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가수들의 컴백과 함께 음악 프로그램도 다시 중흥기를 맞았다. 이효리와 엄정화가 한 무대에 오르더니, 1위 후보 무대에선 비와 동방신기가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어찌 채널을 고정시키지 않을 수가 있을까. 여기에 가수 혹은 연기자들의 공연과 토크를 동시에 선보일 수 있는 <수요예술무대>류의 새로운 프로그램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진행자와 이름을 바꾸고 좀더 말랑해진 KBS <이하나의 페퍼민트>와 라디오 스타팀이 정통 음악프로임을 전면에 내세운 MBC <음악여행 라라라>가 그 중심에 있다. <이하나의 페퍼민트>가 ‘홍대 소녀’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제 방에 초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라면 <음악여행 라라라>는 올드팝과 서정 발라드의 시대를 산 아저씨들의 현재진행형 버라이어티쇼 같다.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분위기도, 출연자들을 대하는 방식도 너무 다른 두 프로그램을 <10 매거진> 위근우 기자와 조지영 TV평론가가 말한다. /편집자주

MBC 새 음악프로그램 <음악여행 라라라>(이하 <라라라>)의 기획은 마치 농담처럼 느껴진다.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서 스스로 ‘고품격’임을 줄기차게 주장하면서도 음악과는 상관없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고품격’이라는 어휘의 엄숙주의를 조롱하던 네 명의 MC가 진짜 고품격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농담 같은 상황.

유독 이승열이나 장기하, 넬처럼 일반 예능이나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얼굴이 자주 등장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이처럼 어깨에 힘을 뺀 가벼운 설정은 게스트와 시청자의 소통이 좀 더 원활해지는 장치가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이들 MC는 1회 이승열 편에서는 “아들이 <보노보노>를 좋아한다”(김구라), “(유퉁의) 국밥이 떠오른다”(신정환)는 농담으로 U2의 보노와 이승열과의 음악적 유사성에 대한 대화의 맥을 끊고, 3회 장기하 편에 출연한 김C가 홍대를 기반으로 한 인디 신의 역할에 대해 얘기할 땐 “홍대에서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는 김C의 얘기를 들었다”(신정환)는 말로 김C의 문제의식 자체를 가볍게 휘발시켜버렸다.

뮤지션을 대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런 산만한 토크 방식은 ‘라디오 스타’에서처럼 게스트의 리액션을 유도하고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의외의 면모들을 확인하기에 효과적이지만 음악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파고드는 데는 방해가 된다. 상대방이 반격에 익숙하지 않은 인디 뮤지션이라면 더더욱. MC의 농담 같은 태도가 뮤지션의 주위에 둘러진 엄숙함의 장벽을 제거해 시청자와의 만남을 돕는 대신, 오히려 그 스스로 하나의 장벽이 되어 소통을 가로막는 셈이다. 덕분에 이승열의 음악은 한국 모던록 신의 지형도에서, 장기하와 뜨거운 감자의 음악은 인디 시장의 사회적 의미 안에서 파악될 기회를 잃고 일회적 공연에 그쳤다. 물론 4회 출연자인 넬이 주장하는 것처럼 뮤지션은 음악으로 소통하는 존재고, 70~80년대 포크록의 전통이나 U2, 라디오 헤드를 몰라도 이들의 음악을 충분히 즐길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음악 외적 요소를 통해 음악 자체를 ‘더 잘’ 즐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윤종신처럼 출연 뮤지션과 음악에 대해 잘 아는 게 아니라면 맥을 끊는 농담을 던지느니, 김국진이 넬에게 그랬듯 자신이 잘 모르는 세계의 전문가로 인정하고 경청하는 것이 차라리 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차분하게 대여섯 곡씩 부를 수 있는 녹음실 환경이 오히려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소통의 미진함 때문이다. 이 무균질 공간에서는 라이브, 즉 날 것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립싱크와 MR 사용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관객의 박수소리와 뮤지션의 짧은 멘트, 그 미세한 교감으로 만들어지는 라이브만의 아우라는 시청자와 뮤지션 사이에 놓인 카메라와 케이블, 브라운관으로 이어지는 장벽을 상상적으로나마 지워줄 수 있다. 장기하 편의 경우 여러 각도에서 공들여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악한 인터넷 동영상보다 생동하는 에너지가 없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가장 질 좋은 동력은 음악 그 자체

물론 ‘라디오 스타’ 출신 MC들을 기용해 프로그램에 대한 주목도를 높여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음악을 소개했다는 건 <라라라>가 짧은 시간 안에 이룬 성취다. 하지만 시동이 빨리 걸린 이후 그 속도를 유지하는 동력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음악 자체다. 어떤 진행도, 연출도 시청자와 음악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때 의미를 갖는다. 출발 자체가 참신한 농담과도 같았던 <라라라>가 문제인 것은 실제로는 그다지 재밌지 않아서가 아니라, 음악과 뮤지션이 아닌 그 설정 자체가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필요한 고지에 올랐다면 굳이 번거롭게 사다리를 들고 있을 필요는 없다.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모았던 바로 그 설정과 캐릭터, 토크 스타일을 앞으로도 고수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온 것이다.
글 위근우

