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가을에 처음 개최돼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서울 레코드페어’(이하 레코드페어)에 단 한해도 빠지지 않고 갔다. 취재와 유희를 겸해 간 것이다. ‘제1회 레코드페어’ 때에는 사전 인터뷰 등 조사를 철저히 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레코드(LP, CD)가 주인공인 축제인지라 이래저래 관심도가 높았기 때문. 첫 회 성과가 좋아 “일 년에 한 번 여는 행사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더 자주 페어를 열자”는 의견이 나왔다. 때문에 작년에는 봄에 ‘제2회 레코드페어’를 열고 가을에 번외 행사를 한 번 더 했다. ‘제3회 레코드페어’는 지난 25일 논현동 쿤스트할레에서 열렸다. 이제는 페어에 대해 사전조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동네 레코드점에 가듯 편안한 발길이었으니까.

24일 압구정 클럽 크크(Keu Keu)에서는 레코드페어 전야제가 열렸다. 30년 만에 신곡을 발표한 전설의 밴드 무당을 비롯해 작년 초 해체돼 세간의 아쉬움을 샀던 록밴드 서울전자음악단이 오직 레코드페어를 위한 재결성 공연에 나선다니 실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처음 보는 무당의 공연. 환갑을 훌쩍 넘긴 무당의 리더 최우섭(65)의 목소리는 젊은이처럼 쩌렁쩌렁했고, 기타 연주는 광폭했다. 이 얼마나 흐뭇한 풍경인가? 서울전자음악단이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서로 다른’을 연주할 때는 눈물이 날만큼 반가웠다. ‘레코드페어’에서는 무당의 새 앨범과 함께 서울전자음악단, 이상은, 미선이, 조원선, 이이언의 한정판 LP를 판매할 예정이었다.



25일 오후 쿤스트할레에 도착하니 상당한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취재는 제쳐두고 순수하게 ‘레코드페어’를 즐기고 싶었다. 시대와 장르를 횡단하는 수많은 음반들이 눈에 들어오자 배가 불렀다. 일본의 여성 로커 시이나 링고의 노래 ‘본능’의 CD 재킷을 보자 기자의 눈은 거의 뒤집히다시피 했다. 순식간에 시이나 링고와 동경사변의 음반 다섯 장을 집어 들자 4만5,000원. 수입CD 치고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절판된 스위트피, 슬로우 쥰, 오메가3의 앨범을 구입하자 어느새 10여만 원이 지갑에서 나갔다. 이어 뭔가에 홀린 듯 이미 가지고 있는 마빈 게이의 음반 〈What’s Goin’ On〉을 특별 판이라는 이유로 한 장 더 샀다. BIC뮤직 부스에서는 이제 수량이 몇 장 남지 않았다는 재즈밴드 흠(Heum)의 1집 〈Heum〉을 운 좋게 구입할 수 있었다.

매년 오다보니 상인들의 얼굴도 익숙해졌다. 한국의 전설적인 좌판 ‘종로 좌판’의 주인장은 “올해도 왔냐”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소녀시대의 공연 DVD와 브로마이드가 철제 필름 통에 담긴 일본판 에디션을 싸게 줄 테니 가져가라고 하는데, 가격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아름이, 김일두, 이영훈 등 기타를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공연도 이어졌다. 음악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음반를 고르는 손길은 바빠졌다. 여성들은 마치 봄옷 쇼핑하듯이 굉장히 열중해서 음반을 골랐다. 그것도 그냥 옷이 아닌 중요한 자리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는 것 같았다. 조원선의 LP 〈Swallow〉를 구입한 임슬기(25세, 여)씨는 “LP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아서 신비로움마저 느껴졌다”고 말했다.



‘레코드페어’의 가장 큰 장점은 만물장터처럼 다양한 음반을 한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별의별 앨범이 다 나와 뭐 하나를 꼽기 어렵다. 작년의 경우 핑크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초판이 무려 99만원에 달했고, 김정미의 LP는 50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올해 행사에서는 가요 LP의 인기가 좋았다. ‘레코드페어’를 기획한 김영혁 김밥레코즈 대표는 “작년, 재작년에는 비틀즈, 레드 제플린 등의 고가 LP를 찾는 이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유독 조용필 등 가요 LP의 인기가 많다. 국내 판을 많이 가져온 부스에 유난히 사람이 붐볐다”고 말했다. 행사장 1층을 돌아다니다 산타나의 정규 1집 〈Santana〉 LP가 눈에 들어왔다. 사자 얼굴 안에 8개의 사람 얼굴이 숨어있는 신비로운 커버아트를 LP의 시원한 크기로 보자 순간 침이 흘렀다. 하지만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날 현장에서는 턴테이블도 저렴하게 판매해 이를 구입하는 이들도 많았다. 조만간 괜찮은 턴테이블을 마련해 내년 ‘레코드페어’에서는 LP를 ‘싹쓸이’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리듬온 부스에서 가요 음반을 뒤지는데 정원영의 2집 〈Mr. Moonlight〉 CD가 눈에 들어왔다. 슬슬 음반을 담은 가방은 무거워졌고, 작년 ‘레코드페어’에서 구입했던 음반들 포장을 다 뜯지도 못한 터였다. 구입을 망설이다가 다음 일정 때문에 급하게 자리를 떴다. 그런데 아뿔싸! 다음 약속 장소에 가니 정원영 교수가 앉아 계신 것이 아닌가? 순간 그의 음반을 구입하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가 됐다. ‘레코드페어’에 다녀왔다고 말하자 음악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 LP와 음반에 대한 이야기꽃이 폈다. 정원영 교수는 자신의 초기 앨범들을 LP로 재발매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부디 그렇게 되길. 그때는 꼭 턴테이블을 마련해 CD가 아닌 LP로 그의 2집을 살 테다.



이날 행사에는 약 2,500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이로써 ‘레코드페어’는 통산 관객 만 명을 돌파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도 있었다. ‘레코드페어’를 위해 한정판으로 제작한 몇몇 아티스트의 LP가 출고 과정에서 결함이 생긴 것. ‘레코드페어’ 측은 문제가 있는 LP에 대해 전량 리콜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내년 행사에서 판매할 한정반에 대해서는 최소 6개월 전부터 꼼꼼하게 제작을 진행해 오류가 생기더라도 미리 수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레코드페어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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