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곁에 두고 오래 보는 사이
이희준│곁에 두고 오래 보는 사이
피식-하고 웃음부터 나온다. 세령(문채원)에게 치근덕거리다가 기어이 뺨 한대를 얻어맞는 KBS 의 공칠구,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고백 한 번 시원하게 못하는 KBS ‘큐피드 팩토리’의 ‘찌질남’ 소준을 볼 때마다 당장이라도 화면 속에 들어가 따끔하게 충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은데, 희한하게 보면 볼수록 묘하게 빠져든다. 느릿느릿한 경상도 사투리, 능글맞은 눈빛과 너털웃음까지 배우 이희준에게는 상대방의 경계심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 “연기가 더 쉬운 것 같다”며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 한 손에 들린 장미꽃을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어색한 공기가 사라질 무렵 이희준은 속에 감춰둔 자신감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런 얘기해도 되나?”라며 망설이는가 싶더니 “영남대학교 다닐 땐 기타치고 노래하고 술 마시고 연애하는 게 전부였어요. 짧게 만난 것까지 합치면 1년에 한 20명? 병원에 입원해서는 간호사랑도 사귀었어요. 혈압 재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농담 몇 마디 건넸더니…크흐흐”라며 화려한 연애사를 술술 풀어놓는다. 그럼에도 이희준이 얄밉게 느껴지지 않는 건, 마지막 한 마디 덕분이다. “물론 제가 첫 인상으로 성공할 순 없죠. 세네 번 정도 봐야, 되게 재밌고 유쾌하고 착한 남자라는 걸 알아요.”
이희준│곁에 두고 오래 보는 사이
이희준│곁에 두고 오래 보는 사이
스스로 인정했듯 이희준은 볼수록 매력적인 배우다. 2007년 MBC 의 형사 역을 시작으로 ‘완벽한 스파이’, ‘큐피드 팩토리’, ‘동일범’, 까지 분량에 상관없이 뚜렷한 흔적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연희단 거리패에서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한예종에 입학해 연기력을 차곡차곡 쌓아온 덕분이다. 학교 졸업해서 취직하는 게 유일한 목표였던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건 입대 일주일 전에 당한 교통사고였다. 군대 면제를 받고 “할 일이 너무 없어서” 우연히 찾아간 아동극단에서 첫 공연을 한 날, 그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영남대에서 학사경고만 받던 사람이 한예종에 입학해서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내가 송강호, 김윤석 선배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것처럼 다음 세대들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건방진 사명감”으로 무섭게 질주하던 이희준은 이제 엑셀이 아닌 브레이크로 발을 옮긴다. “연극하면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집요하게 연습했어요. 그런데 급할 게 없더라고요. 정말 제대로 피고 싶고, 멋있게 지고 싶어요. 안 지면 더 좋겠지만. 하하.” 아직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보물들을 품고 있는, 언젠가 활짝 피어날 이희준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보고 싶다.
이희준│곁에 두고 오래 보는 사이
이희준│곁에 두고 오래 보는 사이
My name is 이희준.
1979년 6월 29일생.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의 공칠구를 귀엽게 표현한 이유는 완벽하고 빈틈없는 캐릭터에 흥미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빈틈에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아서 어떤 캐릭터든지 빈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송)새벽이의 장점도 그거다. 빈틈 있는 연기를 되게 잘하는 거. (웃음)
단막극을 다섯 편 하면서 즉흥성을 배웠다. 영화 촬영할 때는 머리가 천천히 돌아가는데 내일 드라마 촬영 들어간다, 그러면 잡생각 다 없애고 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급속도로 떠오른다. ‘큐피드 팩토리’ 오디션도 하루 만에 준비했다.
학교 다닐 때 얄미운 모범생이었다. 잘 노는데 공부도 잘하고. 중학교 때는 전교 4등까지 해봤고 고등학교 때도 전교 20등 정도 했다. 심지어 반장도 매년 했는데 사람 욕심이 많아서 반 친구들과 모두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 폭력서클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과도 친해지겠다며 일부러 당구까지 배웠다.
장남이라 부모님의 뜻대로 의대 진학이 목표였다. 아빠가 ‘너 티코 탈래? 그랜져 탈래? 의대 가면 그랜져 탈 수 있다’고 설득하셔서 아무 생각 없이 의대에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성적이 뚝 떨어져서 결국 영남대 화공과에 입학했다.
첫 연기는 아동극 에 3분 등장하는 바보왕자였다. 자스민 공주와 결혼을 약속한 알랄라워리워리세프리카 왕자였는데, 괴짜 같은 연출님이 왕자 이름에 맞는 제스처를 생각해 오라고 하셔서 막 율동도 만들었다. 관객 700명 중에 날 쳐다보는 애들이 거의 없었는데도 재밌었다.
그런데 사투리를 안 쓰고 연기하면 진한 인물이 안 나온다.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뭔가 가면을 쓴 것 같은 느낌? 아직 내 스스로 어색해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지금도 사투리를 고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생각이다.
새벽이는 故 박광정 선배 빈소에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 술을 많이 먹고 화장실에 갔다가 내 자리를 못 찾고 새벽이 옆자리에 앉았다. 그 전에 서로의 공연을 본 적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친구 먹었다. (웃음)
영화 을 함께 촬영한 주원이는 정말 예쁘게 생겼다. 둘이 액션신을 찍고 작은 봉고차 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주원이를 쳐다봤는데 너~무 예쁜 거다. 주원아, 너 진짜 예쁘다. 얼굴도 조그맣고. 형은 진짜 연기 죽어라 열심히 해야겠다. 하하하하.
옷을 잘 못 입는다. ‘완벽한 스파이’ 제작발표회 때도 새로 산 청바지에 새로 산 운동복 조끼, 예전에 만나던 친구가 골라 준 예쁜 점퍼를 입고 새로 산 워커까지 신고 갔는데, 기사에는 결국 ‘등산복’이라고 나왔다.
연애할 땐 나쁜 남자다. 이선균 형처럼 자상하고 유쾌하고 부드럽게 잘해주지만 보수적일 땐 엄청 단호하다. 난 영화관계자들 만나면 새벽까지 술 마시고 아침에 들어갈 수 있지만, 여자친구가 밤새 술 마시는 건 논리적으로는 공평하지만 본능적으로는 싫다. 내가 여자라면 나 같은 남자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결혼할 수 있는 마땅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혼자 제주도 여행 가서 지붕 위에 올라앉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가를 케어하고 한 집안의 가장이 될 수 있을까. 한예종 연극원 1학년 때 유치하게 만든 인생 플랜에는 30대 중반에 결혼이 있었는데…(웃음)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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