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스게일
아우스게일
아우스게일

아우스게일(Asgeir)은 현재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신예 싱어송라이터로 꼽힌다. 지난 2012년 스무 살에 발매한 데뷔앨범 ‘Dyrð i dauðaþogn’이 아이슬란드 국민 열 명 중 한 명이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아우스게일은 이 앨범으로 ‘아이슬란드 뮤직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 ‘올해의 신인’ 등 4관왕에 올랐다. 또 이 앨범은 월드 와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인 더 사일런스’로 재 발매돼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지난 17일 잠실 ‘파이브나이츠’ 공연에서 본 아우스게일은 매우 복합적인 음악을 들려줬다. 컨트리 스타일의 기타에 신디사이저를 통한 전자음이 깔리면서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일렉트로 풍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우스게일은 주로 가성을 통해 마치 그렉고리안 찬트처럼 노래하며 성스러움을 더했다. 최근 유행하는 인디 포크, 얼터 컨트리, 일렉트로니카 등이 버무러진 음악이면서 알맹이가 느껴졌다. 그 음악을 듣고 아직 가보지 않은 아이슬란드의 풍관을 상상해보게 됐다.

인터뷰를 위해 직접 만난 아우스게일은 진지하고 차분한 인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음악, 또 자라면서 들어온 음악들에 대해 솔직하고 자세하게 말해줬다. 주민이 40명인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소박하고 겸손한 모습도 느껴졌다. 오른 손 약지에 반지 모양의 문신에 대해 묻자 그는 매우 수줍어하면서 “지금 여자 친구가 영원히 함께 하자고 해서 새긴 것”이라고 대답했다.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겉모습만 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어보였는데 알고 보니 이제 고작 스물세 살이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는 아우스게일, 사랑도 성공하길.

Q. 한국을 처음 방문한 소감이 어떤지?
아우스게일: 아주 좋다. 어제 저녁때 도착했다.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제 밤에 도착해서 먹은 한국 바비큐이다.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서도 한국식 바비큐를 먹어봤지만 어제 먹은 게 훨씬 맛있었다. 한국 바비큐라면 이런 맛이어야 하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도 맛있다.

Q. 근황은?
아우스게일: ‘인 더 사일런스(In The Silence)’ 앨범을 내고 계속 투어 중이다. 지난해 12월 27일에 호주를 시작으로 시드니, 멜버른 그리고 퍼스 등에서 콘서트와 페스티벌을 가졌다. 호주에서 2주 정도 공연을 하고 그 후 일본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며 도쿄에서 두 번, 오사카에서 1회 공연을 했다. 그리고 어제 서울에 막 도착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서울이 마지막 공연이다. 내일 다시 아이슬란드로 돌아간다. 서울에서 아이슬란드까지 30~40시간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그렇다면 오늘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휴식을 가지게 되는 건가?
아우스게일: 잠시 쉬다가 2월부터 미국에서 호지어(Hozier)의 투어에 서포트 밴드로 참여하고 그 외에 여러 일정들이 잡힐 것 같다. 2월 투어를 마치면 1년 ~ 1년 반 정도 휴식을 하면서 차기작 준비에 집중할 생각이다.

In The Silence 앨범커버
In The Silence 앨범커버
In The Silence 앨범커버

Q. 아이슬란드 인구의 10%가 당신의 앨범 ‘Dyrð i dauðaþogn(Glory In The Silence Of Death)’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정도로 큰 성공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우스게일: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앨범을 내기 전 나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였다. ‘Dyrd i daudapogn(Glory In The Silence Of Death)’ 발매 전에는 라디오 방송국들을 위해서 싱글을 미리 발매했는데 그 곡들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고 나서 아이슬란드의 유명 음악방송에서 그 곡을 연주하게 되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방송에 나간 뒤 몇 주 후에 라디오 방송국들을 겨냥한 내놓은 또 한 장의 싱글이 아주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몇 주 동안 계속 차트에서 1위를 했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난 후 앨범 발매를 해서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하나씩 잘 쌓아갔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좋은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프로듀싱이 조화를 이룬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가사나 멜로디가 젊은 층부터 나이든 사람들까지 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게 사랑을 받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Q. 앨범 소개를 부탁한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는지?
아우스게일: 열일곱 살 때부터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봐도 된다. 앨범에 담긴 곡들 중 오래된 곡들은 내가 열일곱 살 때 쓴 것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전하고자 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특별히 없다. 앨범을 만들 때 하나의 총체적 이미지로 생각하지 않았다. 각각의 곡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처음에 곡을 쓸 때에는 앨범을 만들거나 발매할 생각으로 녹음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 다섯 곡 정도를 만들고 나서 앨범을 발매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각각의 곡은 서로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앨범을 들어보면 전체적으로 통일된 느낌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사와 멜로디를 통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앨범이 하나로 묶이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가사도 음악도 처음부터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튜디오에서 실험해보고 만들어본 것들이고, 하나하나 만든 결과가 이 열 트랙짜리 음반이다.

