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너마저 류지(왼쪽부터), 잔디, 향기, 덕원

브로콜리 너마저.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 밴드를 처음 알게 된 건 스물 무렵. 대학을 다닐 적엔 그 순도 높은 풋풋함에, 나이를 먹고선 그들의 음악에 담긴 ‘보편적인 감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했던 그룹. 서울대 출신 밴드, 인디신의 대표 밴드, 모범생 밴드 등 그들에게 붙은 타이틀도 갖가지다. 하지만 막상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좀처럼 감을 잡기가 어렵다. 힐링, 위로 등 듣기 좋은 수식에도 “위로가 된다니 다행이네요”라며 쿨하게 답하고, “그게 우리의 본질과는 크게 상관없어요”라는 이야기를 태연히 꺼내놓는다.

2년 8개월. 2010년 11월 2집 정규앨범발매 이후 <골든-힛트 모음집>과 싱글, EP 앨범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규앨범에 대한 팬들의 갈증은 더 심해져갔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TV 속에서 그들을 발견하게 됐다. Mnet <밴드의 시대> 5회 ‘청춘지침서’편에 출연한 그들은 생전하지 않던 커버곡을 소화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여느 때처럼 공연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2011년부터 이어온 ‘이른 열대야’ 여름 장기공연을 통해 여전히 대중과 접점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덕원은 앨범 작업 진행 정도를 묻는 질문에 “모르겠습니다. 기간도 미정이에요”라고 대답하고 만다. 이래저래 바쁘지만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그들. 베이스 겸 보컬 덕원, 키보드 잔디, 기타 향기, 드럼 겸 보컬 류지, 브로콜리 너마저의 4인방을 텐아시아가 만나봤다.

Q. 오랜만에 Mnet <밴드의 시대>를 통해 방송으로 팬들을 만났다.
류지: 무대를 준비하고 녹화를 진행할 땐 방송이 익숙지 않은 터라 어색했다. 막상 무대에 올라서는 긴장을 많이 해서 공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웃음).

Q. 커버곡은 거의 해본 적이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선곡한 이유가 따로 있나.
덕원: 우리가 출연한 5회의 타이틀이 ‘청춘지침서’였다. 물론 제작진이 임의로 잡은 콘셉트이긴 하지만 곡의 느낌이 타이틀과 잘 맞을 거 같았다. 어떤 것을 해도 잘할 수 있는 팀도 있겠지만, 우리 팀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원래 해왔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드리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괜찮은 무대가 나왔다.

Q. <밴드의 시대>는 일반적인 음악 프로그램과 다르게 서바이벌 형식이다. 음악으로 경쟁한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듯한데 출연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잔디: 막상 방송 때는 서바이벌이 강조됐지만, 처음에 제작진이 출연 제의할 때는 서바이벌을 강조하지 않았다. “승자는 있고 탈락자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웃음).
덕원: 브로콜리 너마저가 출연한 것이 의외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어차피 색깔이 너무나 다른 팀들이 모였기에 경쟁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마침 상황이 맞아 떨어져서 출연하게 됐다.

Q. 이번 방송의 반응이 뜨거웠다. 방송활동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은 없는가.
덕원: 없다. 일단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 공연 위주로 활동해왔기에 방송 중심으로 무언가를 하기 에는 밴드이기에 제약이 있다고 느낀다.
향기: 방송 생각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방송이 우리에게 꼭 맞는 포맷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밴드가 나갈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한정돼있지 않나.

Q. 방송관계자들이 들으면 무척 아쉬워하겠다. 어떤 요소들이 갖춰지면 브로콜리 너마저가 방송 출연을 불사할까(웃음).
향기: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출연했던 프로그램들 중엔 2009년 출연했던 MBC <라라라>가 제일 편했다. 관객도 없는 스튜디오 녹화였지만 뭔가 합주하는 듯한 자연스런 분위기가 좋았다. 이런 무대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그 보다도 밴드 음악이 주류가 아닌 방송계 탓이 크다.



Q. 평소 브로콜리 너마저는 “특별히 고집하는 음악적 성향이나 장르가 없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밴드의 시대>에서 본인들이 밴드를 소개할 땐 “포크밴드”라고 하더라. 꽤 놀랐다.
향기: 사실 그건 ‘포크밴드’가 아니라 ‘폭풍밴드’라고 했던 거다(웃음). 우리도 나중에 방송을 보고 알았다. 약간의 조크를 담아서 얘기했었던 건데 제작진은 그런 생각을 안했던 거 같다. 자막의 오류다(웃음).

