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의 10 Voice] <리얼 스틸>, 아날로그의 승리를 선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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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록키가 된 아톰의 이야기. 영화 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만을 놓고 보았을 때 은 1편에 대한 완벽한 오마주다. 이젠 나오지 않는 구형 모델 로봇인 아톰, 그리고 아톰의 매니저 겸 조종사인 찰리 켄튼(휴 잭맨)과 그의 아들 맥스(다코타 고요)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최고의 로봇 복싱 무대인 ‘리얼 스틸’을 향해 연전연승하며, 결국 최종 무대에서 무적의 챔피언 로봇과 격돌한다. 복싱이라는 종목부터, 마지막 라운드까지 가는 박빙의 승부, 아니 어쩌면 ‘사실상의 승리’를 거두지만 챔피언에게 판정패하는 결말까지 그들의 여정은 뒷골목 주먹이었던 록키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찰리의 입을 통해 환기되는 복싱의 황금기에 대한 향수다. 젊은 시절 복서였던 그는 복싱에서 브라질 지하 격투기로 인기가 이동했던 시기에 대해 말하며 혀를 끌끌 찬다. 물론 복싱에는 낭만이 있고, 종합격투기에는 없다는 건 편견이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 브라질 발리투도(무규칙 격투기)의 경우, 싸움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보다는 즉각적인 잔인함의 이미지에만 집중되는 건 사실이다. 요컨대, 를 따라가는 서사는, 그리고 찰리의 복싱에 대한 향수는 모든 것이 부족한 주인공이 노력과 근성으로 도전하고 승리하는 것이 가능했던, 혹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시기에 대한 그리움이다.

가 놓쳤지만 엔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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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가 조종하는 로봇의 이름이 아톰인 건 그래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애니메이션 중 가장 인기 있는 에피소드였던 ‘지상 최대의 로봇’ 편에서 아톰은 세계 최강 로봇들을 파괴하는 플루토와 대결한다. 플루토는 그리스 신화의 명왕 하데스의 로마식 이름이고, 에서 아톰과 싸우는 챔피언의 이름은 제우스다. 2세대 로봇인 아톰이 3세대 중에서도 최강으로 꼽히는 제우스를 궁지로 모는 것처럼, ‘지상 최대의 로봇’에서 10만 마력의 힘을 지닌 아톰은 100만 마력의 힘을 지닌 플루토뿐 아니라 플로토조차 이기지 못한 200만 마력의 보라에게까지 승리를 거둔다. 중요한 건 테크놀로지가 아니다. 플루토를 만든 아브라 박사는 “지혜와 용기”를 가진 아톰이 지상 최강의 로봇이라 말한다. 맥스가 아톰을 특별하게 여기는 건, 이 로봇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어서다. 제우스와의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아예 찰리가 직접 복싱 모션으로 아톰을 조종한다. 인간의 마음을 지닌 로봇 아톰과 끈기를 지닌 복서 록키는 이렇게 ‘리얼 스틸’의 링 위에서 조우한다.

이처럼 은 물리적 한계를 넘는 인간적 가치를 대표하는 가상의 캐릭터와 그들의 서사를 빌려온다. 이 영화의 제작자로 ‘그’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름을 올린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가 기획에 참여했던 또 다른 메카닉물인 는 시각효과에만 매몰되어 관객을 꿈꾸게 하는 데 실패한 영화였다. 테크놀로지가 집약됐지만 그뿐이었던 제우스와 동시대 최고의 CG로 점철됐지만 역시 그뿐인 이 블록버스터를 연결하는 건 억지일까. 하지만 그가 에서 가 놓쳤던 꿈과 낭만을 되찾으려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은 같은 메카닉 장르인 보다는 역시 스필버그가 제작한 에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 이 에 대한 오마주라면 는 스필버그의 대표작 < E.T. >에 대한 오마주다. 미지의 존재라 해도 진실한 마음이라면 소통이 가능하다는 < E.T. >의 믿음을 그대로 따르는 이 영화는, 동시에 제목이기도 한 8㎜ 무비카메라로 대표되는 1970년대의 아날로그적인 세계와 낭만을 복원한다. 이것은 논리적 인과로 연결됐다기보다는 한 시대의 공기와 분위기 안에서 통합된다. 모든 것을 0과 1의 2진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믿는 디지털의 공격으로부터 아직은 안전한, 아날로그 필름의 질감처럼 따뜻한 인간적 가치가 남은 어떤 이상향으로서. 여기에는 인간성의 반대급부로서 극도로 발달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거부감 혹은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역시 결국 최첨단 특수효과의 힘을 빌려 만들어졌다는 건 흥미로운 모순이다.

꿈을 꿀 수 있는 시절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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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는 “영화는 꿈이지만 관객은 꿈꾸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꿈 공작소 드림웍스를 만든 스필버그는 누구보다 관객을 자신이 만든 백일몽 안에서 잠들도록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자전거가 밤하늘을 나는 < E.T. >의 경이로운 장면처럼, 음악으로 외계인과 소통하는 처럼, 그는 특수효과를 통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영화에서 이뤄주는 마법사였다. 여기에는 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꿈 역시 풍성하게 해주리라는 시대적 낙관주의가 깔려있다. 문제는 그 낙관주의가 깨지며 시작된다. 언젠가부터 SF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기 시작했고, 관객은 행복하게 잠들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방법은 세 가지다. 영화가 꿈이 되길 포기하거나,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거나, 꿈을 꿀 수 있던 시절로 회귀하거나.

스필버그와 드림웍스는 에서 세 번째 길을 택한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테크놀로지를 버릴 순 없기에 앞서 말한 것 같은 모순이 발생한다. 은 그 모순을 넘기 위해 오마주 대상들이 환기하는 정서에 기대, 아예 디지털에 대한 아날로그의 승리를 선포한다. 아톰의 가장 큰 무기가 맷집인 것처럼, 작품 속 로봇에게 중요한 건 내부의 복잡한 메커니즘이 아닌 제목 그대로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진짜 쇳덩이의 질감과 무게감이다. 심지어 스필버그는 CG에만 의존하지 않고 실물 크기의 진짜 로봇을 만들도록 했다. 즉 이 영화는 관객뿐 아니라 창작자 본인까지도 안심시키는 다짐에 가깝다. 걱정 말라고. 중요한 건 창작자의 마음과 지혜지, 기술이 아니라고. 물론 이것은 모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노련한 봉합이다. 하지만 어차피 꿈이란, 기꺼이 속을 수 있는 거짓말의 다른 이름 아니던가.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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