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왕가네 식구들’(위쪽), MBC ‘오로라 공주’ 포스터
KBS2 ‘왕가네 식구들’(위쪽), MBC ‘오로라 공주’ 포스터
KBS2 ‘왕가네 식구들’(위쪽), MBC ‘오로라 공주’ 포스터

이토록 뜨거웠던 순간은 오랜만이다. 지난 16일 종방한 KBS2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이하 ‘왕가네’)는 50%(닐슨 코리아 기준)에 육박하는 전국시청률을 기록하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뜨거웠던 시청률만큼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왕가네’가 가족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대가족 이야기를 줄기로 불륜, 얽히고설킨 가족 관계 등 문영남 작가가 그려낸 세계는 기존의 주말드라마 문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대중은 ‘왕가네’가 ‘막장드라마’인지 아닌지를 놓고 입장 차를 보였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드라마가 한 편 더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종방한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이하 ‘오로라’)가 바로 그것. ‘오로라’는 총 11명의 배우가 도중 하차하는 등 드라마와 현실을 오가는 막장 공식을 충실히 따랐건만 최종회가 20.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욕하면서도 보게 된다’는 막장드라마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했다. ‘왕가네’ 이야기를 하다 ‘오로라’를 꺼내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왕가네’와 ‘오로라’에는 ‘가족드라마 흥행 공식’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이 숨어 있는 걸까. 높은 시청률부터 막장 논란까지 유사한 행보를 거쳐 온 두 드라마의 작가, ‘왕가네’의 문영남 작가와 ‘오로라’의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문법을 파헤쳐 봤다.

# 캐릭터 중심의 ‘왕가네’ vs 이야기 중심의 ‘오로라’

KBS2 ‘왕가네 식구들’ 방송 화면 캡처
KBS2 ‘왕가네 식구들’ 방송 화면 캡처
KBS2 ‘왕가네 식구들’ 방송 화면 캡처

‘왕가네’: ‘왕가네’의 가장 큰 특징은 눈에 잡힐 듯이 선명한 캐릭터에 있다. ‘소문난 칠공주’, ‘조강지처 클럽’, ‘폼나게 살거야’ 등 가족극을 주로 다뤄온 문영남 작가는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는 색깔이 분명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는 등장인물 작명법에서도 두드러진다. 문영남 작가의 작명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능주의’라고 할 수 있다. ‘수상한 삼형제’ 속 경찰 이름은 ‘김순경’, 반찬가게 주인은 ‘반찬순’, 기러기 아빠는 ‘길억’이었고, ‘왕가네’에서도 왕봉, 이앙금, 왕수박, 왕호박, 왕광박, 허세달, 최상남 등 다수 캐릭터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들의 성격과 삶 또한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올곧게 이름을 따라갔다.

색이 분명한 캐릭터는 시청자의 몰입으로 이어졌다.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게 캐릭터가 나름의 정당성을 갖도록 하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 분명하겠지만, 대체로 시청자들은 자신이 공감 혹은 반감을 느끼는 인물에 몰입해 드라마를 보게 된다. 이름과 캐릭터에 따라 반전 없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인물들을 보며 시청자는 모종의 쾌감마저 느끼게 된다. 잘 짜인 판 안에서 마치 RPG(Role-Playing Game, 역할 수행 게임) 게임을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 ‘왕가네’의 인기 요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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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왕가네’와 달리 ‘오로라’는 캐릭터보다는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과 전달에 중점을 둔다. 임성한 작가 또한 ‘보석비빔밥’ 속 궁상식, 피혜자, 결명자 등 캐릭터로 남다른 작명 센스를 발휘하지만, 드라마 자체에 인물이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이는 ‘오로라’ 속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총 11명의 배우의 ‘도중 하차’는 작품이 몇몇 인물들의 명확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구성됐다면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일이었을 터. 노이즈 마케팅에 가까운 논란 덕분에 ‘오로라’는 ‘서바이벌 드라마’ 등 막장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지만, 시청자들은 끝까지 리모컨을 놓지 못했다. 되레 ‘오로라’를 통해 임성한 작가의 팬이 됐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 이야기 자체가 전달하는 힘의 크기가 대단하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 ‘왕가네’에 메시지는 있다? vs ‘오로라 공주’는 메시지보다 재미?

