음반 부문 노미네이션
2013년 ‘불행히도 삶은 계속되었다’ 대중음악SOUND 선정 한국 인디 100대 명곡, 영화 ‘고령화가족’ OST ‘초우’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붕가붕가레코드, 민트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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