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습하고 춥기까지 한 공간 구석에 긴 머리카락의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서있다. MBC <혼>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던, 그래서 악인들에게 복수하던 귀신 두나(지연)다. 하지만 무섭지 않다. 카메라 프레임 바깥에서의 그녀는 그저 대장금 테마파크 실내 세트장에서 자기 촬영 차례를 기다리는 신인 연기자 지연이기 때문이다. 모든 드라마 촬영 현장이 그렇듯 <혼>의 현장 역시 두 가지 세상으로 분류된다. 브라운관에 담길 프레임 안의 세상과 그 바깥세상. 김상호 감독이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에서는 동생에 이어 엄마(김성령)까지 저 세상으로 보낸 하나(임주은)가 프레임 안에서 설움에 겨워 울고 있다.

드라마 등장인물의 희로애락과 화면 바깥의 간극을 확인하는 일은 말 그대로 ‘깨는’ 경험이지만 그만큼 흥미롭기도 하다. 하나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엄마의 영혼이 하나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사라지는 신을 모니터하던 김상호 감독이 컷을 외치며 말한다. “아유, 엄마. 빨리 사라져, 뛰어가.” 냉혈한 같으니. 하지만 원하는 장면은 그리 쉽게 나오진 않는다. 이번엔 임주은의 실수다. “엄마가 사라지면 쓰러져야지!” 김상호 감독의 지적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임주은은 “엄마 언제 사라졌어?”라며 갸우뚱한다. 하지만 최고의 ‘깨는’ 장면은 스태프를 통해 나왔으니, 하나와 두나, 엄마의 행복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세 개의 찻잔과 과자 접시를 치우며 한 스태프가 다른 스태프에게 당부한다. “아직 먹지 마. 한 번 더 찍을지 몰라.” 그렇다. 풍부한 감성으로 가득 찬 프레임 속 세상을 위해 그 바깥에선 수많은 통제와 자제가 필요한 곳, 그곳이 바로 드라마 현장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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