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배우들은 꽃잎 같고 열매 같다. 그러나 윤진서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다가도 바람에 금세 나부끼는 잎사귀 같은 여배우다. 여리고 곱기만 한 것도 아니요, 묵직하게 존재를 알리는 것도 아니지만 그녀의 자리는 아련하면서도 자유로운 특유의 온도 때문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영화들은 <올드보이>부터 <바람 피기 좋은날>, <비스티 보이즈>, <이리>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제 색깔을 가진 작품들이지만, 그녀가 연기했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한눈에 정의하기 어려운 묘연한 구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명, MBC <돌아온 일지매>의 월희는 어려운 인물이 아니었다. 맑은 달처럼 언제나 일지매가 돌아올 곳이 되어주었던 그녀는 윤진서의 작은 입술과 단정한 눈매를 만나 순수한 월희로 완성 되었다. 그에 더해 윤진서가 직접 부른 테마곡 ‘내가 꿈꾸는 그곳’은 월희의 소박하고 따뜻한 면을 더욱 부각시켜 주었다. “원래 CCM이에요. 감독님이 라디오에서 들었다고 저한테 부르라고 하셨는데,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그 노래 원작자세요. 이 노래 불러도 되냐고 여쭤 보는 것도 제가 전화 했죠. 스무 살 때부터 부르던 노래를 이런 인연으로 만나니까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는 윤진서의 얼굴에는 아직도 월희의 동그란 미소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와 웃음에는 따뜻한 봄날의 기운이 서려있다. 한결 친근한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인지 그녀를 둘러싼 공기가 부쩍 편안하고 부드러워 진 느낌이다. 이제 좀 더 시청자들에게 가깝게 다가선 그녀에게 ‘봄의 얼굴 같은 노래들’을 추천 받았다. 계절이 언제든, 온기를 나누고 싶을 때면 듣기 좋은 음악들이다.




1. 줄리아 하트의
“앨범이 발매 된 지 제법 됐는데, 요즘 들어서 다시 자주 듣고 있어요. 정말이지 너무 귀여운 노래잖아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구 추천하고 있답니다.” 음악을 잘 모른다고 하면서도 막시밀리언 해커와 레이첼 야마가타, 네스티요나의 좋아하는 앨범을 커버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는 그녀는 사실 제법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리스너다. 그 중에서 그녀가 봄날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곡으로 꼽은 것은 소녀적인 감성으로 충만한 모던록 밴드 줄리아 하트의 싱글에 실린 ‘Miss Chocolate’이다. “발랄한 느낌이 좋은 곡이예요. 기분 좋은 날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들으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노래죠. 줄리아 하트의 노래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가사나 제목도 정말 사랑스러워요.”



2. Lily Allen의
영국 출신의 가수 릴리 알렌의 는 그녀가 최근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다. 개성 넘치는 옷차림과 독특한 언행으로 주목받는 릴리 알렌은 2006년 데뷔와 동시에 ‘smile’의 히트로 세계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릴리 알렌은 목소리 자체가 매력적이에요. 특히 앨범은 전체적으로 노래들이 다 좋아서 특별히 아끼는 앨범이에요. 저는 사진 촬영을 할 때 신나는 분위기를 연출해야 할 상황이 되면 이 앨범의 곡들을 틀어 놓는답니다. 그러면 항상 기분이 좋아져요. 릴리 알렌의 가사나 제목은 과격한 경우가 많지만 곡의 분위기 자체는 워낙 명랑하잖아요.”




3. 윤상의
“봄이라고 해서 항상 기분 좋을 수는 없잖아요. 날씨는 좋은데 나만 솔로로 있다던가. 하하. 분위기가 밝지는 않지만 이 노래 가사가 정말 좋거든요. 꼭 가사를 잘 음미하셔야 해요.” 윤상의 3집 앨범에 수록된 ‘사랑이란’을 추천하면서 윤진서는 기억을 더듬어 노랫말을 시처럼 읊어 주었다. “노래 중에 ‘이별까지도 사랑인 걸’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그 부분을 듣고 나서 사랑의 범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친한 언니랑 같이 이 노래 들으면서 몇 번이나 감탄 하면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 했었답니다. 어쩜 박창학씨는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요. 저도 디지털 싱글 ‘l`amour’를 작업할 때 직접 가사를 썼는데, 작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녀가 좋아한다는 작사가 박창학은 윤상 외에도 정재형, 김동률, 박효신의 노래들을 작사했으며, 유명 뮤지컬의 가사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4. 로로스의
“5년 쯤 전에 처음 파리에 갔을 때 만난 친구가 로로스에서 베이스를 치는 김석이에요. 그때 저는 신인 배우였고, 그 친구는 기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있으니 정말 신기해요.” 그녀의 친구가 몸담고 있는 밴드 로로스는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될 정도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포스트 록밴드. 특히 ‘너의 왼쪽 안구에서 난초향이 나’는 윤진서가 그들의 음악 중에서 가장 좋은 노래로 꼽는 곡이다. “솔직히 앨범의 반 정도는 난해하고 반 정도는 좋아요. 하하하. 첼로 소리가 들어가서 특색 있더라구요. 전체적으로 서정적이면서도 고요한 분위기가 참 좋아요. 분명히 불협화음이 많은 노래들인데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져요. 이상한 음악이에요. 하하.”



5. Carla Bruni의
마지막으로 윤진서가 추천하는 곡은 프랑스의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첫 번째 앨범 중에서도 ‘Le Plus Beau Du Quartier’다. “파리에서 봄을 보낼 때 정말 많이 들었던 앨범이에요. 3집에 가서 음악적으로도 깊어졌고, 가사도 철학적으로 성숙해서 좋기는 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옛날 앨범이 더 좋네요.” 유난히 파리를 사랑하는 그녀는 실제로도 한동안 불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카를라 브루니처럼 기타를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불어는 벌써 많이 잊어버렸어요. 게다가 기타는 바이올린을 오래 해서 쉬울 줄 알았는데, 손도 아프고 생각보다 힘들더라구요. 하지만 언젠가는 작은 공연장에서 기타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연기까지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전문 MC가 아니니까 잘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드라마를 끝내고 짧은 여행을 다녀온 그녀는 <돌아온 일지매>의 마지막 방송을 제대로 볼 여유도 없이 다음 영화 준비에 돌입했다. 유지태와 함께 출연하는 영화 <눈 펄펄 내릴 비>에서 그녀는 시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형수로 등장할 예정이다. 그리고 현재 그녀가 가장 많은 시간 고민하고 있는 것은 최근 MC를 맡게 된 M.net <트렌드 리포트 필>을 보다 재미있게 만드는 일이다. “처음에는 프롬프터 보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금 적응 한 것 같아요. 전문 MC가 아니니까 잘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인터뷰 코너도 제가 감독님 졸라서 만들었어요. 출연자도 제가 직접 선택해서 섭외도 한답니다. 얼마 전엔 테리 리처드슨이 내한했다는 얘기 듣고 정말 급하게 섭외 했어요. 오늘은 모델 김영광씨랑 윤진욱씨를 인터뷰 했는데 윤진욱씨가 내일 출국 하신대서 부랴부랴 모셨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녀는 유난히 말이 빨라진다. 숨이 찰 정도로 즐거운 계획을 털어놓는 그녀의 눈동자가 봄 햇살에 눈이 부시게 반짝인다. 이런 생생한 기운이라면, 앞으로도 한동안 우리는 특별한 한명의 여배우를 계속 지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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