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세상 어디에도 없는 ‘구 남친’

결혼을 앞둔 여주인공의 옛 남자친구. 직업은 변호사. 입맛에 맞는 도시락을 고시원까지 싸들고 오던 여자 친구를 두고 바람을 피워 헤어졌건만, 자신에게 헌신적이던 여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시 찾아온 이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실실 웃으며 당당하게 말한다. “내가 찾아와도 언제든 넌 거부할 수 있어. 근데 너, 안 그러잖아”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이하 <우결수>)에서 이재원이 연기하는 전상진은 혜윤(정소민)과 정훈(성준)의 로맨스 언저리에 돌연 등장한 구(舊) 남자친구이자, 혜윤의 언니 혜진(정애연)의 이혼 소송 담당 변호사라는 애매한 입장에 서 있는 남자다. 하지만 이재원은 처음부터 이렇게 아무도 시선을 던지지 않을 것 같은 전상진의 사랑에 관심이 갔다. “사실 좀 서툴지만, 그 여자 잘 먹고 살라고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사랑을 하는 인물이 상진이에요. 순정적이거나 엄청나게 잘 해주는 남자는 아닌데,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찾는 사람이죠.”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의 녹용과 <우결수>의 상진의 얼굴에 ‘찌질’함과 ‘꿀리지 않음’의 상반된 표정을 천연덕스럽게 입혔다."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S10vIa1i31g3d2.jpg" width="555" height="185" align="top" border="0" />

배역을 지우고 다시 보면, 이재원은 ‘찌질’하다기 보다 앳되고,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순진하게 웃어버릴 것 같은 얼굴을 가졌다. 동시에 어디 가서 조금도 지지 않을 것 같이 야무진 눈빛을 던진다. 그가 <우결수>에 캐스팅된 계기였던 KBS <드라마스페셜-습지생태보고서>에서 그가 분한 녹용은 친구의 집에 얹혀 살며 취업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면서도 주인공 규석(성준)에게 여자와의 데이트 노하우를 알려주려 종이컵 밑동을 구겨 말며 와인 잔 드는 시늉을 한다.천연덕스럽기 그지없던 모습이 인상적이던 그가 전상진과 같이 ‘찌질’함과 ‘꿀리지 않음’이라는 상반된 모습을 모두 가진 역으로 돌아온 것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 <강철중: 공공의 적 1-1>을 시작으로, 영화 <아저씨>와 KBS <각시탈> 등에서 모두밉살스럽거나 까불대는 감초 역할을 이어서 해오는 동안 “육하원칙 중 다른 오하원칙들은 대본에 다 나와 있으니, 배우로서 이 비슷한 역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좀 더 초점을” 맞추며 조금씩다져 온 결실일 것이다.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배역 하나하나를 “이재원만의 무엇”으로 만들려 노력해 온이야기엔 마치 녹용이 손으로 구석구석 문지르며 만들어낸 종이 와인 잔처럼, 어설퍼보이지만 진득한 진심이 묻어난다.



스스로 “비디오 오타쿠”였다고 말할 정도로, 눈앞에 펼쳐지는 영화와 드라마의 세계를 탐닉하는 것에빠졌던 고등학교 시절, 이재원은 한 배우를 발견하면 그의 필모그래피를 처음부터 다 훑어서 보고 또 볼 정도로영화에 단단히 사로잡힌 소년이었다. 그리고 졸업반이 되어 진로를 선택해야했던 순간에 마침내 직접 그 세계로 나아가보겠다는 마음을 먹은 일은 마치 매일 먹는 밥에 다른 반찬을 한번 얹어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학구열이 유독 강한 대구 수성구의 학구 내에서 유일”하게 연극영화과 진학을 희망했던 그는 “내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주말마다 서울에 있는 아카데미에 다니며 진학을 준비했다. 주중에는 학교를, 주말에는 새벽마다 KTX를 타고 학원을 오가는 버거운 여정, 하지만 이재원은 “대구 촌놈이라 오히려 더 파이팅할 수 있었다”는 말로그 치열했던 시간을 요약한다.무언가에 집중하면 그대로 내달려버리는 성향이 그를 이 세계에 대해 공부하게 했고, 눈을 꽂은 채 바라봤던 1년 동안 알게 된 연기의 맛은 바쁘게 오고 가는 생활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준비하고 집중하도록 만든 뿌리가 된 것이다.

“고등어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이재원│세상 어디에도 없는 ‘구 남친’

이재원│세상 어디에도 없는 ‘구 남친’

확신이 드는 이야기를 할 때면 탄력 있게 목소리의 긴장을올리던 이재원은 트위터에썼던 “고등어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표현을 부연하며 입꼬리를 활짝 당겨 웃었다. “맛 기행 프로그램에서 고등어 특집 방송을 하더라고요. 값싸고 흔한 생선이라 쉽게 밥상 위에 올라오는 게 고등어잖아요. 그런데 그 맛은 정말… 먹을 때마다 고등어가 이렇게 맛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웃음) 순간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작품이 펼치는 이야기는 때로, 그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 차려지는 한 상 식사다. 거하게 차린 상이든 적은 가짓수의 찬으로 조촐하게 차린 상이든, 그 위에서 이재원이 있고 싶어 하는 자리는 처음엔 눈에 띄지 않지만 한 번 손이 가면 자꾸만 숟가락 위에 얹게 되는 고등어인 셈이다. 연기의 첫 숟가락 위에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얹고 싶어 하는 이 배우는 앞으로 또 어떤 맛에 흥미를 느끼게 될까. 무엇이 되었든, 이미 고등어의평범하지만 비범한 맛을 첫 번째로 삼았던 배우가 아닌가.그러니 이재원이요리해낼 고등어 반찬 한 접시를, 그리고 또 다른 맛의 무언가를 우리는 그저 군침을 삼키며 기다려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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