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3편의 드라마로 본 이야기
이희준│3편의 드라마로 본 이야기
KBS ‘완벽한 스파이’
“손현주 선배가 ‘넌 내가 책임진다’고 하셨다”
‘텍사스 안타’ 때 손현주 선배를 처음 만났는데 그 때는 얘기를 많이 못 나눴다. 이후 ‘완벽한 스파이’ 때 부산 촬영을 일찍 끝내고 새벽 2~3시 모텔 앞에 있는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둘이 술을 마셨다. 선배가 취하셨는지 넌 내가 책임질 테니까 초심을 잃지 말고 연기하라고 챙겨주셨다. 일주일 뒤 제작발표회를 갔는데 다들 날 잘 모르니까 아무도 질문을 안 하셨다. 근데 갑자기 손현주 선배가 손을 번쩍 들더니 “여러분들이 지금 놓치고 계신 분이 있는데 저기 끝에 앉아있는 친구가 제2의 송새벽이 될 거다”라고 말씀하시는 거다. 으하하하. 넋 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민망해졌다. 그랬더니 한 기자분이 이번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질문하셨다. 네, 어떤 인물이냐면요, 뭐, 중요한 임무를 띠고, 음… (웃음) 배우가 캐릭터를 준비할 때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두서없이 얘기했다. 아무도 못 알아듣는 게 당연했다.
이희준│3편의 드라마로 본 이야기
이희준│3편의 드라마로 본 이야기
‘큐피드 팩토리’
“‘큐피드 팩토리’의 소준은 그냥 나다. 빈틈도 있고, 집에서 혼잣말 하면서 놀고.”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 함영훈 감독님한테 연락을 받았다. “기회가 되면 멜로드라마를 찍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고 제주도에 갔는데 그 기사를 보셨던 모양이다.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지붕에 누워서 책 읽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멜로 하고 싶냐, 지금 아이폰으로 ‘큐피드 팩토리’ 대본 보내줄 테니까 읽고 내일 서울 와서 오디션 봐라. 하하. 대본을 봤는데 정말 재밌었다. ‘큐피드 팩토리’의 소준은 그냥 나다. 빈틈도 있고, 집에서 혼자 청소기랑 대화하고. 셰익스피어의 같은 판타지도 있었고, 오래된 연인이 계속 결정을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지낸다는 점도 공감이 갔다. 실제로 그런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큰 배낭 메고 바로 KBS로 갔다. 대본 첫 장부터 끝까지 소준의 연기를 다 보여드렸더니 김형석 감독님이 ‘신인 배우를 주연으로 쓰긴 부담스러운데 욕심은 나니까 이틀만 시간을 달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그날 밤에 바로 연락이 왔다.
이희준│3편의 드라마로 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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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내 마음대로 연기하다 보니까 귀여운 공칠구가 나왔다.”
촬영하기 이틀 전에 대본을 받았다. 대본에 나와 있는 공칠구는 비열하고 열등감이 넘치고 남한테 밀고를 잘하는 2인자 왈패였다. 그런데 그냥 나쁜 캐릭터를 연기하긴 싫었다. 만약 내가 공칠구라면 자기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연기하다 보니까 좀 귀엽게 나왔다. 하하하. 게다가 원래 사극 톤에 좀 거부감이 있는 편이다. 연극할 때 사극 주인공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난! 당신 때문에! 이렇게까지 했다! 그런데 넌! 그 여인과! 결혼을 하였다!’ 이렇게 엄청 긴 대사를 하는데 정말 심심한 거다. 공칠구 대사도 굉장히 진지한 사극 톤이었는데, 이 사람은 어차피 깡패 아닌가. (웃음) 내가 출연했던 ‘완벽한 스파이’와 ‘텍사스 안타’를 연출하셨던 박현석 감독님이 B팀 감독님이셨는데, “지금 다들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니까 희준 씨가 가볍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혹시나 12회까지 선배님들이 맞춰놓은 드라마의 톤을 내가 도중에 깬 건 아닌지 걱정되긴 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던 게, 박현석 감독님이 빙옥관 두목 조석주 역으로 나오신 김뢰하 선배한테 “희준 씨는 제 페르소나인데 이런 감초 역으로 소비하기엔 너무 아까운 배우”라고 칭찬해주셨다.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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