‘왕가네’: ‘왕가네’가 기존 주말드라마와 차별화한 지점은 이미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소재가 돼버린 ‘시월드’가 아닌 ‘처월드’를 다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왕가네’는 연어족, 캥거루족, 청년 백수 등 현실 세계에는 만연하지만, 드라마에서 다루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소재들을 대거 작품에 녹여내며 대중과의 접점을 찾았다.

그 메시지는 충분히 잘 전달됐을까. 공교롭게도 그 질문에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드라마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처럼 현상 분석과 해결책 제시에 천착할 필요는 없음에도 ‘왕가네’는 이에 대한 책임의식을 내려놓지 못한다.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부담감은 드라마 곳곳에 무리한 설정과 일차원적인 이상론으로 표현돼 빈축을 샀다. 최상남의 ‘중졸 고백’과 청년 백수에 대한 논의, 고민중이 보여주는 ‘땀 흘려 일하는 삶의 가치’는 듣기에는 좋지만, 오히려 작품에 현실감을 떨어뜨린다는 평이 주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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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오로라 공주’ 방송 화면 캡처
MBC ‘오로라 공주’ 방송 화면 캡처
MBC ‘오로라 공주’ 방송 화면 캡처

‘오로라’: 반면 문제의식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은 ‘오로라’는 운신의 폭이 더 넓어졌다. 임성한 작가는 전작 ‘신기생뎐’에서 선보인 눈 레이저, 혼령 등장, 유체이탈 등의 파격적인(하지만 임성한 작가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를 극에 녹여내는 한편 ‘오로라’에서는 이를 넘어 등장인물의 급사, 갑작스러운 암 완치, 동성애자의 이성애자로의 변신 등 다시 한 번 막장 드라마에 한 획을 그었다.

물론 방송을 통해 현실의 무게감을 잊기 위한 재미와 감동을 찾는 시청자도 있을 테지만, ‘오로라’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개연성 없는 드라마 ‘오로라’는 ‘임성한 작가는 무책임하다’는 반응까지 불러왔다. 급기야 ‘오로라’ 후반부에 임성한 작가 퇴출 성명운동까지 전개된 것을 보면, 사실 ‘오로라’의 문제는 단순히 메시지의 부재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 보고 싶은 걸 보여준다, ‘왕가네’ vs 누가 뭐래도 ‘마이 웨이’, ‘오로라 공주’

KBS2 ‘왕가네 식구들’ 방송 화면 캡처
KBS2 ‘왕가네 식구들’ 방송 화면 캡처
KBS2 ‘왕가네 식구들’ 방송 화면 캡처

‘왕가네’: 며느리 오디션, 불륜 등 막장 논란이 예상되는 소재가 대거 등장함에도 ‘왕가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호전적으로 돌변하지 않은 데는 문영남 작가의 ‘열린 귀’가 큰 몫을 했다. 일찍이 문영남 작가는 “드라마 전개에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의중을 전달한 바 있다. 최초에 그려낸 작품의 세계에 집착하기보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점을 찾아가는 집필 방식은 ‘왕가네’를 향한 반응을 공분과 화제성의 경계 언저리에 머물게 했다.

권선징악적 요소가 강하다는 것도 ‘왕가네’의 특징이다. ‘왕가네’ 초중반에는 ‘울화통 캐릭터’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이앙금(김해숙), 왕수박(오현경), 허세달(오만석)에 대한 공분을 극으로 치달았지만, 후반부에 잘못을 뉘우치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짜릿한 쾌감마저 느껴진다. 대중의 감정을 당겼다 푸는 능력이 가히 ‘밀당의 달인’이라 부를 만하다. 다만 벌여 놓은 판을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긴급하게 ‘대가족의 화합’이라는 메시지 안으로 봉합하는 전개는 ‘뻔한 가족드라마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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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단번에 완성된 작품을 공개하는 다른 장르와 달리 드라마는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는 장점 혹은 단점이 있다. 분명 작품 집필과 이야기 구성은 작가의 고유 영역이지만, 임성한 작가가 극에 치달은 대중의 이야기에 한 번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출연 배우들의 연이은 하차와 드라마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자 임성한 작가는 ‘오로라’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그간의 논란을 해명하는 글을 올렸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임성한 작가 평소 제작발표회 등 공식석상에 불참하는 것은 물론, 드라마 출연 배우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않는 등 신비주의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오로라’에는 독으로 작용했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KBS2 ‘왕가네 식구들’, MBC ‘오로라 공주’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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