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영│뿌리깊은 지구력의 파수꾼
서준영│뿌리깊은 지구력의 파수꾼
“아, 좋다!” 사진촬영을 위해 놓인 의자에 몸을 깊게 묻은 서준영이 장소를 제대로 만났다는 듯 눈을 감고 미소를 띤다. 그제야 드라마의 빡빡한 촬영 스케줄에 시달렸던 그의 생체 리듬이 잠시 쉼표를 찍는다. 편안한 의자 하나만으로도 부드러운 미소가 절로 나올 정도로 서준영은 지난 한 해 유독 바빴다. 지난 해 영화 의 기태(이제훈)와 베키(박정민) 사이의 균열을 메우려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만들지만 결국 기태를 ‘친구’로 인정하는 단 한 사람, 동윤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SBS 에서 아버지인 이도(한석규)만큼 꼿꼿하고 명석했지만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던 광평대군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게다가 최근 KBS 일일드라마 에서 이름 그대로 씩씩하게 가족과 부대끼려 하는 기운찬 역할까지 소화하는 모습은 요행에 기대기 보다는 한결 같이 정진하는 배우의 꾸준한 지구력을 읽어낼 수 있다. 그래서다. “서준영이라는 이름은 안 떠도 상관없어요. 캐릭터가 남으면 그걸로 만족해요”라는 담담한 말에서 으레 나오는 신인의 겸손보다는 7년차 배우의 확신이 느껴지는 건.

“타협하며 연기하지 않았다”
서준영│뿌리깊은 지구력의 파수꾼
서준영│뿌리깊은 지구력의 파수꾼
시행과 착오를 반복해서 만들어진 신념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MBC 의 뮤직비디오에서 권상우의 아역으로 데뷔하고 3년 만에 KBS 의 주인공으로 단숨에 올라섰지만, “너 때문에 망했다”는 감독의 얘기를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준비가 없었다. 주목 받던 신인은 “들어오는 작품이라면 한 신이든 열 신이든 가리지 않”으며 다시 시작했고, 그를 스쳐갔던 수많은 캐릭터들은 몸 구석구석에 옅은 문신처럼 남아 현재의 서준영을 만들었다. “어려운 대사와 현장에서 씨름할 수 없어서 국어사전을 굉장히 많이 봤던” KBS 과 SBS 으로 대사를 완벽하게 숙지해야 말에 힘이 붙는다는 걸 깨달았고, 이는 의 광평대군이 가진 힘이 되었다. 그렇게 연기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가며 “연기할 때 느껴지는 마약 같은 한 순간”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또래 친구들보다 “연기자 선배들과 동료들, 그리고 스태프들과의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 됐고, “타협하며 연기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연기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래서 “마흔이 되고 오십이 되어서도 작품만 들어오면 계속 할 생각”이라는 이 배우에게는 아직 안락한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하고 싶지 않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답을 찾아가는 서준영의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싶기 때문이다.
서준영│뿌리깊은 지구력의 파수꾼
서준영│뿌리깊은 지구력의 파수꾼
My name is 서준영. MBC 에 삽입된 윤건의 ‘헤어지자고’ 뮤직비디오에서 권상우의 아역으로 데뷔했는데, 그때 극중 이름이 서준영이었다. 데뷔작에서 썼던 이름인데 역할을 잘했든 못했든 그 이름을 쓰자고 했다. 또 사주를 봤는데 나와 잘 맞는 이름이라고 하고. 하하.
1987년 4월 24일에 태어났다.
연기하기 잘했구나 싶을 때는 가족들이 즐거워 할 때다. 나는 우리 가족이 영순위다. 그러다보니 19살에 에 출연 할 때부터 내가 집에 들어갔을 때 맞아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무래도 결혼을 늦게 할 것 같다. 지금 이렇게 바쁜데!
때는 대본을 보지 않고 현장에 와서 연기했다. 윤성현 감독님은 치기어린 고등학생의 성장을 보여주는 독립영화 에서 연기했던 주인공 태훈과 나 사이에서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를 찍었는데 너무 힘들게 느껴지는 거다. 연기할 때 힘을 빼는 것도 어렵지만, 또 다시 힘주기는 더 어려웠다. 그래서 윤성현 감독님한테 책임지라고 했다. 도대체 이 뭐기에 드라마도 못 찍게 하냐고. 하하.
날라리 반장이 별명이었다. 성적은 중상위권이면서 선생님 말은 잘 안 듣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폈는데, 선생님께 “저 담배 핍니다. 근데 학교에서는 담배 안 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애들은 미쳤다고 했지. 그리고 중앙고등학교 동아리 연합회장도 했는데, 뽑히고 나서 학교를 한 번도 안 나갔다. 물론 축제 때는 즐기러 가고. 하하.
예산을 더 받아낸 적도 있었다. 원래 소신이 뚜렷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한테 “해 주세요”가 아니라 왜 해 줘야 하는지 근거를 대야 한다고 배웠다. 학교 다닐 때 예산 더 달라고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해서 선생님께 내미니까 검토 하실 수밖에 없었을 거다. 어쨌든 할 일은 다 했다. 하하
트위터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한다. 혹자는 이걸 팬서비스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주위에 사람들이라고는 스태프들이 전부다 보니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호기심이 많다. 쉬는 시간에 트위터 보면서 사람들하고 대화하면 재밌다.
때는 “나 주인공이야” 하고 다녔다. 그게 아님을 느끼고 와장창 무너졌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열심히 안 했던 것 같다. 연예인이라고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연기를 겉 멋 들어서 했던 거지. 최근에 다시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오그라들고 미치겠더라.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싶다. 하하
택배나 PC방 아르바이트도 하고, 별걸 다 해봤다. 먹고 사는 문제 아닌가. 3년 전에 MBC 찍을 때였지만 뭐 세상 살면서 힘들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겠냐. 배우들이 보기엔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보이는 부분에 돈을 많이 쓰고, 스태프들과 나눠 가지다보면 남들 월급 받는 수준이지.
4~5평짜리 구제 옷가게를 운영한 적 있다. 1200만 원 갖고 친구와 시작한 소자본 창업이었는데, 옥션이나 11번가에도 우리 물건을 올려놓고 팔았다. 밤에 청계천에서 물건 떼다가 팔았는데 나름대로 장사 잘됐다. 물건이 정말 좋았거든. 하하하! 그 때가 찍을 때였는데, 그 이후로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다.
일일연속극인 를 꼭 하려고 했던 이유는 할머니 때문이었다. 지금 몸이 좋지 않으신데 매일 손자 얼굴 보시면 6개월은 더 사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애 늙은이 같다’, ‘연기 20년은 한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철이 빨리 들었다. 지금 아역배우들 보면 어른처럼 말하는데 아마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사실 ‘나도 앤데’ 이런 생각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 늙은이면 또 어때.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