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유나의 듣보드뽀》

'설강화' 역사 논란 재점화
제작진 "역사왜곡 없다" 호언장담하더니
간첩 미화+민주화 운동 폄훼 '적나라'
방영 중지 청원 20만명 돌파
'설강화' 메인 포스터./사진제공=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JTBC스튜디오
'설강화' 메인 포스터./사진제공=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JTBC스튜디오


《태유나의 듣보드뽀》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가 현장에서 듣고 본 사실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면면을 제대로 뽀개드립니다. 수많은 채널에서 쏟아지는 드라마 홍수 시대에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되겠습니다.
'설강화' 역사왜곡 논란 재점화, 방영 중단 청원에 불매 운동까지

모든 인물과 설정은 '가상'이므로 역사왜곡 문제는 전혀 없다고 호언장담한 '설강화'. 그러나 간첩을 운동권 학생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과거 진짜 간첩이 운동권 학생인 척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악명 높은 안기부를 인간적인 느낌이 드는 조직처럼 묘사한 게 역사 왜곡이 아니면 무엇일까. '가상 역사'로 논란을 피하기에는 간첩 미화와 민주화 운동 폄훼가 너무 적나라하다.

지난 18일 첫 방송된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snowdrop'(이하 '설강화')는 방송 전부터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지난 3월 유출된 시놉시스와 인물 소개 속 운동권 학생인 줄 알았던 남자 주인공이 알고 보니 남파 무장간첩이었고, 여자 주인공의 조력자로 '대쪽같은 성격'의 안기부 직원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이는 당시 SBS '조선구마사'가 조선 건국과 왕을 왜곡하고 비하했다는 논란과 함께 2회 만에 방영 폐지된 것과 맞물려 더욱 비판받았다.

이에 제작진은 "억측"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했고, 제작발표회에서 연출을 맡은 조현탁 감독은 "문구 몇 개가 유출되고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조합을 이뤄 받아들이기 힘든 말들이 퍼지고, 기정사실로 되고 기사화됐다"며 억울하다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설강화'는 단순히 가상의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역사왜곡 꼬리표 과하다고?"…'설강화'의 오만함,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TEN스타필드]
그러나 제작진의 자신감과 다르게 '설강화' 논란은 방송 후 더욱 거세졌다. 은영로(지수 분)는 간첩인 임수호(정해인 분)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운동권으로 오인해 구해줬다. 자신의 오빠가 데모하다 잡혀간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이어 호수여대에 몰래 숨어들어온 임수호를 숨겨주고, 지극정성으로 치료했다. 임수호가 북한과 접선하기 위해 들어야 하는 라디오 배터리도 손수 구해주고 말이다. 그 시절 근거 없이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하고 사망한 운동권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이런 내용은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임수호의 '재독교포 출신 명문대 대학원생'이라는 설정은 '동백림 간첩 조작 사건'을 연상케 한다. 당시 중정은 서유럽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과 유학생 가운데 194명이 동베를린 북한대사관에 들어가 간첩 활동을 했다고 발표했고, 이들을 한국으로 납치해 고문했으나 대법원이 단 한 명도 간첩죄를 인정하지 않은 사태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간첩 조작 사건으로 불린다.
"역사왜곡 꼬리표 과하다고?"…'설강화'의 오만함,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TEN스타필드]
또한 1회에서 정체가 발각된 임수호가 도망가고, 안기부 팀장 이강무(장승조 분)가 쫓아갈 때 민주화 운동 현장을 같이 보여주며 이들이 부르는 '솔아 푸르른 솔아'가 흘러나온다. 민주화 운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승리를 역설하는 이 노래를 안기부와 간첩을 연기하는 사람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해야만 했을까. 2회 오프닝에서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까지 말이다.

일각에서는 고작 간첩이 운동권 행세를 했다는 설정으로 역사 왜곡까지 운운하는 건 과하다고 말한다. 과거 수많은 간첩 소재의 영화가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용인됐기에 현재도 용인해야 할까. 세계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의 위상이 커진 만큼, 한국의 역사·문화 등이 왜곡된 방식으로 인식될 소지를 없애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역사왜곡 꼬리표 과하다고?"…'설강화'의 오만함,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TEN스타필드]
이에 대중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영 폐지를 요청한 국민청원은 20일 오전 6시 기준 23만 명을 돌파했고, 드라마 제작 지원에 참여한 기업들에 대한 불매 운동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설강화' 광고·협찬사들은 줄줄이 중단되고 있다.

'설강화'는 남자 주인공을 진짜 간첩으로 설정해놓고 로맨스 드라마를 찍는다는 설정부터가 오류였다. 그렇기에 논란이 불거지고 첫 방송이 시작될 때까지 7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변한 게 없는 거다. 이들이 결국 선택한 건 귀 막고 입 닫고 밀고 나가는 것. 방송을 보면 알 거라던 '설강화'의 오만함이 대중의 분노를 키웠다.

태유나 텐아시아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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