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JTBC ‘바람이 분다’ 방송화면.
JTBC ‘바람이 분다’ 방송화면.
남자는 또렷한 눈빛으로 “많이 힘들었겠다. 사랑한다”고 말하더니 금세 초점 잃은 시선으로 바뀌었다. 여자는 “가지말라”고 애원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16일 종영한 JTBC 월화드라마 ‘바람이 분다'(극본 황주하, 연출 정정화)의 한 장면이다.

‘바람이 분다’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며 막을 내렸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권도훈(감우성 분)의 곁에는 아내 이수진(김하늘 분)과 딸 아람(홍제이 분)이 있었다. 수진은 도훈에게 “내가 늘 옆에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며 응원했고, 아람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빠를 지켰다. 도훈은 소중한 기억을 하나둘씩 잃어갔지만 수진과 아람을 비롯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기억했고, 그럼으로써 도훈은 살아갈 수 있었다.

JTBC ‘바람이 분다’ 방송화면.
JTBC ‘바람이 분다’ 방송화면.
◆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

‘바람이 분다’의 마지막 회 부제는 ‘우리한텐 남들보다 시간이 훨씬 소중하니까’였다. 이는 수진이 도훈에게 한 말이다. 도훈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은 수진은 사람이 북적이는 곳과 낯선 환경에 도훈을 데려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람의 유치원에서 마련한 ‘아빠의 날’ 행사도 도훈 대신 남동생에게 부탁했다. “아빠가 온다고 약속했다”며 조르는 아람을 “아빠는 아파서 못 간다”고 조심스럽게 달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수진은 깨달았다. 피하고 숨길 시간이 없다는 걸 느끼면서 “내가 지나치게 겁을 먹은 것 같다”고 인정했다. 도훈과 함께하는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 그는 ‘아빠의 날’ 행사에 도훈의 손을 잡고 갔다. 아람도 아빠를 살뜰히 챙기며 즐거워했다. 시간의 소중함이 두려움을 이긴 것이다.

이후 수진은 도훈에게 “모두 다 같이 하자”고 했고, 세 사람은 바닷가로 여행도 떠났다. 비록 도훈의 상태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수진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촛불을 켠 채 둘러앉은 도훈과 수진, 아람은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이들의 환한 웃음은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들었다.

일부 드라마가 마지막 회에서 갈등을 급하게 봉합하고 뻔한 해피엔딩으로 시청자들의 반감을 샀다면, ‘바람이 분다’의 결말은 첫 회와 마찬가지로 자극적이지 않게 등장인물의 소소한 행복을 잘 풀어냈다.

도훈을 잘 돌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수진은 도훈이 만든 ‘루미 초콜릿’을 되찾기 위해 애를 썼다. 변호사 문경훈(김영재 분)의 도움을 받아 루미 초콜릿을 출시한 유명 제과와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되찾은 루미 초콜릿의 재출시가 결정됐고, 수진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인들을 불러 파티를 열었다.

JTBC ‘바람이 분다’ 방송화면.
JTBC ‘바람이 분다’ 방송화면.
◆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수진”

내내 잔잔하게 흘러간 ‘바람이 분다’의 마지막 회. 백미는 잠깐 기억이 돌아온 도훈이 수진을 걱정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도훈은 자신에게 약을 건네는 수진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고, 수진은 도훈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걸 알고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놀랐다. 도훈은 “당연히 알지.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수진”이라고 답했다. 수진의 울음은 터졌고, “놀라고 힘들었겠다”는 도훈의 말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도훈의 기억은 다시 달아나버렸다. 순식간에 초점이 흐려진 도훈의 눈을 본 수진은 “가면 안 된다. 가지 말라”며 도훈을 끌어안았다. 힘들지 않다고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얼마나 마음이 괴롭고 아팠을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배우들의 열연이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특히 감우성은 첫 회부터 마지막까지 도훈 그 자체로 살았다. 단숨에 눈빛의 초점을 흐리며 치매 증상을 보이는 연기는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하고 같이 눈물 흘리게 했다.

도훈은 서서히 기억이 사라지면서 잘 웃지 않아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반면 어린아이같이 행동할 때는 가엾고 불쌍하게 여겨졌다. 기억을 잃은 도훈과 그렇지 않은 도훈, 두 사람을 연기한 감우성은 과장하지 않고 몸짓과 표정 하나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김하늘 역시 ‘멜로 퀸’이란 애칭을 제대로 입증했다. 발랄한 매력을 앞세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눈물 마를 날 없는 러브 스토리를 통해 “역시 김하늘”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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