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릿./사진제공=빌리프랩


K팝 팬들이 음악방송 사전 녹화 등을 참여했을 때 소속사에서 감사의 의미로 나눠주는 포토카드가 오히려 팬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사전녹화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미뤄졌음에도 중간에 녹화장을 떠나는 이들에게 소속사가 나눠줬던 포토카드를 반납하라고 요구하면서다. 포토카드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되팔이'를 방지하겠다는 게 소속사의 이유지만, 그 중에는 등교 등을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현장을 떠나야 했던 팬들도 있어 선의의 피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K팝 팬들 사이에서는 팬이 '을'이라며 갈수록 K팝 팬들을 호구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아일릿은 지난달 28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데뷔 후 첫 음악방송 사전 녹화를 진행했다. 아일릿의 소속사 하이브는 팬덤 플랫폼 위버스를 통해 사전 녹화에 참석할 팬을 모집했다. 공지에 따르면 녹화 일정은 오전 5시 20분으로 예정돼 있었다.
아일릿 위버스 공지./위버스 갈무리

아일릿은 촬영 일정 지연으로 당초 공지했던 시간에 무대를 선보일 수 없었다. 앞서 아일릿의 소속사 하이브는 참석 여부를 오전 2시30분경 확인했다. 참석이 확인된 팬들은 녹화 전까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다만 대중교통이 다니는 시각이 아니기에 팬들은 길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팬들이 온라인상에 올린 글에 따르면 입장은 오전 7시쯤 진행됐다. 일정이 지연되며 출근, 등교 등으로 중도 퇴장하는 팬들이 생겼다.하이브 측은 중도 퇴장한 팬에게 참석자를 대상으로 제공한 포토카드를 반납할 것을 요청했다. 일부 기획사에서는 음악방송 사전 녹화에 참석한 팬들에게 포토카드, 역조공(아이돌이 팬에게 하는 선물) 물품 등을 제공한다. 중도퇴장자에게는 불이익이 주어지는 것 또한 관행적이다. 받은 물품을 반납하는 게 그 예시다.

케이팝 팬들에게 포토카드의 의미는 남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손에 넣기 위해 교환을 시도하기도 하고,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이번 사전 녹화 일정은 아일릿의 첫 음악방송이었기에 더욱 의미 있었을 것이다. 중고품 판매 플랫폼에서 포토카드는 앨범보다 비싼 값에 팔린다.
장원영 포토카드./사진=번개장터 갈무리

포토카드 회수는 포토카드에 '프리미엄' 가격을 붙여 판매할 것을 우려해 취한 조치로 예상된다. 엔터업계 관계자는 "포토카드 시세가 워낙 높게 형성돼 있다. 이런 부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이유로 다수의 소속사가 중도 퇴장자에게서 포토카드를 회수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기 아이돌인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 공개방송 포토카드는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60만원에 판매 중이다. 포토카드 되팔이 방지를 위한 하이브의 회수 조치가 마냥 갑질처럼 볼 수 만은 없는 이유다.

NCT WISH./ 사진 제공=SM엔터테인먼트
하지만 문제는 방식이다. 일괄적인 방식을 적용하고, 이런 사례가 쌓이면서 팬들의 불만은 커져가고 있다. 아이유 콘서트장에서 한 관객이 티켓 부정거래로 의심받아 공연을 못 보게됐던 사례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1일 NCT위시 팬 사인회에서는 개명 전 사인회에 응모한 팬이 바뀐 이름으로 사인을 받길 요청했으나 음반사 측에서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모두 원칙을 강조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해당 팬은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개명 허가 등기를 보여줬는데도 안 된다고 했다"며 "내가 싸인 받는 거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가 싶으면서 다음 팬 사인회에 가지 말까 생각까지 했다"고 밝혔다. 대리 참석, 참석권 양도 등을 방지하고자 한 것으로 풀이되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쉬울 만한 대처다.

산업이 클수록 원칙은 중요하다. 하지만 K팝 산업은 단순한 재화 소비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을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다. 마음이 상하면, 주머니도 닫힌다. 커다란 댐이 무너지는 것도 사소한 균열부터 시작된다. 원칙을 세우되, 팬의 사정도 고려할 수 있는 현장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o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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