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우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TV 속 혼술을 즐기는 캐릭터들이 곧 시청자의 술친구가 됐다. 평균 시청률 4%대를 기록하며(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올 가을 안방극장을 제대로 접수한 tvN ‘혼술남녀’는 노량진 학원가를 배경으로 스타 강사부터 신입 강사, 또 공시생들의 고된 하루를 조명하며, 저마다의 애환을 가진 인물들이 혼술로 위로 받는 모습을 담아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우리’와 꼭 닮았기에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혼술남녀’ 인기의 일등공신 캐릭터들을 탐구했다.

‘혼술남녀’ 민진웅 / 사진제공=tvN 방송화면
‘혼술남녀’ 민진웅 / 사진제공=tvN 방송화면
◆ “엄마가 찾으실 때 달려갔으면”

민진웅(민진웅)은 ‘혼술남녀’의 웃음을 책임지는 인간 복사기다. 이병헌, 이제훈, 류승범 등 인기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를 흉내 내 웃음을 자아낸 것. 그가 성대모사의 왕을 자처한 것은, 지루한 행정학 강의에 학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항상 밝은 민진웅의 이면에도 슬픈 사연이 있었다. 강의 도중 모친상을 당한 것. 바로 직전 요양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강의 핑계로 수차례 거절했기에 아픔이 더 컸다. “아내가 기다린다”며 퇴근 시간을 칼 같이 지켰던 민진웅은 아내와 이혼하고 치매를 앓아온 모친을 수발한 효자였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민진웅은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안쓰러워하는 동료 강사 박하나(박하선)에게 “이야기해서 무엇 하냐”며 태연한 척 했으나, 이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엄마가 찾으실 때 달려갔으면 우리 엄마 혼자 그렇게 외롭게 보내지 않았을텐데. 손 잡아 주는 사람도 없이 외롭게 가시지 않았을텐데”라며 후회하는 민진웅의 모습에서 어머니에 대한 지극정성의 사랑,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에 치어 소홀할 수밖에 없는 자식의 죄책감이 그대로 드러나 시청자들을 울렸다.

‘혼술남녀’ 샤이니 키, 다이아 정채연 / 사진제공=tvN 방송화면
‘혼술남녀’ 샤이니 키, 다이아 정채연 / 사진제공=tvN 방송화면
◆ “예쁘네”

‘금수저 공시생’ 기범(샤이니 키)은 ‘노량진 핵미모’ 정채연과 둘도 없는 앙숙이다. 노량진의 모든 남자가 감탄하는 정채연의 미모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노량진 핵 비호감’이라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 그러나 이 뒤에도 짠내를 풍기는 사연이 있다.

채연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날 버린 정채연을 저주한다’는 제목과 함께 자신의 몰래카메라가 올라오자 범인으로 기범을 의심한다. 기범이 1년 전 채연에게 연애편지를 전달했다가 심하게 차인 주인공이었던 것. 당시 채연은 기범의 연애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고, 누군가 이 편지를 주워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편지의 맞춤법이 엉망이었기 때문.

범인은 기범이 아니었다. 비록 단번에 차였지만, 기범의 짝사랑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기범은 이후에도 채연의 몰래카메라를 보는 학생들에게 물을 뿌리는 등 남몰래 채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 채연이 자신의 단짝 친구 공명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면서 붙어 다니자 “나는 내 친구와 멀어지기 싫다”며 둘 사이를 방해하는 등 귀여운 질투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채연이 화장한 모습을 발견하고 “치킨 먹었냐. 왜 이렇게 기름이 흐르냐”고 놀리더니, 채연이 화가 나 강의실로 들어가자 “예쁘네”라고 혼잣말을 해 애틋한 짝사랑을 드러냈다.

‘혼술남녀’ 김동영, 하연수 / 사진제공=tvN 방송화면
‘혼술남녀’ 김동영, 하연수 / 사진제공=tvN 방송화면
◆ “진작에 놓아주지 못해 미안해”

‘혼술남녀’의 짠내 캐릭터 1위는 단연 동영(김동영)이다. 동영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무원 시험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공부에만 매진해도 모자랄 시간에 돈까지 벌어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동영이 지내는 곳은 화장실도 없는 한 칸짜리 고시원 방이다.

설상가상으로 시험에서 번번이 미끄러져 여자 친구 주연(하연수)에게도 차였다. 연애 5년차, 미래가 보이지 않는 동영을 반대한 부모님 탓에 주연이 이별 통보 문자 메시지를 보내자 동영은 “진작 놓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답장을 보내고 술을 마시며 이별의 아픔을 달랬다.

친구 기범은 동영을 “궁상”이라고 부른다. 동영의 트레이드마크인 ‘발로차’ 티셔츠는 대학교 동아리 단체복이며, 지갑은 다 낡아 실밥이 터졌고 오래 전 기종의 휴대전화를 쓰고 있다. 기범이 먹다 남은 도시락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동영을 보며 마냥 웃을 수 없는 것은, 가족과 떨어져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자취생들에게 이런 궁상이 남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 동영의 책상에서 발견된 “본심이 아니라 주위 시선을 의식해 보는 공무원시험이 외롭다”는 내용의 유서가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동영의 유서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으나, 변함없는 동영의 ‘궁상’은 ‘혼술남녀’의 웃음 포인트인 동시에 또 다른 공감 포인트로 작용한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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