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 팝
이기 팝
이기 팝

펑크록의 신이었다. 광분 그 자체였다. 찰나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가 노래를 하면 천지가 요동치는 듯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록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미덕! 바로 이기 팝이었다. 아쉬운 것은 단 하나였다. 벨트는 풀었지만 바지는 벗지 않았다는 것이다.

17일 서울은 최고 온도가 31~32도를 웃돌았다. 하지만 이날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시티브레이크’(이하 시티브레이크)가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은 올해 들어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맞이했다. 바로 ‘이기 앤드 더 스투지스’ 때문이었다. 이기 팝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광분해 무대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첫 곡으로 ‘Raw Power’가 시작되자 주경기장에 폭탄이 떨어진 듯했다. 음량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순전히 이기 팝 때문이었다.

관객들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신기한 풍경이었다. 메탈리카, 뮤즈가 나온다고 해서 ‘시티브레이크’ 티켓을 구매했을 대다수의 젊은 팬들이 처음 보는 이기 팝을 보고 열광하기 시작했다. 노래 제목을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기 팝이 뱉어내는 에너지는 진짜였으니 말이다. ‘Gimmie Danger’까지 달린 이기 팝은 “나에게 총이 있지(I got a gun)”이라고 말하고 ‘Gun’을 노래했다. 이기 팝의 밴드 스투지스의 사운드 역시 광폭 그 자체였다. 이기 팝과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펑크록 역전의 용사들인 제임스 윌리엄슨(기타), 마이크 와트(베이스), 스티브 매키(색소폰), 스캇 애쉬턴(드럼)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대단했다.

이기 팝은 어느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마치 정글에 내던져진 굶주린 사자 같았다. ‘Fun House’를 부를 때에는 무대 밑으로 내려가 관객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노래했다. 보호막과 경호원들이 없었다면 객석으로 난입해 함께 뒹굴 기세였다. 그 와중에 마이크 와트는 앰프에 베이스를 비벼대며 장단을 맞췄다.

광분한 이기 팝
광분한 이기 팝
광분한 이기 팝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하자 이기 팝은 ‘퍼킹 땡큐(Funking Thank You)’를 외쳤다. 공연 내내 ‘퍽(Funk)’을 입에 달고 다녔다. 이기 팝이 해주는 ‘퍽’은 달콤하게 들리더라. 공연이 막바지로 가면서 분위기가 최고조에 오르자 이기 팝은 벨크를 풀었다. 순간 팬들은 이기 팝이 바지를 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기 팝은 벗지 않았다. 어느 한 관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정말 예쁘다(You are so fucking pretty)”라고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을 뿐.

많은 록 골수팬들은 올해 록페스티벌 라인업을 통틀어 이기 팝의 첫 내한을 가장 기다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기 팝의 공연은 그 기대감의 몇 배에 달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뿌려줬다. 황신혜 밴드의 리더 김형태은 “이기 팝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밴드들의 공연을 보고 싶었으나 이기 팝의 공연을 본 후 아무런 욕구도 느끼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시티브레이크’의 입구에는 금속탐지기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금속탐지기로 관객들 짐을 검사한 후 입장시켜 원성이 잦았다. “이기 팝의 공연 때문에 일부 과격 펑크 팬들이 체인, 나이프 등을 소지하고 무대에 난입할 위험 때문에 금속탐지기를 놓았다”는 말도 들려왔다.

뮤즈
뮤즈
뮤즈

이기 앤드 더 스투지스 외에 뮤즈, 림프 비즈킷 등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이어졌다.

이날 헤드라이너였던 뮤즈 역시 뜨거운 무대를 펼쳤다. 첫 곡 ‘Supremacy’부터 관객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헤비하면서 드라마틱한 사운드가 주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삼인조 밴드(백업 연주자 1명)임에도 스타디움 밴드의 위용을 보는 듯했다. 가히 새로운 시대의 록 히어로다운 무대였다.

앨범의 사운드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는 연주력은 실로 대단했다. ‘Stockholm Syndrome’, ‘Time Is Running Out’ 등 외에 새 앨범 ‘The 2nd Law’의 스케일 큰 사운드도 충분히 무대에서 구현됐다. ‘Madness’에서는 덥스텝 효과를 내는 크리스 볼첸홈의 연주가 돋보였다.

뮤즈는 한국에 여러 번 내한한 밴드답게 “안녕하세요. 한국에 다시 와서 좋아요” 등의 한국말을 구사했다. 급기야 공연 중간에는 매튜 벨라미가 ‘애국가’를 기타로 연주하기도 했다. 주경기장에 관객들의 애국가 합창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벨라미는 공연 중간에 AC/DC의 ‘Back In Black’, 건즈 앤 로지스의 ‘Sweet Child O’ Mine’의 기타리프를 연주해 록 팬들을 즐겁게 했다. 다음날 헤드라이너인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을 연주하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림프 비즈킷
림프 비즈킷
림프 비즈킷

림프 비즈킷 역시 공연 중간에 메탈리카를 연주했다. 이날 림프 비즈킷의 무대는 마치 전성기 때의 인기를 되찾은 듯 엄청난 열기를 토해냈다. 공연 시작 전 5분 전부터 관객들은 함성을 질러대며 림프 비즈킷의 귀환을 반겼다. 펑크록 밴드들이 공연 전주곡으로 자주 애용하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서부영화음악이 나오자 관객들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첫 곡으로 ‘Rollin’’이 나오자 관객들은 분기탱천하기 시작했다. 이보다 놀기 좋은 노래가 또 있을까? ‘My Generation’이 곧바로 이어지자 관객들은 스트레이트와 어퍼컷을 연달아 맞은 듯했다. 림프 비즈킷의 주제가라 할 수 있는 ‘Nookie’가 나왔을 때에는 분위기가 초절정에 다다랐다. 웨스 볼렌드가 돌아온 림프 비즈킷의 사운드는 다시 예전의 활력을 찾은 듯했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프레드 더스트는 월드컵처럼 ‘대한민국’을 외치는 등 팬서비스도 해줬다. 기타리스트 웨스 볼랜드는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와 ‘One’을 연주해주며 관객을 즐겁게 해줬다. 이어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1절 해주더니 급기야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Killing In The Name’을 완벽하게 커버해줬다. 웨스 볼랜드는 탐 모렐로의 기타 연주까지 재현했다. 관객들은 림프 비즈킷 노래보다도 오히려 너바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노래를 더 크게 따라 불렀다.

정차식
정차식
정차식

해외 뮤지션 외에 정차식, 트램폴린, 장기하와 얼굴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등 국내 실력파 아티스트들도 ‘시티브레이크’를 뜨겁게 달궜다. 현대카드 측은 이날 ‘시티브레이크’에 3만5천 명의 관객이 왔다고 전했다. 페스티벌 둘째 날인 18일에는 메탈리카, 신중현 그룹, 김창완 밴드, 재팬드로이즈, 김태춘, 얄개들, 스파이에어 등 19팀이 무대에 오른다.

글, 사진.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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