<이하나의 페퍼민트>(이하 <페퍼민트>) 5회,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말했다 “제가 13년을 진행을 했지만, 이하나 씨가 저보다 훨씬 잘하세요.”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MBC <수요예술무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상관없이 웃을 수 있었다. 과거가 현재가 만나는 순간은, 달변이나 조명이 없어도 이렇게 빛이 난다. <페퍼민트>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놓고 복원하려고 애쓴다. 알렉스와 박정현이 나오고, 박효신과 휘성과 거미가 나온다면, 장기하와 요조와 짙은도 나온다. 그런가하면 김창완밴드가 다녀갔고, 이승환과 신승훈 그리고 김태원과 김종서의 미니콘서트가 있었다. 이 무대는 또한 조수미의 ‘Ich libe dich’나 ‘Bred Dina Vida Vingar’도 들려주고, 이병우와 김광민의 그 아름다운 ‘새’와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 지라도’마저 들려주었다. 이런 라인업은, 밤도 새벽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대에 머물기는 어쩐지 좀, 억울한 감도 있다.

음악과 뮤지션을 제대로 예우하는 방법

이하나는 매번 자신의 진행이 미숙하다며 자책성 멘트를 섞지만, 사실, 이 프로그램은 야심은 만만치 않다. 안으로는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서 시작된 ‘작은 무대의 생음악’이라는 전통을 잇고, 밖으로는 경쟁사의 전설적인 음악프로그램인 <수요예술무대>의 정신도 계승하겠다는 포석을 깔고 있다. 해외 뮤지션이 내한공연을 하게 되면, 당연히 거쳐가던 그 무대 말이다.

<페퍼민트>의 특별한 코너인 ‘미니콘서트’에 이하나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승철은 굳이 무대 뒤의 그녀를 불러내기도 했다. 김종서와 김태원의 무대에서, 이하나는 객석에 앉아 있었다. 김태원으로부터는 ‘무슨 연예인이 그러냐’는 핀잔 아닌 핀잔도 들었지만, 이 방식은 <페퍼민트>의 중요한 태도이자 전략이다. 이 무대의 주인이 온전히 ‘음악’이라는 것, 그래서 음악을, 뮤지션을 예우하겠다는 방식이다. 이런 태도는 사실, 객석에서 방금 올라온 듯, 마음을 좀처럼 진정시키지 못하는 이하나의 아슬아슬한 진행 때문에 ‘팬심으로 진행하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음악과 뮤지션에 대한 기꺼운 환호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격려 받아야 할 태도인 듯하다. 그런 무대가 너무나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고, 그런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이들도 계속 존재했다. 다만 TV는 그런 이들이 만나는 자리에 늘 인색했다. 어쩌다 마련된 자리도 입담과 개그가 여의치 않으면 뺐기기 쉬웠다. 1절이 끝나기도 전에 따라 부를 수 있는 후크가 없이 공중파에 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춤을 잘 추지도, 섹시하지도 못한 사람들에겐 더더욱 불리했다. 홍대의 ‘핫’한 인디밴드의 노래를 홍대까지 안가고 들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노래를 안 하는, 전문 연주자들에게는 더더욱 기회는 없었다.

서툴지만 의미있는 정공법

그런 뮤지션들에게 <페퍼민트>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 자리가 공중파이기 때문에 갖는 의미는 막중하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이미, 인디밴드 팬 사이에서는 주류라고 인정받았지만, 시청률 5%도 안 되는 <페퍼민트> 첫 회에 등장한 이후로 거의 전국구 인사가 된 점은 의미심장하다. 매체가 거대기획사와는 무관한, 재능있고 유망한 뮤지션을 소개하면, 시청자가 거기에 진심으로 화답하는 프로세스는, 너무 당연하지만 오래전에 퇴행한 것 같은 유통구조다. 물론 <페퍼민트> 역시 대부분 공연 프로모션과 무관하지 않은 흐름이 되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이 의미 있는 무대의 지속성이 보장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무대는 음악적 다양성의 보전을 위해서, 지금의 공중파 채널이 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몸짓이다. 떨리는 음색이 역력한 이하나의 진행은 여전히 불안해 보이지만, 그 무대를 둘러싼 기운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누구나 어떤 노래들로, 누군가의 음색으로 시간을 견디고 기억해왔을 것이다. 그런 음악의 힘을 아는 사람들에게, <페퍼민트>는 서툴지만 의미있는 정공법으로 다가오고 있다.
글 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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