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즈(Doors)의 노래 ‘Yes, The River Knows’가 흐르자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선명하게 말했다. “이 노래는 피아노가 나오네. 레이 만자렉의 오르간이 없으면 도어즈가 아니야. 그래도 곡은 아름답군.”
맞는 말이다. 레이 만자렉이 없으면 도어즈는 결코 성립이 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짐 모리슨이 도드라져 보이지만, 그 환각적이고 신비로운 음악의 중심에는 레이 만자렉의 오르간이 자리하고 있다. 조용히 ‘Waiting For The Sun’을 틀었다. “그래, 바로 이게 도어즈 음악이지! 마치 오르간 소리가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것 같지 않아?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 생각이 나.”
도어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억이 있다. 중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에게 두 개의 테이프로 이루어진 라이브 앨범 〈In Concert〉를 선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방과 후 레코드점에 가서 그 앨범을 만지작거린 것을 친구가 본 모양이다. 클럽에서 밴드 생활을 할 때는 도어즈의 ‘Roadhouse Blues’가 단골 레퍼토리였다. 친구는 우리가 그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기도 했다. 도어즈에 대한 추억을 늘어놓자 그녀는 지루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Alabama Song (Whisky Bar)’이 듣고 싶다고 했다.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이 만자렉의 연주에 대해 “제사상에서 영혼을 부르는 듯한 기분”이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만자렉도 이제 저승으로 떠났다. 20일(현지시간) 독일 로젠하임의 한 병원에서 암 투병 끝에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 짐 모리슨이 1971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죽은 지 40여년만이다. 짐 모리슨 과 레이 만자렉은 1965년 캘리포니아 UCLA 대학 재학 시절 만났다. 당시 만자렉은 릭 앤 레이븐스라는 블루스 밴드를 하고 있었다. 이후 드러머 존 덴스모어, 기타리스트 로비 크리거를 만나면서 도어즈가 탄생했다. 그렇게 역사는 시작됐다.
“난 말이야. 패티 스미스가 ‘Gloria’를 부르는 것을 실제로 봤을 때 도어즈가 떠올랐어. 도어즈 버전이 더 좋다고 생각해.” ‘Gloria’는 밴 모리슨의 밴드 뎀(Them)의 곡이다. 도어즈는 로스앤젤레스의 클럽 ‘위스키 어 고 고’의 하우스밴드 시절에 뎀과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
“짐 모리슨과 레이 만자렉이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녀의 물음에 대한 질문은 간단하다. 우리는 도어즈라는 축복을 누릴 수 없었겠지. 문득 궁금해진다. 만자렉은 천국에서든, 아니면 다른 곳에서든 짐 모리슨과 재회했을까? 레이 만자렉, 부디 고이 잠들기를. 그의 영혼에 축복을.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도어즈 공식 페이스북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