Q. 킹 앤 크로스(Kings and Cross)의 뮤직비디오가 흥미롭다. 어떤 내용을 담은 것인가?
아우스게일: 뮤직비디오를 여러 버전으로 만들었다. 아마 우리가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한 그 비디오를 말하는 것 같은데 영상을 보면 아이슬란드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들, 전래동화와 같은 이야기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것이다. 함께 일했던 감독들이 아우트미와 킨스키인데 이들은 이전에 많은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를 작업했었다. 곡을 먼저 듣고 비디오의 플롯을 생각했다고 한다. 댄서들과 왕과 왕비가 등장하는데 곡의 가사와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래동화와 같은 느낌을 준다. 동시에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아름답게 담아낸 비디오이다.

Q. 이 앨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아우스게일: 아마 앨범의 마지막 곡인 ‘온 댓 데이(On That Day)’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곡의 단순함과 포크적인 느낌이 좋다. 녹음실에서 몇 시간동안 녹음을 하면서 그걸로 그냥 완성된 곡이다. 만들어진 그대로의 모습 외에 다른 것을 더 추가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또 이곡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가사를 가지고 있다.

Q. 곡은 어떻게 만드나? 곡을 만드는 본인만의 비법이 있다면?
아우스게일: 항상 곡을 먼저 쓰고, 구조를 잡은 뒤에 마지막으로 가사를 쓴다. 이번 앨범에서는 내가 가사를 쓰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가 시인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시집을 내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여섯 살 때부터 시를 쓰던 분이다. 이번 앨범의 대부분의 가사는 시인인 아버지와 작사가인 친구가 썼다. 나는 곡을 써서 녹음을 해서 이들에게 보내거나 곡의 일부를 써서 들려주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지 이야기 해준 다음에 그들이 가사를 쓰고는 했다. 거의 그런 방법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아우스게일 3
아우스게일 3
Q. 시규어 로스나 뷰욕도 그렇지만 아이슬란드 아티스트들의 음악에서는 어떤 공통적인 느낌이 느껴진다. 이것이 자연 풍광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아우스게일의 음악에도 아이슬란드의 자연이 영향을 미쳤을까?
아우스게일: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이슬란드라는 나라 자체가 나에게 영감을 준다. 시골의 한 작은 마을에서 자라나면서 자연을 가깝게 느끼게 됐다. 지금도 아이슬란드의 집에 돌아가면 왜인지 그 자연 속으로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아이슬란드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겨울이 되면 계속해서 밤만 지속된다. 어둡고 추운 날들이 이어져서 사람들도 집 안에서 많이 지내게 된다. 나도 자라나면서 겨울이면 그냥 집 안에서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고 녹음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마 그래서 아이슬란드 밖의 사람들이 아이슬란드 출신 아티스트의 곡을 들으면 뭔가 공간감 있고 분위기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Q. 그리고 모두들 영어를 참 잘한다. 어째서인지? 모국어는 아니지 않은가?
아우스게일: 여섯 살 때부터 학교에서도 영어를 배웠다. 영어는 아이슬란드의 두 번째 통용어라고 볼 수 있다. 내 한 세대 위까지만 해도 네덜란드어가 두 번째 언어였다. 40년대까지 아이슬란드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것도 있고, 학교에서도 네덜란드어를 가르쳤었다. 아직까지 8살부터 16살 정도까지는 네덜란드어를 배운다. 그리고 네덜란드어와 아이슬란드어가 좀 비슷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는 영어가 두 번째 언어처럼 되었다. 많은 음악들, TV쇼들, 영화들이 영어로 제작되고 그런 것들을 계속 접하다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Q.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아우스게일: 일곱 살 때 처음으로 기타를 잡으면서 시작했다. 학교에서 클래식기타를 배웠다. 어머니 아버지의 영향으로 시작하게 됐다. 어머니가 음악교사셨는데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합창단과 함께 교회음악을 하셨다. 친누나도 나와 함께 악기를 배웠다. 그때부터 내게는 음악을 만드는 게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Q. 굉장히 작은 마을, 주민이 40명인 마을 루가바키(Laugarbakki)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들었다. 정말 작은 동네에서 자랐는데 성장과정은 어땠나?
