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하그로브퀸텟, 테잎파이브, 킹스오브컨비니언스, 데미안라이스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석가탄신일 연휴 페스티벌 대첩’에서 맞붙은 여러 페스티벌 중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연휴에 여러 개의 페스티벌과 내한공연이 겹쳐져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이 중 절반 이상은 집객이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한 ‘서울 재즈 페스티벌’은 재즈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음에도 예매 때부터 티켓 파워를 자랑했고 최종적으로 이틀간 약 3만5,000명(연인원)의 관객을 동원했다. 대다수의 관객들이 앞 다퉈 티켓을 구입한 이유는 재즈뮤지션을 보기 위함이라기보다 데미안 라이스, 미카 등 팝스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상당수의 관객들이 재즈 연주에 귀를 기울이며 즐거워했다.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재즈 & 팝 페스티벌의 성공적인 개최라 할 수 있었다.다양한 음악 속 재즈의 맛
17일 자라섬에 다녀온 여독이 풀리기도 전인 18일에 오후 1시경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 올림픽공원에 도착했다. 88잔디마당에 차려진 메인스테이지에 정성조 빅밴드가 연주하는 ‘아리랑’이 울려 퍼지자 재즈 페스티벌에 온 사실이 실감이 났다. 한국 재즈계 대선배인 정성조의 친근한 곡 해설은 공연 감상에 윤기를 더해줬다. 그가 미국 유학 후 귀국을 앞두고 만들었다는 ‘서울 익스프레스’의 절도 있는 브라스 사운드가 에너지를 전해주는 듯했다. 순간 피로가 풀렸다.
건너편 수변무대에서는 정성조의 까마득한 후배인 조윤성이 이끄는 미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이어졌다. 정성조 빅밴드의 브라스의 호방함을 선보였다면 조윤성의 오케스트라는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퓨전의 맛이 강했다. 스산한 멜로디와 물비린내는 수변무대를 가득 채운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조윤성의 무대에는 가수 최성수가 깜짝 게스트로 출연해 오랜만에 팬들과 관객과 만났다.
킹스오브컨비니언스, 조윤성미니심포니오케스트라, 로이하그로브퀸텟, 정성조&써니킴 (왼쪽부터 시계방향)
재즈와 일반 관객을 친숙하게 해주는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유럽 각국의 연주자들이 모인 테이프 파이브는 모던한 스윙음악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3개의 관악기에 신디사이저 샘플링, 그리고 흥겨운 보컬과 춤이 함께 한 이들의 음악은 메인 스테이지를 가득 메운 관객들을 춤추게 했다. 그야말로 일렉트로 스윙의 향연이었다. 최백호와 박주원,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와 싱어송라이터의 최고은이 연출한 각각의 협연도 강렬한 에너지와 함께 각각의 장르가 만나는 묘미를 선사했다.로이 하그로브 퀸텟, 히로미 더 트리오 프로젝트 등 세계 정상급 재즈 아티스트들 출중한 앙상블은 단연 빛났다. 놀라운 것은 관객의 뜨거운 반응이었다. 로이 하그로브 퀸텟은 BPM 200 이상의 빠른 하드밥부터 우아한 쿨 연주에 이르기까지 모던재즈의 진수를 선보였다. 관객들의 정박이 아닌 엇박에 박수를 치고, 연주자들의 임프로비제이션(즉흥솔로연주)가 끝날 때마다 열광적인 박수를 치는 등 재즈관객다운 면모를 보였다. 로이 하그로브가 화려한 트럼펫 솔로를 선보이자 한 여성 팬은 “너무 섹시하다”며 애정을 나타냈다. 하그로브는 공연 막판에 마치 쳇 베이커가 노래하듯이 ‘Never Let Me Go’를 불러줬다. 여성들은 자지러졌다.
히로미 진격의 피아노
히로미
이날 최고의 에너지를 선보인 것은 바로 일본의 재즈 피아니스트 히로미였다. 거장들인 베이시스트 앤소니 잭슨, 드러머 스티브 스미스와 트리오를 이룬 히로미는 선배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명연을 펼쳤다. 아담한 몸매의 히로미는 일어서서 줄을 끊을 정도의 타건으로 건반을 내려치는가 하면 지극히 섬세한 연주를 뽑아내는 등 한 사람의 것이라 믿기 힘든 연주를 펼쳤다. 그녀는 지미 헨드릭스처럼 관객을 흥분시킬 줄 알았고, 때로는 눈물샘을 자극했다. 엄청난 연주를 펼치고 새초롬한 소녀의 말투로 “안녕하세요. 한국에 다시 오게 돼 기뻐요”라고 말하는 모습은 관객을 넉다운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조곡 형식으로 된 ‘Suite Escapism’ 3부작을 연주하기 전에는 세 개 파트 ‘Reality’ ‘Fantasy’ ‘In Between’을 한국말로 ‘진짜’ ‘환상’ ‘사이’라고 설명하며 관객들과의 소통에 애썼다. 노다메, 복길이를 닮은 서른 중반의 중반 피아니스트는 클래식부터 블루스 피아노까지 다양한 요소를 버무리며 체조경기장을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었다.데미안 라이스, 주정뱅이여도 날 가져요
데미안 라이스
물론 최고의 인기를 누린 것은 데미안 라이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무대였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섬세한 기타연주와 하모니로 비 오는 88잔디마당을 따스하게 감싸는 한편 온갖 재롱잔치로 여성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한편 국내 밴드 원펀치와 협연을 통해서는 꽉찬 밴드사운드를 들려줬다. 마지막으로 무대를 장식한 데미안 라이스는 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 2만 여 관객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때로는 절규하고 때로는 읊조리는 그의 노래가 가지는 호소력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음향상의 문제로 마이크가 꺼지자 아랑곳하지 노래를 외쳐댔고, 막판에는 와인 석 잔을 연거푸 ‘원샷’하더니 담배를 피우며 노래했다. 연극적인 요소도 보였지만, 그 모습들이 하나같이 진실 돼 보였다. 곡마다 분위기가 달랐다. ‘Cold Water’에서는 흐느꼈고, ‘Hallelujah’에서는 강건했다. 마지막 곡 ‘Blower’s Daughter’를 노래했을 때는 2만 관객이 숨죽였다. 오직 빗소리와 데미안 라이스의 목소리만 들렸다.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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