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건의 오예≫

오늘, 주목할 만한 예능
트리파티로 되찾은 '나혼산' 정체성
떠나간 시청자 마음 되돌릴까
'나 혼자 산다' 아누팜 트리파티/ 사진=MBC 캡처
'나 혼자 산다' 아누팜 트리파티/ 사진=MBC 캡처


≪정태건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아누팜 트리파티, 오랜만에 '나혼산' 정체성 살린 굿캐스팅

MBC '나 혼자 산다'가 인도 출신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의 현실 자취 생활을 그려냈다. 독신 남녀와 1인 가정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선보이겠다는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모처럼 딱 들어맞는 캐스팅이었다.

22일 방송된 '나 혼자 산다'에서는 한국 생활 11년 차 아누팜 트리파티가 소소한 일상을 공개했다. 그는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 199번 참가자 알리 압둘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다. 제작진은 현재 가장 핫한 스타를 불러 그의 일상 생활을 낱낱이 안방극장으로 전하면서 남다른 섭외력을 자랑했다.

아누팜 트리파티는 '오징어 게임'이 신드롬급 인기를 얻으며 SNS 팔로워가 39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월드 스타로 우뚝 섰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는 모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근처 반지하에 홀로 살림을 차려놓고 타지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인테리어와 볕이 잘 들지 않는 자취방은 최근 많은 연예인들이 공개한 보금자리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곳에서 아누팜 트리파티는 인도식 카레를 만들고,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꿈과 희망을 키웠다. 그는 또 싱크대에서 세수를 하거나 부엌 찬장 속에 화장대를 숨겨두는 등 털털한 자취생의 모습을 선보였다. '나 혼자 산다' 전성기를 이끌었던 배우 이시언, 웹툰작가 기안84의 모습이 겹쳐보인 대목이다.

아누팜 트리파티는 두 사람처럼 날 것 그대로의 일상을 공개하면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을 통해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니 더욱 신선했다. 11년째 한국에서 생활 중인 트리파티는 다른 '나 혼자 산다' 패널들과는 달리 꾸며지지 않은 일상을 보여줘 호평을 얻었다. 재일교포 출신 가수 강남이 친근한 매력을 선보이며 강한 눈도장을 찍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렇게 생생하게 전한 현실적인 일상은 '나 혼자 산다' 오랜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아누팜 트리파티의 이야기가 초기의 기획 의도와 가장 맞닿아 있다는 평가도 함께 나왔다. '나 혼자 산다'가 장수 예능프로그램으로 발전하면서 한동안 본래의 색깔을 잃었으나, 초심을 되새길 수 있는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는 의미다.

최근 '나 혼자 산다'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비판에 직면해왔다. 더 이상 현실 세계 같지 않고 꾸며진 스타들의 일상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탓이다. 대부분의 출연진은 고개만 돌리면 한강뷰가 보이는 대저택에서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자랑하듯 선보여 시청자들과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여기에 기안84 왕따 논란, 박나래의 성희롱 발언 등 각종 잡음이 더해지며 빛을 잃기 시작했다.

이에 제작진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아누팜 트리파티의 이야기가 현재까지 해답에 가장 가깝다.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외국인의 가감 없는 일상을 공개하면서 신선함과 진정성을 모두 잡을 수 있었다. '나 혼자 산다'가 비판을 뒤집고 반전을 만들어내려면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 공감가는 현실적인 일상을 보여주면 된다는 힌트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돌파구를 찾아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 기안84와 샤이니 키가 우정을 쌓는 이야기를 그렸다. 제작진은 앞선 기안84의 왕따 논란을 의식한 듯 분량의 대부분을 그가 키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브로맨스를 연출하는데 썼다. '나 혼자 산다'가 멤버들간 과도한 친목질을 강조하고, '혼자만 잘 사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내리막을 걸었다는 걸 절실히 깨닫지 못한 모양새다.

현재 '나 혼자 산다'에게 시급한 건 떠나간 시청자들을 되돌리고 무너진 팬덤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미 수년간 많은 관찰 예능을 접해온 시청자들은 더 이상 공감대 없는 연예인들의 호의호식을 지켜보기 힘들어 한다. 아누팜 트리파티처럼 베일에 쌓인 스타가 진정성을 갖고 일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나 혼자 산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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