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tvN ‘미스터 션샤인’ 방송화면 캡처
tvN ‘미스터 션샤인’ 방송화면 캡처
“눈부신 날이었다. 우리 모두는 불꽃이었고, 뜨겁게 피고 졌다. 그리고 또 다시 타오르려고 한다. 동지들이 남긴 불씨로. 잘 가요, 동지들. 독립된 조국에서 씨 유 어게인(See You Again).”

살아남은 김태리가 조국을 위해 의로운 죽음을 맞은 동지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이들은 떠나고 없지만, 그는 여전히 나라를 위해 의병들 앞에서 목소리를 힘껏 높였다.

지난달 30일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극본 김은숙, 연출 이응복)이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의병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이 드라마는 마지막까지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들을 돋보이게 했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국을 위해 나섰다. 비록 과정은 처참하고 안타까웠지만, 정의로웠다. 황은산(김갑수)이 이끄는 조선 의병들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는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팀을 나눠 작전을 이어가며 오직 나라를 위해 지치지 않고 움직였다.

한 차례 적을 소탕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 찰나, 거대한 규모의 일본군에게 에워싸였다. 은산은 당황했지만 천천히 상황을 살폈고, 한 의병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은산은 결심한 듯 “화려한 날만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질 것도 알고, 이런 무기로 오래 못 버틸 것도 알지만 우리는 싸워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싸워서 알려줘야지”라며 “우리가 여기 있었고, 두려웠지만 끝까지 싸웠다”고 강조했다.

“진격하라”는 은산의 외침에 의병들은 태극기를 펄럭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조국을 위한 의로운 움직임, 그 결연한 자세는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tvN ‘미스터 션샤인’ 방송화면 캡처
tvN ‘미스터 션샤인’ 방송화면 캡처
◆ “잘가요, 동지들”

고애신(김태리)이 학당에서 처음 배운 영어 단어는 ‘건(Gun)’ ‘글로리(Glory)’ ‘새드 엔딩(Sad ending)’이었다. 마치 앞날을 알려주듯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은 모두를 슬프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애신을 딸처럼 보살핀 함안댁(이정은)과 행랑아범(신정근)의 죽음을 시작으로, 무신회 낭인들을 온몸으로 막아서다 처참한 최후를 맞은 구동매(유연석), 일본군에 잡혀 잔혹하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의병 명단을 넘기지 않은 김희성(변요한)의 모습이 차례로 흘렀다.

유진 초이(이병헌)는 마지막 순간까지 애신의 손을 잡았다. 위장해 평양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 애신과 의병들. 여기에 유진도 동참했다. 일본군에게 정체가 들킨 애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일본군을 막아선 유진은 단 한 발 남은 총으로 기차 칸을 분리시키며 서서히 멀어졌다. 애신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유진은 끝까지 버티다 힘없이 쓰러졌다. 이방인이었지만 생애 마지막은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조국을 위해 바쳤다.

죽음을 맞기 전 유진과 동매, 희성은 잔을 높이 들었다. 희성은 “동무들이여, 건배”라고 외쳤고 유진과 동매도 전과 다르게 환하게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이후 유진의 내레이션이 마음을 울렸다.

그는 “각자 걷고 있지만 결국 같은 곳에 다다를 운명이었다. 우리의 걸음은 우리를 퍽 닮았다. 유서를 대신한 호외와 남은 생만큼 타들어가는 아편, 이방인에게 쥐어진 태극기를 들고 우리가 도착할 종착지는 영광과 새드엔딩 그 사이 어디쯤일 것이다. 멈출 방법을 몰랐거나, 멈출 이유가 없었거나 어쩌면 애국심이었을 지도. 없던 우정도 싹튼 뜨거운 여름밤이었다”고 했다.

유진은 애신과 작별하면서도 “그대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소풍이었다. 참 많이 사랑했다”고 털어놨다. 담담한 그의 목소리가 더 큰 울림을 선사했다.

tvN ‘미스터 션샤인’ 방송화면 캡처
tvN ‘미스터 션샤인’ 방송화면 캡처
◆ 모든 배우가 눈부셨다

‘미스터 션샤인’은 시작부터 주목받은 작품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도깨비’를 연달아 히트시킨 김은숙 작가의 산작인데다, 이병헌이 오랜만에 안방극장 나들이에 나서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데뷔 후 처음 드라마에 출연하는 김태리를 비롯해 빼어난 연기력을 갖춘 여러 연기자들도 기대에 한몫했다.

김은숙 작가는 지금까지 일상의 소재로 무겁지 않은 사랑 이야기 혹은 유쾌한 판타지로 인기를 얻었는데 이번엔 배경도, 주인공도 모두 의미심장했다. 신미양요(1871년)로 극의 문을 열고, 미국 군인 신분으로 조선에 돌아온 노비 출신 사내의 생애를 다뤘다. 이 과정에서 모진 시대 상황을 꼼꼼하게 비추고 나라를 위해 이름 없는 의병으로 싸우는 이들의 존재를 알렸다.

소재는 무거웠지만 김은숙 작가 특유의 재기 발랄한 대사는 언제나 극에 활력소가 됐다. 엄중하면서도 유쾌하게 극을 끌어오다 후반부로 갈수록 전하려는 메시지를 담아내려고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개연성, 복선 등 짜임새 있는 구성이 작품 전체의 격을 높였다. 결말을 위해 주인공들의 말 한마디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은 작가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대사의 맛을 제대로 살린 배우들의 열연도 ‘미스터 션샤인’의 백미다. 일부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두고 ‘연기 교본’이라고 불렀고,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만 등장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였다. 크고 작은 역할을 맡은 모든 배우들이 눈부셨고, 24부작이라는 대장정을 이끄는 힘이었다.

이병헌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묵직한 카리스마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김태리도 첫 드라마였지만 대성공을 거뒀다. 유연석은 이전 작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매회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변요한 역시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시청자들에게 일본인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 김남희와 웃고 울리며 극을 쥐었다 폈다 한 신정근과 이정은, 이승준, 김병철, 배정남, 조우진까지. 이들 덕분에 ‘미스터 션샤인’의 모든 순간이 빛났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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