Q. 지난달 21일부터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 동일한 타이틀로 3년 동안 꾸준히 콘서트를 하는 일도 흔치 않은 일이다.
잔디: 장기공연을 쭉 하는 팀이 거의 없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공연을 한다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Q. 콘서트 타이틀은 ‘이른 열대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잔디: 거기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공연을 하는 시기가 이른 여름이었기에 ‘우리가 먼저 무대를 달궈보자’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2010년에 2집 음반이 나온 게 가을, 겨울쯤이었는데 덕원이 곡을 쓸 때 여름밤에 듣기 좋은 노래를 생각하며 썼다고 했다. 한창 앨범 마무리 작업을 하며 데모를 돌려듣던 시기도 여름이라 그때의 계절감을 전달해보자는 생각도 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들도 있었다(웃음). 겨울과 연말에는 단독공연이 많아 대관이 어렵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여름엔 대관이 용이한 여름철에 브로콜리 너마저의 여름 콘서트를 시작하게 된 거다(웃음).

Q. 장기공연을 해왔으니 재미있는 일화도 많을 것 같다.
향기: 바로 지난 일요일(6월 30일)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공연을 들어가는데 맨 앞줄에 한 일곱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는 거다. 재밌는 건 2시간여의 공연이 끝나자 아이가 울면서 대기실로 올라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못 들었다는 거다(웃음).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는 아이를 달래려고 즉석에서 무반주로 박수치며 라이브를 해줬다. 그제야 환하게 웃던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웃음). 또 우리 공연엔 골수팬들이 많이 오시다보니 매 공연마다 낯익은 분들이 많이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첫날과 마지막 날은 거의 인원 구성이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야 공연하는 입장에서 익숙하니 편해서 좋다(웃음).

Q. 세 번째 정기 콘서트에 임하면서 감회도 남다를 것 같다.
류지: 정말 그렇다. 21일 첫 공연 할 때는 울컥하기까지 하더라. 페스티발 무대에 오를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뭔가 따뜻한 시선이랄까. 어떤 얘기를 해도 웃어주시고 리액션이 크니까 마음이 편해진다. 우리 콘서트 장에선 팬들에게 보호받는 느낌이다(웃음).

Q. 2집 정규앨범이 나온 지 어느덧 2년 8개월이 지났다. 새 앨범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는가.
덕원: 모르겠다. 음악성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거 같긴 한데 확답하긴 어렵다. 기간도 미정이다.
향기: 정말 우리도 알고 싶다(웃음).
류지: 미리 알려드리면 재미없지 않겠나. 근데 솔직히 말해서 올해 안에 발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웃음).

브로콜리 너마저 잔디(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류지, 덕원, 향기

Q. 계속해서 페스티발과 콘서트로 관객들을 만나왔지만, 팬들 입장에선 브로콜리 너마저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
잔디: 공연하고, 합주하고…개인적으로는 수영을 많이 한 것 같다(웃음). 대회도 나갔다. 장거리, 단거리 할 것 없이 참가했다. 생각보다 대회가 많더라(웃음).
류지: 나도 운동을 열심히 했다. 체력이 달린다고 느껴서 헬스를 했다.
향기: 작년 연말 공연 끝나고 셋(잔디, 향기, 류지)이서 일본에 잠깐 다녀오기도 했다. 그 외에는 스페인어 학원 초급반에 등록한 거? 요즘 루이스 미겔 등 스페인 음악에 빠져있는 터라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덕원: 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며 보냈다. 국민TV 라디오 <브로콜리 너마저 덕원의 보편적인 노래>의 디제이와 SBS파워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의 수요일 고정게스트를 맡고 있다.

Q. 멤버들은 덕원의 라디오 진행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개인적인 소견으론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을 들어보니 상당히 재치가 넘치는 것 같던데.
향기: 라디오라…
류지: 한 번 들어봤나? 별로 안 들어봐서 뭐라 평을 못하겠다(웃음).
덕원:

Q. 대학교 재학 시절 노래패에 가입한 것이 브로콜리 너마저의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향기: 대부분 멤버 교체 후 지인들을 통해 소개로 들어왔다. 나 같은 경우에는 2006년만 하더라도 기타실력이 엉망이라서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는 거냐” 묻기도 했다(웃음). 그땐 달랑 기타 하나에 이펙터 같은 장비도 없었다. 나에겐 브로콜리 너마저가 첫 밴드다. 그래서 음악을 하면서 내가 듣고 자란 음악들보다도 멤버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거 같다. 고등학교 때도 밴드 동아리에 들긴 했는데 그때는 ‘밴드’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았다. 어느 날 교장선생님께서 어머니께 “쟤 기타 좀 뺏어서 벽장에 숨겨놓으세요!”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만큼 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웃음).
류지: 나는 원래 실용음악과로 입학하면서 피아노나 키보드를 치는 동아리를 찾고 있었다. 근데 합창단에 가기엔 나의 실력이 부족했고 그러다보니 갈 때가 노래패뿐이었다(웃음).