아우스게일: 끔찍했다(awful).(웃음) 하하 농담이다. 9살인가 10살 때 그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 이전에 아이슬란드의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었다. 항상 전학을 다녔었다. 매년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학교를 다니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 동네를 나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가장 오래 산 곳이기 때문이다. 40명뿐인 이 작은 마을에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웃음) 그런데 근처에 600명 정도가 사는 읍내가 있어서 자라나면서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밴드 활동도 했었다. 그래서 매일 집에서 읍내까지 하루에 4번씩 왔다 갔다 했다. 어머니가 차로 데려다주시고는 했는데 자꾸 왔다 갔다 해서 어머니가 귀찮아할 정도로.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동네에서 자라난 것이 난 좋았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곳에서 나는 뭔가 할 것을 찾아야 했고, 덕분에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또 스포츠를 좋아해서 혼자 열심히 단련을 했다.
아우스게일 7
아우스게일 7
Q.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자랐는지?
아우스게일: 어렸을 때는 클래식을 들었는데 자연스럽게 록으로 넘어갔다. 록밴드를 할 때에는 메탈리카, 슬레이어, 판테라의 기타 리프를 많이 들었다. 밴드에 두 명의 보컬이 있었는데 항상 화음을 넣어서 같이 노래하려 했다. 이것은 어머니가 하던 교회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교회 합창단처럼 여러 화음이 조화를 이루는 느낌으로 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컨트리 음악에 빠진 적도 있었다. 조니 캐시를 정말 좋아한다. 열세 살 때 호아킨 피닉스가 나온 조니 캐시의 영화 ‘워크 더 라인’(한국에는 ‘앙코르’로 개봉)을 보고 그의 음악에 빠져들게 됐다. 그러면서 컨트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미국뿐 아니라 아이슬란드의 컨트리 뮤지션의 음악도 많이 들었다. 또 고전 컨트리 블루그래스 음악을 참 많이 들었다. 그 기타 주법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는 미국의 연주자 켈리 조 펠프스(Kelly Joe Phelps)로 그의 핑거 피킹(손가락으로 뜯는 연주기법) 연주법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아직도 내 음악에서 많이 사용하는 주법이다. 아직도 록을 듣고 연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뭔가 발산되는 느낌이다. 록 드럼을 연주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 포크 음악, 팝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 몇 년 전부터는 일렉트릭 음악, 트립합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Q. 유튜브에서 너바나의 ‘하트 쉐이프 박스(Heart Shaped Box)’를 커버하는 것을 봤다. 어떻게 이 곡을 커버하게 됐나?
아우스게일: 몇 년 전 BBC 라디오에 출연하고 있을 때 였는데 그때 그 프로그램에서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커버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 때 스튜디오에 피아노가 한대 있어서 피아노만을 이용해서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커버해야했다. 사실 나는 커버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라나면서도 다른 가수의 곡을 커버하기보다는 즉흥연주를 하는 쪽을 선호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곡은 내가 워낙에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너바나는 나의 성장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밴드이다. 그래서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그 안에 있는 피아노로 그 곡을 연주했는데 아주 좋았다. 그리고 몇 주 후에 그 곡의 스튜디오 버전을 녹음하자는 제안이 나와서 편곡을 새로이 했다. 피아노의 기본 골격은 놔두고 비트를 가미하고 일렉트로닉 음악의 요소를 더했다. 그리고 그 곡을 발매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주었다.

Q. 소속사 원 리틀 인디언(One Little Indian Records)에는 어떻게 계약하게 됐나?
아우스게일: 뷔욕의 소개로 그 레이블에 들어가게 됐다. 그 곳은 뷔욕 때문에 생긴 레이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를 추천한 사람이 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원 리틀 인디언의 대표가 내 음악을 들어보고 아이슬란드로 직접 와서 나와 계약을 하게 됐다. 뷔욕을 한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녀가 “요즘 차에서 자신의 딸과 가장 많이 듣는 앨범이 내 아우스게일”이라고 말해줬다.

Q. 오른손 약지에 반지모양 문신이 있다. 왜 새겼나?
아아스게일: 여자 친구도 이 문신을 했는데, 나와 영원히 사귀자는 의미에서 새기자고 하더라. 그래서 이 문신을 하게 됐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통역. 정지수
사진제공. 소니뮤직

[SNS DRAMA][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