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 드라마 ‘개과천선’이 16부작 여정의 끄트머리에 섰다. 국내 굴지의 로펌, 차영우 펌의 변호사 김석주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기억상실’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통해 현실 속 비도덕적 엘리트들을 날카롭게 고발했다. 기억상실을 기점으로, 권력과 유착한 타락한 변호사에서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변호사로 성장하는 내용을 담은 이 드라마는 실제 사건과 유사한 사건들을 연이어 등장시키며 현실 속 로펌이나 현실 속 인물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았다. 뉴스보다 더 뉴스같은 드라마, 한 편의 시사 프로그램을 본 듯한 드라마라는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나온다.

뿐만 아니라, 극의 완성도도 상당히 높았다. 군더더기를 최대한 덜어낸 서사는 스피디한 전개 없이도 몰입력을 높였고, 주인공 김석주 역의 김명민을 비롯해, 차영우 역의 김상중, 그리고 특별출연 형태로 등장하더니 주연급 비중으로 활약한 검사 이선희 역의 김서형 등 배우들의 안정적이면서 섬세한 연기력도 즐거운 관람이 되는 드라마였다.

이제 마지막 2회를 남겨둔 이 드라마는 끝까지 지켜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전하는 울림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에.

김석주 변호사를 통해 현실의 무책임한 엘리트들을 겨냥한 드라마는 각 인물들 간의 케미스트리를 통해 공감과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인간을 ‘개과천선’시키려면, 채찍질만큼 필요한 것이 껴안아주는 따뜻함이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사건사고들의 연이은 등장과 이들의 촘촘하고도 섬세한 복원과 묘사로 채찍질을 가하면서도 각 인물의 드라마를 통해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개과천선’ 속 특별했던 케미스트리를 꼽아보았다.

‘개과천선’ 속 김명민과 오정세(왼쪽부터)
‘개과천선’ 속 김명민과 오정세(왼쪽부터)
‘개과천선’ 속 김명민과 오정세(왼쪽부터)

1. 김석주 변호사와 절친 박상태
김석주의 절친, 박상태(오정세) 변호사는 엄청난 음모와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며, 대단한 사명감을 부르짖지도 않는 어중간한 삶에 놓여있다. 그래서 더 보통의 사람들과 닮아있다. 박상태는 정 많은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기억상실에 걸린 김석주에게 다가간다. 툭툭 거친 말을 내뱉으면서도 가장 가까이서 마음을 써주는 모습은 흡사 브로맨스(브라더와 로맨스의 합성어)라는 단어마저 떠올리게 만든다.

김석주는 기억상실에 걸리기 전에도 박상태와는 가까운 사이였으나, 기억상실 이후에야 진정한 친구가 된 느낌이다. 그렇게 인간은 인간과 맞닿아있어야 인간이 된다. 드라마 속 두 남자의 묘한 케미스트리가 김석주의 돌아온 인간미를 잘 표현해주는 장면으로도 활용됐다.

‘개과천선’ 속 최일화와 김명민(위부터)
‘개과천선’ 속 최일화와 김명민(위부터)
‘개과천선’ 속 최일화와 김명민(위부터)

2. 김석주 변호사와 그의 아버지
묘하다. 김석주는 기억상실에 걸려 과거의 자신을 잊었다. 아버지 김신일(최일화)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는다. 그렇게 기억을 잃어버린 부자는 비로소 서로의 진심과 맞닿는다.

정의를 부르짖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김석주를 비열한 엘리트로 키웠다. 하지만 기억을 잃고야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다가간다. 아버지가 그토록 중시했던 정의의 가치 역시 뒤늦게나마 절감하게 되는 아들이다. 그렇게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배워간다. 그런가하면 알츠하이머로 서른 아홉 살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늙은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너무 총명한 아들이 자만할까 두려워 유독 엄격하게 가르쳐야 했다. 기둥처럼 아이가 단단하길 바랐다. 내 독단으로 아이에게 반감을 샀을지도 모른다. 내 바람을 지금 느끼지 못한다 해도 이 나라 법조계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털어놓는다. 아버지의 깊은 속내에 돌아선 김석주의 눈가가 붉어진다.

관계를 회복한 부자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어 보여 안타깝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고 아버지 역시 아들을 대견해하는 훈훈한 장면은 어째서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으로 남았다.

‘개과천선’ 속 썸타는 김명민과 채정안
‘개과천선’ 속 썸타는 김명민과 채정안
‘개과천선’ 속 썸타는 김명민과 채정안

3. 김석주 변호사, 그리고 약혼녀인 듯 약혼녀아닌 약혼녀같은 그녀
김석주 변호사도 썸을 탔다. 그런데 상대가 약혼녀다. 바로 유정선(채정안). 결혼날짜까지 잡았다는 두 사람 영 어색하다. 급기야 기억상실에 걸린 김석주 변호사는 그녀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그래도 연애같은 연애 해보지 못하고 결혼으로 직진하려던 두 사람, 이제 더 어색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김석주 변호사 은근 고수다. 필요한 순간 나타나 정선을 도와주고, 재벌 가족들이 유정선을 희생양삼아 빠져나오려 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버팀막이 되어주는 것도 그다. 결국 정선, 석주에게 흔들리고 만다. 그리고 필리핀에 있던 정선의 아버지가 정선에게 던지는 결정적 한 마디. “힘들 때 비로소 그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거란다.”

남은 2회의 전개 속 이 썸타는 두 남녀의 관계가 어떤 결말을 맺게될지도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MBC 더 좋은 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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