Q. 모두 대학에 와서 같은 동아리를 하면서 만난 건가?
향기: 그건 아니다. 나는 단과 대학 노래패였고, 이분들(덕원, 잔디, 류지)은 중앙 노래패였다. 클래스가 달랐다(웃음).

Q. 잔디는 간호사 일을 했었고 덕원은 방송국 PD 시험을 보겠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이 음악뿐이었나.
잔디: 다 그 때 그 때 해야 할 일들을 했던 것 같다. 간호사일도 했지만 당시에는 ‘학교에서 전공을 했으니까 1, 2년 정도는 그 일을 하는 것이 대학 전공에 대한 예의다’고 생각했다(웃음). 음악은 아마추어로 시작했고 지금도 마음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병원일을 하면서도 음악을 병행하려 했었는데, 어느 시점이 가서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선택하게 된 거다. ‘음악을 꼭 해야 한다’는 굳은 결의나 사명감 같은 것은 아니었다(웃음).
덕원: 제대를 하고나서 록밴드를 결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이미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많은 생각들이 있었지만 제일 중요했던 건 ‘돈을 못 벌고 내가 음악을 잘 못해도 하고 싶은 걸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때만 해도 직장 다니면서 직장인 밴드해서 나중에 친구들 부르고 이런 건 꼴사납다고 생각했다. 뭔가 재롱 잔치하는 것처럼 비쳐지지 않나. 진짜 하고 싶은 건데 그런 식으로 밖에 할 수 없다면 정말 슬플 것 같았다. ‘안정된 미래를 음악과 바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 알지 않나, 직장생활을 해봐야 별거 없다는 거(웃음). 솔직히 말해서 ‘음악을 사랑해서 직업으로 선택했다’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음반사에 취직해서 얼마간 일을 해봤지만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후반에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거다(웃음).



Q. 그래도 음악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이 없었다면 전업뮤지션을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덕원: 물론 ‘음악을 해도 되겠다’하고 안심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다. 가정 형편에 여유가 있고 음악을 한량처럼 할 수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안했을지도 모르겠다. 2005년에는 레이블도 운영해봤고, 음반 유통, 매니저 등 관련 업무를 다 경험했다. 음악을 만들어서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음악에 투자해 본 경험이 주효했다. 솔직히 음악을 하고 싶다고 기획사에 들어가면 확률은 만분의 일, 십만 분의 일 그 보다도 더 할 거다. 그래서 직접 음악을 하는 게 오히려 승산이 높다고 생각했다.

Q. 2006년부터 함께 밴드 생활을 해왔는데 모든 곡을 덕원이 다 쓰고 있다.
덕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음악을 따로 공부한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음악 배울 때보면 교과서에 화성악 이런 것들이 나온다. 그때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조금씩 만들면서 체득했다. 요즘은 가사를 먼저 쓰면서 음을 붙여본다. 그러다 조금 짜임새 있게 악 구성이 나오면 한 구절이 나오는 식이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작곡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나는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작업한다.
류지: 덕원이 다 만들지만 어느 정도 뼈대를 잡은 곡을 가지고 오면 합주를 해보며 함께 작업한다. 브로콜리 너마저만의 색깔을 입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향기: 우리끼리 작업을 할 때는 악보를 따로 만들지 않는다. 얘기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일단 곡을 들고 오면 합주하고, 또 각자 집에 돌아가서 생각해보고 다시 합주해보는 식이다.

Q. 브로콜리 너마저하면 ‘청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언제까지 청춘일 수 있을까.
덕원: 사무엘 울만이 말한 것처럼 가슴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떠오를 때까지는 청춘이지 않을까.
향기: 청춘은 어느 시점이라고 딱 꼬집어 얘기하긴 어렵다. 젊더라도 감정이 메말라있다면 청춘이 아닐 거고,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뭔가를 열정적으로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청춘일 거라 생각한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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