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해, 대충” SBS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해 아침밥을 짓던 황정민은 재료를 다듬는 김수로와 돼지감자를 씻는 김종국에게 연신 ‘대충대충’의 미학을 설파했다. 하지만 아침을 준비하는 게 너무 귀찮아죽겠다는 그의 심드렁한 표정과 된장국에 대충 썰어 넣은 봄동과 두부가 보글보글 익어가는 풍경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다. “너 정말 요리 잘 하는 거 맞느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김수로는 “역대 TOP 5에 들 아침이었다”고 인정하고, ‘패밀리가 떴다’ 멤버들은 그에게 앞으로 계속 아침을 맡아주면 안 되냐고 물어볼 정도로 그날 아침식사는 대성공이었다. 대충 투박하게 만든 것 같은 카레와 된장국에 숨어있는 정교한 맛의 레시피. 이것은 ‘림바랍빠’를 부르며 나사 하나 풀어진 모습으로 아침을 준비하던 그에게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노련함의 정체인지 모른다. 세상 가장 털털한 모습조차 표정과 목소리, 제스처의 황금비율을 통해 만들어낼 것 같은 배우, 그게 황정민이다.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치밀한 연금술사

에 처음 등장한 그를 보았을 때 든 첫 감정은 ‘어디서 저런 배우를 기막히게 골라왔을까?’였다. 질그릇처럼 소박한 그의 얼굴에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된장찌개처럼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정서가 그대로 담겨있었고, 밴드를 그만두고 마을버스를 몰던 그가 자신을 배신했던 친구의 전화에 눈물을 글썽이며 욕을 내뱉을 때 그는 그냥 완벽한 강수였다. 만약 그가 의 석중, 의 두철, 의 슈퍼맨처럼 비슷한 영역 안에서 변주되는 연기만을 보여줬다면 우리는 그런 인간미 넘치는 착한 사람이 황정민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속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도 찍었고, 도 찍었다. 특히 의 야비하면서도 능글맞은 백 사장은 짧은 출연 분량에도 불구하고 강수와 함께 황정민의 연기 능선 중 가장 인상적인 한 봉우리를 형성했다.사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겹도록 반복한 얘기지만 황정민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맞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캐릭터를 얄미우리만치 잘 만들 줄 아는 배우다. 그것은 폭발하는 천재성을 캔버스에 휘갈긴 고흐의 회화보다는 견고한 단순성과 명료한 구성을 계산해 담아내는 세잔의 회화에 가깝다. 가령 에서 “반갑다 상두야”라고 걸쭉한 질감의 부산 억양을 들려줄 때조차 마산 출신 연기자의 자연스러움보다는 닳고 닳은 부산 강력계 형사 도 경장의 이미지를 한 치 오차나 낭비 없이 표현하는 깔끔함이 눈에 띈다. 그가 신작 에서 구한말 탐정 홍진호라는 여태 볼 수 없던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는 ‘넌 이제 홍진호야. 홍진호니까 대사 좀 틀리면 어때. 놀아. 즐겨’라고 되뇌며 “비로소 나를 믿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 과정은 캐릭터가 접신해 작두를 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여전히 연기가 끝날 때마다 모니터를 보고 캐릭터를 확실히 잡기 위해 ‘딱히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됐네요’처럼 없던 대사도 만드는 과정을 통해 홍진호를 탄생시켰다. 여기에 ‘만든다’는 표현보다 어울리는 건 없어 보인다.

노련한 그 남자, 여전히 외줄 위에 서있다

이는 “배운 게 그것뿐이라 연극할 때 배웠던 연기 방식과 캐릭터 분석을 영화에서도 그대로 사용”하는 그의 방법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배우로 성공한 이후에도 뮤지컬 이나 연극 에 출연해온 그는 “컷으로 분절되지 않은 무대 위의 연기를 할 때 더 자연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베이스가 무대 연기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에서 홍진호가 단서를 찾기 위해 서커스단의 무대 위로 올라와 단장과 주고받는 대사는 다분히 연극적이다. 그래서 그의 연기 같은 연기는 의 소심한 보험사정원 준오처럼 평소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인물보단 백 사장이나 도 경장 같은 악역, 혹은 두철 같은 ‘무대뽀’ 등 캐릭터 같은 캐릭터를 만날 때 훨씬 진가를 발휘한다.

그런 면에서 황정민이 연기를 이어온 과정은 의 원제인 ‘공중곡예사’의 외줄타기와 닮아있다. 첫 드라마 에서 맡은 구동백이 석중과 닮았지만 “다른 인물이 나올 거라는 생각”으로 도전하는 그에겐 과거 캐릭터가 누적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철저히 캐릭터를 만드는 타입인 그가 강수를 지우며 석중을, 석중을 지우며 두철을, 두철을 지우며 구동백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항상 새롭지만 위태로운 출발이고, 때문에 누적된 토대가 아닌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 진행된다. 그 위에서 그는 어정쩡한 중도를 걷기보단 의 신파 연기에서 살짝 기울어진 몸을 의 거친 악역연기로 상쇄하며 양극의 하중을 팽팽하게 유지하거나 의 영작이나 의 영수처럼 발 딛는 위치가 애매하기에 더더욱 균형 감각이 필요한 지점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며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서있다. “땅에 발붙인 인물”을 그리기 위해 오히려 역설적으로 외줄 위에서 펼쳐지는 그의 공중곡예는 그래서 더욱 눈을 뗄 수 없다. 설령 그 긴장된 순간순간의 표정조차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라 해도.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