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이었던 걸까. 오랜 시간 몸 담았던 아나운서직을 떠나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 그녀는 인생 제2의 전환점을 맞았다. 방송인으로 홀로서기 위한 힘겨운 여정 속에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외치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즐거움을 쫓는 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열정이 동시에 읽힌다.

케이블채널 Y-STAR<식신로드>로 아나운서 시절에도 듣지 못했던 ‘여신’의 칭호를 얻으며 ‘먹방스타 차트’에 이름을 올렸고, 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에선 막강한 입담꾼들 사이에서 위축됨 없이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욕망 아줌마’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아나운서다운 반듯한 이미지로도 감출 수 없었던 그녀의 재치와 끼는 어느덧 임계점을 지나 박지윤스러운 무언가가 되어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스미고 있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조금은 진부해진 경구를 우직하게 믿고 따르는 그녀. 박지윤표 즐거움과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 한땀 한땀 짜내려간 방송인 박지윤의 삶은 이제 막 반환점을 돈 듯했다.

Q. 프리랜서로 전향한 지도 어느덧 5년차다. 최근 Y-STAR <식신로드>와 JTBC <썰전>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지윤: 프로그램을 고를 때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이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본다. 특히 <식신로드> 같은 경우에는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과 잘 맞는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맡게 되든지 편안하게 즐기자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잘 맞아 떨어진 듯하다.

Q. <썰전>을 본 시청자들 분들의 반응 중에는 ‘박지윤은 기가 세다’는 의견이 많다.
박지윤: 어떤 프로그램에서든지 나의 이미지를 일부러 꾸며낸 적은 없다. 단지 사람이 어떤 환경에 있는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 같다. <식신로드>는 그야말로 친구들 끼리 편하게 즐기는 자리라 무장해제 된 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고, <썰전>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상대적으로 ‘기가 세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Q. 원래 예능감이 충만한 편인가(웃음).
박지윤: 아나운서를 할 때는 재미있고 웃음을 줄 수 있는 것들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번도 그렇게 편안하게 풀어져 있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프리랜서를 하면서 그런 나의 성향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 같다. 그리고 다 재밌게 살자고 하는 건데 즐겁게 웃으면서 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웃음).

Q. <썰전>에서 말만 잘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탁월한 진행능력이 돋보이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박지윤: 원래 직업이 아나운서였는데, 진행을 못한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웃음). 다른 분들이야 배우로서의 매력을 드러내거나 게스트로서 통통 튀는 역할만 해내면 되겠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내가 <썰전>에서 홍일점이긴 하지만, 여자라는 입장을 떠나서 전문 진행을 업으로 삼아왔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질문도 하고 매끄러운 진행을 해내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Q. 전문 프로그램부터 예능까지 소화해 낼 수 있는 범위가 넓다. 박지윤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박지윤: 나는 어디에 가도 주눅 들지 않는다(웃음). 방송을 한 지도 햇수로 10년이 됐고, 경험도 풍부하기에 어느 프로그램에 투입되더라도 적응을 잘 하는 편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매번 크게 변신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힘들다. 그러나 어떤 프로그램을 하든지 솔직하게 그 안에 잘 녹아드는 모습을 보이고, 나만의 톤을 분명하게 가져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차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인간 박지윤이 잘 드러나도록, 박지윤스럽게 하는 것이 나만의 차별점이다.



Q.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크게 느끼는 차이점이 있는가.
박지윤: 고용형식의 차이밖에 없다. 나는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 특별히 아주 다른 직업인으로 변신했다는 생각은 안한다. 물론 프로그램 선택권이 있다는 점과 주관적인 의견을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그러나 방송 안에서 하는 역할은 다 똑같다. 최근 주변에서는 프리랜서라고 해서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지만, 나는 원래 하던 것을 하는 것이기에 크게 변화를 못 느낀다. 물론 KBS라는 큰 둥지에서 벗어난 것은 큰 도전이었다. 고용에 대한 불안이 있으니까(웃음). 하지만 나의 선택이기에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아나운서 생활을 했던 KBS에 대한 마음이 남다를 듯하다.
박지윤: 사실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방송일 이다. 근데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한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누가 방송을 시켜주겠나(웃음). 대학생이었던 내가 방송인을 꿈꿀 때 가장 빨리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공채시험을 통해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었다. 수많은 방송사 시험을 본 끝에 KBS에 합격을 했고 오늘까지 오게 됐다. 어떻게 보면 나를 키워준, 인큐베이팅 해준 고마운 곳이다. 그리고 거기서 또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서 결혼도 했으니까(웃음).

Q. 방송인으로서의 ‘박지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일까.
박지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정성이다. 예를 들어 <식신로드>에서는 진정성 있게 먹는다. 카메라 꺼져있든 켜져 있든 간에 계속 먹는다. 정말 맛있는 걸 먹는게 좋기 때문이다(웃음). <식신로드>에서도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려 노력한다. 내가 일부러 어떤 캐릭터를 만든다고 해서 대중이 그렇게 나를 봐줄 것 같지도 않다. 우리는 연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티가 나기 마련이다(웃음). 그래서 나는 어떤 캐릭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냥 프로그램에 맞고 주제에 벗어나지 선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진행을 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누군가의 캐릭터는 대중이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깊었던 프로그램이 있다면.
박지윤: 역시 <식신로드>다. 왜냐면 그 전에도 프리랜서로 프로그램을 많이 맡긴 했지만, 인간 박지윤의 모습이 두드러졌던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러나 <식신로드>는 나의 편안한 모습을 봤다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나는 여자 방송인 이지만, 사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어릴 적부터 살집도 있었고, 지금도 상대적으로 큰 덩치가 콤플렉스고, 넓은 어깨를 개성 아닌 개성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웃음). 어떻게 보면 단점일 수도 있는 것들이 <식신로드>에서만큼은 장점으로 비쳐지는 것 같아서 좋다.



Q. 정말 긍정적인 성격인 것 같다(웃음). 방송을 하며 힘든 시기들도 있었을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
박지윤: 사실 확실히 모든 결과물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할 때 나온다고 생각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건 항상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해왔다는 점이다. 지금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매달리면 안 된다. 내 힘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을 열심히 채워 나가면 길이 조금씩 열려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밑바탕은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긍정정인 마인드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Q. 방송인 박지윤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
박지윤: 재밌고 유쾌한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싶다. 내가 결혼을 해서 엄마, 그리고 주부로서 4년차가 되니까 느껴지는 것들이 젊었을 때와는 다르다. 여자들의 삶은 남자들의 삶보다 느낄 수 있는 감정들 더 풍부하달까(웃음). 임신·출산·육아라는 남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느꼈던 감정이나 희로애락을 더 많은 여성들과 나누고 싶다. 나는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무리하게 목표를 설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 때 그 때 즐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꼭 인터넷에 칭찬댓글 같은 것은 안 달려도 좋으니까, 긍정적인 시선으로만 봐주셨으면 좋겠다(웃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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